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정신통’에서 탈출하려는 것이다
  • 장정일 (소설가)
  • 호수 647
  • 승인 2020.02.1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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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그림

1994년 4월5일,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성상(聖像) 커트 코베인은 치사량의 헤로인을 주사한 뒤 약 기운이 퍼지기 전에, 문자 그대로 확인사살 하듯 엽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아들의 자살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집으로 찾아온 기자에게 “이제 그 애는 죽어서 ‘멍청이 클럽’의 일원이 됐어요. 그 클럽에 끼지 말라고 내가 이야기했었는데” 라고 말했다. ‘멍청이 클럽’은 아마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 지미 헨드릭스·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을 가리키는 듯한데, 다음 백과사전에서 세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모두 ‘향년 27세’라고 나온다. 커트 코베인은 이 클럽의 가입 조건에 맞추어 27세에 죽음을 선택했다.

100만 달러를 훨씬 넘는 가격의 저택, 택시 타듯이 갈아치우는 고급 승용차, 마구잡이 쇼핑, 그리고 마치 ‘이걸 원 없이 하기 위해’ 오늘까지 왔다는 듯이 탐닉하게 되는 정념과 마약. 롤링스톤스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는 커트 코베인의 자살에 이런 냉소적인 논평을 날렸다. “세상에서 가장 이름난 로큰롤 밴드에서 리드 싱어를 하는 게 뭐가 그리 힘든가?” 성상의 죽음은 미국·캐나다·프랑스 등에서 도합 68건의 모방 자살을 불러왔고, 자살자들의 대부분은 10대와 20대였다. 만약 〈기네스북〉에 이 분야의 기록이 항목으로 추가된다면, 커트 코베인은 가장 많은 모방 자살을 유발한 록 스타가 될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모두 찰스 크로스의 〈평전 커트 코베인〉(이룸, 2006)과 이안 핼퍼린·맥스 월레스의 〈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전설〉(미다스북스, 2002)에 나온다. 하지만 이번 독후감의 주제는 커트 코베인이 아니다.

자살은 인류가 출현할 때부터 존재했지만, 자연의 본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손가락질받았고, 중앙집권화한 국가와 국교(國敎)가 자리 잡으면서 범죄화되었다. 인적자원은 국가의 재산이고 자살자가 임의로 처리하려 든 생명도 고통도 신의 섭리인 데다가 심판 또한 신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자살이 자연적이지 않다는 오랜 관념은 동물학자들이 개·고양이·말·영양· 나그네쥐 같은 육지 동물뿐 아니라 조류와 어류에서도 자살 사례를 발견함으로써 반자연적인 것이 되었다.

1897년에 나온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청아출판사, 2008)은 자살 행위의 문제틀을 도덕성이 아니라 그 같은 절망의 상황을 재촉한 사회적 상황에 둠으로써, 자살 행위에 대해 최초로 “왜?”라고 묻게 만들었다. 최승자 시인의 번역으로 유명한 〈자살의 연구〉 (청하, 1982)에서 알프레드 알바레즈는 뒤르켐의 저작을 이렇게 평가한다. “뒤르켐 이후로는 조금의 멈칫거림도 없었다. 자살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우후죽순처럼 불어났고 특히 1920년대 이후로 그러했다. 심지어 그것은 ‘자살학(Suicidology)’이라는 독자적인 명칭까지 갖게 되었다.”

그 자신이 자살미수자였던 알바레즈는 뒤르켐이 자살을 도덕적 문제틀에서 사회적 문제틀로 전환시킨 시도를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자살이 품고 있는 심리적·정신적 문제를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자살자의 심리에는 사회공학으로 풀 수 없는 또 다른 심연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알바레즈는 뒤르켐이 〈자살론〉을 쓸 때 아직 프로이트는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연말, 저자 약력에 ‘현대 자살학의 아버지’라고 버젓이 명기된 에드윈 슈나이드먼의 〈자살하려는 마음〉(한울아카데미, 2019)이 출간되었다. 이 흥미로운 약력에 따르면 뒤르켐은 저절로 ‘현대 자살학의 할아버지’가 된다. 그런데 뒤르켐이 “자살은 본질적으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과정이다”라고 말하는 슈나이드먼의 책을 볼 수 있다면, “나는 이런 아들을 두지 않았어”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할아버지는 자살에 대해 이렇게 주장하기 때문이다.

자살의 사회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

“한 사회의 자살자 수는 신경쇠약자나 알코올 중독자의 많고 적음에 의존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형태의 정신적인 결함이 개인이 자살하게 되는 심리 상태를 만든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결함 자체는 자살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비슷한 상황 아래서는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이 건전한 사람보다 자살하기가 더 쉽다. 그러나 반드시 정신적 결함이라는 조건 때문에 자살을 한다고는 볼 수 없다. 이런 잠재성은 우리가 발견해야 할 다른 요인들의 작용을 통해서 효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심리적 고통 끝에 자살을 택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서 심리적 요인 외에 다른 중요한 사회적 요인을 찾는 입장이고, 아버지는 사회적 고통 끝에 자살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실은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죽는 것이라는 반대 입장을 취한다. 두 가지 입장은 ①설명할 수 있는 자살(=막을 수 있는 자살)과 ②설명할 수 없는 자살(=막을 수 없는 자살)로 정리할 수 있다. 커트 코베인이 ②에 속한다면, 송파 세 모녀 사건(2014년 2월)과 성북구 네 모녀 사건(2019년 11월)은 ①에 속한다. 물론 자살은 바둑돌처럼 흑백으로 나뉘지 않는 복합적 요인을 가졌기 때문에 ③은 물론 ④까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사정은 자살에 대한 연구나 자살을 예방하는 정책 또한 다양해야 할 것을 주문하지만 막상 도서관에 가보면 심리학이 사회학을 제압하고 있다. 이런 풍조 속에서는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자살로 내몰린 이들의 사회문제가 모조리 심리나 ‘힐링’으로 환원되고 만다.

인간은 누구나 수치심, 죄책감, 공포, 염려, 외로움, 불안, 늙어가거나 초라하게 죽어가는 것 등에 대한 근심을 갖고 있는데, 슈나이드먼은 그것을 “너무도 강하게 느끼는 것”에 정신통(psychache) 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붙였다. 자살은 과도한 정신통에서 비롯하며, 그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것이 자살이다. 그러므로 자살 예방은 정신통을 완화하고 줄이는 일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자살을 마음먹은 사람은 “고통을 멈추려는 욕구와 더불어 간섭받고 구조되고 싶은 소원”에서 반드시 단서를 남기는 말이나 행동을 암시한다고 한다. 자살 예방의 최고 규칙은 누군가가 삶과 죽음에 대해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한다면(“어디 조용한 데 가서 혼자 있고 싶어!”), 그 말에 유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물으라. “어디가 아픈가요?”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진짜 원인은 따로 있지만, 자살을 결심하게 만드는 계기는 늘 사소한 데서 온다는 연구자들의 말을 믿는다면, 고작 280쪽 분량의 쪽수에 붙여진 3만3000원이란 가격은 ‘자살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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