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바이러스 ‘저수지’로 박쥐가 지목되는 이유
  • 장일호 기자
  • 호수 647
  • 승인 2020.02.04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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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감염병이 발생하면 재앙적 상황을 떠올리지만, 그런 상황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유행이 진행되면 전염력은 강해지나 치사율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AP Photo홍콩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1월27일 홍콩에서 마스크를 쓴 보행자들이 도로를 건너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2019-nCoV) 첫 2차 감염자가 나왔다. 1월30일 현재 확진자는 모두 6명으로, 이날 추가된 확진자 2명은 능동감시 대상자였다. 두 사람은 확진 판정을 받고 서울의료원과 서울대병원에 격리 조치됐다. 이 중 ‘6번 환자’(56·남)가 중국 우한 방문 이력이 없는 2차 감염자였다.

6번 환자는 지난 1월22일 ‘3번 환자’와 서울 강남 한일관에서 식사를 했다. 이후 자가격리 대상인 밀접접촉자(15명)가 아닌 일상접촉자(70명) 중 한 명으로 분류되었다. 능동감시 대상자는 확진자와 접촉한 시간이나 정도를 기준으로 밀접접촉자와 일상접촉자로 구분되지만 이를 나누는 구체적인 수치 기준은 없다. 6번 환자를 통해 국내에서도 2019-nCoV의 사람 간 감염이 확인된 만큼 지역사회 전파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2019-nCoV 같은 신·변종 감염병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는 아직까지 모르는 사실이 많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응해야 한다. 보건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그만큼 중요하다. 2003년 사스 바이러스 유행 당시 영국 런던 임페리얼 대학 연구팀이 진행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감염 환자 신고가 신속히 이뤄지고 조기 입원하는 것만으로도 2차 감염자 수를 19%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원 후 신속한 격리 및 통제 조치까지 이뤄졌을 경우 2차 감염자 발생은 76%까지 떨어졌다.

그런 점에서 최강석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원은 신종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마다 나오는,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는 내용의 뉴스를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만드는 ‘자극적인 나쁜 뉴스’라고 규정한다. “인류 앞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신종 바이러스를 물리칠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할 사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예방 효과가 있는 백신 신약을 서둘러 개발하더라도 2003년 사스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가 모두가 바라는 대로 몇 달간 홀연히 사라져버릴 수 있다.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더라도 제약회사들이 엄청난 비용이 드는 백신 개발에 주저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유행 때마다 나오는 ‘나쁜 뉴스’

인류가 바이러스의 존재를 인식하고 대처하기 시작한 역사는 120년 남짓에 불과하다. 평균 직경 100나노미터에 불과한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자에 단백질 껍데기를 뒤집어쓴 단순하고 작은 물질이다. 일반 광학현미경으로는 확인하기조차 어렵다. 1939년 전자현미경이 시판되면서 바이러스의 실체도 규명되기 시작했다. 지구상에는 약 8000종류의 바이러스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들 절대다수는 숙주에 병을 일으키지 않고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며 공생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인간 몸에 들어와 항체를 만들고 면역을 부여하는 것 역시 바이러스로, 이는 백신의 원리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인수공통 감염병 병원균은 1%도 채 파악하지 못했지만, ‘빙산의 일각’이라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 바이러스는 ‘잔불’이 되어 소멸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Reuter1월10일 바이러스 진원지로 알려진 우한시 수산물시장의 모습.

1937년 가금류(닭)에서 처음 확인된 코로나바이러스는 1960년대 감기 환자의 비강에서 발견되며 인수공통 감염병으로 분류됐다.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으며 호흡기 감염의 흔한 원인 중 하나다. 환절기 일반 감기 환자 10명 중 한두 명은 인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것이다. 대부분 일주일 정도면 자연치료 된다. 코로나바이러스를 비롯해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독감과 달리 워낙 많고 다양해 제약회사에서도 백신을 개발하기 어렵다. 원인요법(질병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치료법)이 없고, 고열이 나면 해열제를 쓰는 식의 대증요법 치료만 가능하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감기 바이러스와 달리 크게 A, B, C 세 가지 타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주로 A형이 많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유행 감시정보를 분석하고 매년 백신에 들어갈 바이러스 3종을 선정해 발표한다. 독감 백신에는 그해 유행할 것 같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3종(보통 A형 바이러스 2종과 B형 바이러스 1종)이 들어 있다. 이 예측이 실패하면 계절 독감이 유행한다.

현재까지 인간 코로나바이러스는 6가지 종류가 발견됐는데 그중 두 가지가 난폭한 ‘변종’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스(SARS-CoV)와 메르스(MERS-CoV)다. 이번에 또 다른 변종인 2019-nCoV가 발견되면서 인간 코로나바이러스의 ‘친척’이 7종으로 늘었다. 비교적 얌전한 바이러스에 속하던 코로나바이러스는 2003년 사스 유행 이후 크게 주목받았다. 사스가 중국 관박쥐로부터 기원했다는 설이 다수 견해로 자리를 잡으면서 박쥐 바이러스 연구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신종 바이러스를 퍼트린 ‘범인’은 보통 첫 출현 지역 주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첫 발생지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서식하는 야생동물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조사가 시작된다. 지구에 서식하고 있는 박쥐 종은 약 1240종으로 전체 포유동물 종의 약 25%를 차지한다. 설치류(약 1600종) 다음으로 생물학적 다양성이 풍부하다. 그만큼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바이러스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2005~2012년 전 세계 각종 박쥐 종에서 분리된 코로나바이러스는 무려 390종이다. 신종 바이러스의 ‘저수지’로 박쥐가 지목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2019-nCoV 역시 중국 우한의 화난 수산물시장에서 유통되던 박쥐가 원인으로 꼽힌다.

