ⓒ시사IN 조남진

세밑에 베트남 북부 하이퐁시를 다녀왔다. 관여하는 인권단체가 하이퐁시와 함께 ‘귀환 여성’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 그 내용이 참담해 한동안 가슴이 아렸다.

이른바 귀환여성은 결혼이주로 한국에 살다가 여러 이유로 본국으로 돌아간 여성을 말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라이언 킹〉에서의 ‘귀환’이 용감무쌍하고 장엄한 판타지라면, 결혼이주 여성의 ‘귀환’은 우리의 야만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비참한 현실이다.

A씨는 남편의 구타와 시어머니의 학대로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집을 뛰쳐나왔다. B씨는 알코올 의존자인 남편의 폭력을 피해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A씨는 이후 홍콩에서 ‘불법체류’를 하면서 닥치는 대로 일했고 현재의 베트남인 남편을 만나 아이 둘을 낳고 베트남에서 살고 있다. B씨 또한 베트남인 남편과 가정을 꾸리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한국인 남편과 이혼 절차를 밟지 못해 현재 남편과 혼인신고도, 아이의 출생신고도 할 수 없다.

남편에게 버림받아 비자발적으로 귀환 여성이 된 경우도 많다. 속성 결혼식을 올린 뒤 한국으로 간 남편이 연락을 끊거나, 친정에 다니러 왔다가 남편이 재입국 초청장을 보내지 않아 한국으로 입국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베트남에 주저앉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귀환의 사유나 과정은 복잡다단한 인생의 속살만큼이나 굽이굽이 사연이 많다. 언어 문제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은 사소한 일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몰고 가기도 한다. 맞선 때 소개받은 것과 현격히 차이 나는 남편의 직업과 경제력 및 성격, 그리고 이로 인한 불신의 심화는 매매혼적 속성 결혼이 낳은 파탄의 원인이다.

결혼은 원하지만 양육의 부담은 지고 싶지 않은 나이 많은 남편이 아이를 낳지 말라고 협박하고 낙태를 권하자 아이를 지키기 위해 베트남으로 돌아간 여성도 있다. 그녀가 맞닥뜨린 현실은 가난과 독박 육아, 주변의 쑥덕거림이었지만 정작 그녀를 좌절케 한 것은 국적 없는 아이의 미래다.

실제로 귀환 여성 자녀가 겪는 문제는 심각하기 짝이 없다.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서 학교 입학이 지연되고 비자 문제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베트남 국적 취득을 위해 한국인 아버지에게 연락을 시도해보지만 두절된 경우가 허다하다.

이주는 언어를 비롯해 식습관과 생활환경, 기후 및 관습, 인간관계 등이 일시에 송두리째 뒤바뀌는 지각 대변동을 가져온다고 한다. 결혼이주와 귀환을 연속적으로 겪는 귀환 여성은 매번 아찔한 삶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한다. 우울증과 심리적 위축감, 신체적 질병 등은 귀환 여성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세다.

“한국은 어떤 존재인가?”

다행히 한국 인권단체가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한-베 함께돌봄센터’를 설립하고 귀환 여성 자녀의 입학, 여권 재발급, 양육비 지원 등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센터는 고작 한 곳. 수혜자는 일부에 그칠 수밖에 없다.

결혼은 삶의 동반자와 함께 살아가는 긴 여정이다. 그럼에도 결혼이 저출산 해소의 수단이나 노총각 구제책으로 활용된다면 그건 당사자들의 존엄한 삶을 부인하고 인간을 도구화하는 명백한 인권침해다. 영리를 앞세운 불법적인 결혼 중개업체는 매매혼적 속성 결혼을 지속시키고, 이렇게 맺어진 결혼은 결혼이주 여성을 비인격체로 여기며 학대와 폭력, 무시와 모욕을 일상화한다.

13년 전 한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이 남편의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살해됐다. 이 사건의 재판부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라며 통렬한 비판과 자기반성을 촉구했다. 유감스럽게도 그 같은 질책은 13년이 지난 2020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심포지엄 장에서 만난 하이퐁시의 한 여맹 간부는 독백인 듯 질문인 듯 말했다. “한국은 어떤 존재인가? 경제대국인가? 민주화와 인권을 토대로 한 선진국인가?”

기자명 문경란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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