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이후 어머니는 성실하게 빚을 갚으며 사셨다. 손노동으로 벌어들인 소득을 아껴 차곡차곡 원리금을 상환했다. 경제개발기에 성장한 베이비부머 세대지만 부동산 재테크 부근에 얼씬도 할 수 없었던 서민층 블루칼라에게는, 성실함이 ‘경제생활의 정석’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성실함을 사랑하고 갈망했다.

2009년 2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0%로 떨어뜨린 이후, 우리는 저금리 시대를 살고 있다. 세상의 기준과 내 부모 세대의 기준이 충돌하게 되었다. ‘현재’와 치열하게 싸우며 외환위기 사태로 걸머진 빚을 어느 정도 갚긴 했는데, ‘미래’를 보장할 예·적금 금리가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이다.

경제 문법이 바뀌었다면 개인은 변화된 환경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금리 시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내 또래들은 부모 세대의 정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걸 차츰 깨닫게 되었다. 2030 세대의 재테크 커뮤니티에서 적금이나 채권은 이미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다. 어머니 시대에 저축은 미덕이었지만, 이들 커뮤니티에서는 저축보다 레버리지(빌린 돈으로 투자해서 큰 수익을 올리는 기법)가 미덕으로 통용된다. 30대가 부동산 거래의 주축 세력이 된 데에는 이런 환경도 한몫했다. 부모 세대의 ‘우직한 성실함’보다 ‘정보’가 훨씬 더 중요하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2030 세대에게 조언한다. “어떻게든 종잣돈을 만들고 그걸로 ‘자본소득의 길’을 걸어야 해요. 그러니 그 순간까지는 경제를 공부하세요.”

ⓒ연합뉴스

바뀐 문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이들이 비난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전문가들이 말하는 ‘공부’라는 지점에 요즘 들어 마음이 쓰인다. 다 같이 우직하게 저축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살림이 나아졌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금융 지식의 수준’ ‘정보의 유무’ 등이 격차를 만든다. 정보를 쫓아갈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과거보다 더 살기 팍팍해진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보 부족을 노력의 잣대로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적극적 재테크로 거둔 이익은 공부와 노력의 결과라는 식이다. 그러나 평균적인 지식수준을 가진 보통 사람의 성실함이야말로 제대로 인정받아야 할 가치가 아닐까. 우직함이 보상받기 어려운 시대라면 ‘중산층의 회복’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