2019-nCoV를 비롯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자연숙주(박쥐)가 아닌 새로운 숙주(인간)에게 정착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은 바로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고 돌연변이를 거듭하며 가금류, 조류 등 중간 매개체 동물을 거친다(이를 ‘믹서기 동물’이라 한다). 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의 면역 감시망이 가동되기 전에, 또는 숙주 면역체계가 작동하더라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격렬하게 증식하려고 한다. 이 싸움에서 대개는 숙주가 이긴다.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대부분 특정 종(species)에서만 질병을 일으키는데 이를 ‘종간 장벽’이라고 한다. 때로 ‘스필오버(spillover)’가 일어난다. 동물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극복하고 전이되는 걸 뜻한다.

이렇게 동물로부터 인간으로 넘어와 안착된 초기에는 인간 대부분이 이 병원체에 대항할 면역력이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집단 감염되는 판데믹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판데믹(Pandemic)은 ‘모두’를 뜻하는 그리스어 pan과 ‘사람’을 뜻하는 demos가 합해진 단어다. 우리는 흔히 감염병이 발생하면 ‘인간 모두를 감염시키는 재앙’을 떠올리지만, 이는 바이러스가 넘기에는 너무 높은 장벽이다. 바이러스는 유행이 진행되면 전염력은 강해지지만 치사율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숙주가 살아야 바이러스도 살아남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염력과 치사율까지 높은 바이러스는 영화 속에서나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확산되는 바이러스를 판데믹으로 규정하느냐 않느냐는 치사율과 관계없다. 판데믹은 치사율이 아닌 확산력을 뜻할 뿐이다.

앞으로도 변종은 계속 등장할 것

그렇다면 2019-nCoV의 전염력은 얼마나 될까? 감염병 확산 가능성은 역학에서 R0(R제로)라 불리는 ‘기본감염재생산수(basic reproductive number)’에 따라 달라진다. 누구에게도 면역이 없고 통제를 위한 노력도 없는 조건에서 한 사람의 감염자가 직접 감염시킬 수 있는 평균 인원수를 뜻한다. 어떤 유행병에서 한 사람의 감염자가 평균 한 명 이상을 감염시킨다면 그 유행병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한 사람의 감염자가 평균 한 명 미만을 감염시킨다면, 그 유행병은 점차 사그라진다.

역학자들은 R0를 이용해서 확산될 가능성을 지닌 유행병과 저절로 소멸될 가능성이 높은 유행병을 구분한다. WHO는 1월24일 2019-nCoV의 예비 R0 추정치를 1.4~2.5로 제시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자체가 애초 감염력이 크지 않은 개체인 만큼 사스와 메르스라는 변종 바이러스도 몇몇 ‘슈퍼 전파자’를 제외하고는 판데믹 수준까지는 가지 않은 채 진화되었다. 2019-nCoV 역시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사스의 경우 R0는 4였고, 메르스는 0.4~ 0.9였다. 반면 2015년 한국은 메르스 R0 수치가 4였다. 이는 보건 당국의 적극적 개입이 중요한 이유를 증명하는 숫자다.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알려진 생물 중에서 돌연변이율이 가장 높다. 스스로 성장하거나 생식할 수 없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자신들이 감염시킨 세포에 기생한다. 인간이 바이러스의 ‘인큐베이터’가 되는 셈이다. 신종 바이러스는 돌발변수이기 때문에 과거 경험에 의존해 출현을 예측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2019-nCoV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바이러스 변종은 무궁무진 등장해 인류 생존을 주기적으로 들었다 놨다 할 가능성이 높다. 도시의 높은 인구밀도와 효율적인 교통망은 바이러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열어줬다.

백신이 없다고 해서 대책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해 전문가들은 기본적인 위생 수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이러스의 크기가 워낙 작기 때문에 마스크가 바이러스 자체를 차단하지는 못하지만, 호흡기 질병의 확산을 저지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2003년 베트남 사스 발생 병원 사례 연구에 따르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입원 환자가 마스크를 착용한 환자보다 사스에 걸릴 위험이 12.6배 높았다. 30초 이상 손을 잘 씻기만 해도 병원균의 80% 이상이 제거된다.

참고 문헌:〈사스 전쟁〉(넥서스, 2003), 〈바이러스의 습격〉(살림, 2009), 〈바이러스 쇼크〉(매일경제신문사, 2016),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김영사, 2015), 〈코로나바이러스와 소두증 지카바이러스의 습격〉 (동아엠앤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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