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왼쪽 세 번째)이 1월2일 열린 ‘2020 배민을 바꾸자’ 기자회견에서 근무조건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배달 앱 업체 ‘배달의 민족(배민)’이 운영하는 ‘맛집 배달 서비스’를 통해 요즘 유행하는 마라탕을 주문해보라. 잠시 뒤에 당신의 집 앞으로 민트색 헬멧을 쓴 배달원이 도착하게 될 것이다. 이 배달원들의 신분은 미묘하게 다르다. ‘배민 라이더’와 ‘배민 커넥트 라이더(이하 커넥터)’로 나뉜다.

커넥터의 역사는 길지 않다. 배민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활동하게 되었다. 배민의 자회사인 ‘배민 라이더스’가 ‘크라우드 소싱’ 방식의 배달 방식을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크라우드 소싱은 군중(crowd)과 ‘아웃소싱(outsourcing:외부 자원 동원)’의 합성어다. 기업 외부의 군중을 수익 활동에 끌어들여 이익을 낸 뒤 그 일부를 참여자들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다. 배달의 크라우드 소싱이라면, 해당 업체와 크고(정규직) 작은(특수고용직 라이더) 관계를 가진 직업적 배달원이 아니라 일반인들을 배달 업무에 동원한다는 말이 된다.

일반인은 스마트폰만 갖고 있으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음식을 배달하고 그에 상응하는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배민 측이, 해당 일반인과 가게, 그리고 배달 목적지를 중개할 수 있는 디지털 네트워크(플랫폼)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배민에 커넥터로 등록할 때 자신이 보유한 운송 수단을 통보하면, 그 운송 수단에 적절한 거리의 배달을 연결해준다.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는 2㎞ 이내 주문만을 배정해준다. 도보로도 가능하다. 누구나 손쉽게 커넥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쿠팡’과 배달 대행업체 ‘부릉’은 배민보다 한발 앞서 지난해 5월과 6월 크라우드 소싱 배달 서비스인 쿠팡 이츠, 부릉 프렌즈를 도입한 바 있다.

배민 커넥터로 등록된 인원은 출범 6개월 만인 1월 현재 1만8000명을 넘어섰다. 배민 측은 커넥터로 지원해 한 시간짜리 교육만 들어도 1만원을 지급한다. 실제 커넥터로 활동하는 사람은 교육받은 인원 중 일부에 불과하리라 추정된다. 배민이 교육비를 지급하면서까지 많은 사람들(군중)과 ‘커넥트(connect:연결)’를 만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민이 밝힌 공식적인 이유는 ‘폭증하는 배달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이다. 배달 주문이 가파르게 증가하는데 이 추세에 걸맞은 속도로 배달원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2019년 12월 기준 배민 주문 건수는 4300만 건이다. 이 회사에 따르면, 전년 대비 50% 증가한 수치다. 배민은 적잖은 출혈을 감수하면서 배달원을 늘리고 있다. 배민의 자회사로 배달 업무를 총괄하는 ‘배민 라이더스’는 현재 적자 상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음식 값 이외에 ‘배달 팁’을 지불한다. 배달원에게 돌아가는 돈이다. 배달 팁은 거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1000~2000원 수준이다. 그러나 배민 배달원들은 건당 최소 3500원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다. 그 차액은 고스란히 배민 측에서 부담한다.

이렇게 배민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회사 관계자는 “서비스를 확대하려면 안정적인 라이더 수급이 필요하다. 우리와 함께 일하는 분들이니 근무 여건을 좋게 유지한다는 차원도 있다”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배민 측에도 이득이 될 수 있다. 맛집 배달 시장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관리 측면에서도 그렇다. 배민의 커넥터 모집 슬로건은 “내(커넥터)가 원할 때, 일하고 싶은 만큼만”이다. 이는 배민 처지에서 보면, ‘배민이 원할 때, 고용하고 싶은 만큼만’이란 의미도 된다. 배민이 정확히, 필요한 시간 동안만 사람을 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커넥터이다. 동시에 배민은 배달원이 일하는 그때그때의 ‘힘든 정도(노동강도)’에 따라 걸맞은 보수를 주는 시스템을 갖춰나가고 있다.

정규직 같은 전통적 노동제도에서는 노동자에게 ‘일정한 단위 기간(개월이나 연 단위)’ 동안 미리 정해진 ‘일정한 보수’를 줘야 한다. 그 기간에 해당 노동자는 열심히 일하는 시간도 있겠지만 느슨하게 근무하는 때도 있다. 사실 회사 처지에선 노동자가 힘들게 일하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을 ‘구분’해서 차별적으로 보수를 지급하는 쪽이 유리하다. 일반 직장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구분’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민이 완전하게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구현해냈다.

배달 경험이 없는 일반인도 쉽게 일할 수 있는 크라우드 소싱 배달이 확대되고 있다.

“일하는 조건이 끊임없이 요동친다”

배민의 ‘배달 할증(프로모션)’ 제도가 뚜렷한 사례다. 프로모션은 배달원에게 기본료(거리에 따른 수수료)에 덧붙여 제공하는 일종의 인센티브다. 지난해 11월까지 프로모션은 비교적 긴 시간을 단위로 책정됐다. 예컨대 ‘한 달(혹은 이 주일) 동안에는 하루 1500원’ 같은 방식이다. 지난해 12월4일부터 프로모션 책정이 하루 단위로 바뀌었다(일일 변동제). 구체적 금액은 전날 밤 9시에 정해진다. 배민 관계자는 일일 변동제를 도입한 배경에 대해 “탄력적으로 금액을 조정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날씨가 나쁘면 배달 주문은 늘어나지만 라이더와 커넥터의 참여가 저조해진다. 또한 그동안 배민에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문량 증가가 예상되는 날을 특정할 수 있다. 이런 날의 프로모션 금액을 올려서 근무를 독려한다. 다른 날은 내린다.

결과적으로 보면, 회사 측은 정확히 필요한 시간만큼만, 그것도 시시각각의 노동강도에 맞춰서 사람을 사용할 방법을 만들어내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는 개념적으로는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면 된다. 노동과 자본의 ‘윈윈’일까?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고용주는 정확하게 ‘생산적’이라고 측정할 수 있는 노동비용만 지불하면 된다. 즉, 비생산적인 시간에 대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보호하던 전통적 제도들은 유명무실해진다. “노동자는 일감을 중심으로 계약을 맺는다. 그 때문에 마치 그물에 담으려 해도 빠져나가는 물처럼, 최저임금도 적용되지 못하고, 노동시간도 규제되기 힘들다.”

회사 측에서는 최적화된 노무관리 시스템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배달원 처지에서는 일하는 조건이 끊임없이 요동친다. 배달원들의 노조인 ‘라이더유니온’이 배민 라이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근무(조건)가 변경된 적이 있다’라고 답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배민의) 프로모션이 매일 바뀌니 라이더들은 무척 불안하다. 프로모션 대신 기본 배달료를 3000원에서 4000원으로 인상하라는 게 우리 주장이다.”라고 말했다. 그 역시 배민 라이더로 일한다.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더 쉽게, 더 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탄생하고 있다. 그 미래가 불안정성의 총량을 늘리는 방향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1월22일 배달의 민족은 “2월부터 일일 변동 프로모션 제도를 종료한다”라고 밝혔다. 이 조치에 따라 배민 배달원들이 받는 배달료는 기본 3000원 수준으로 낮아진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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