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표, “검찰이 막는 법은 못한다는 ‘상식’이 깨졌다”
  • 천관율 기자
  • 호수 645
  • 승인 2020.01.2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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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패스트트랙 정국은 한국 정치의 변곡점이었다. 당시 집권당 원내대표였던 홍영표 의원은 법안 통과 이후에도 물밑에서 협상을 조율했다. 그는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홍영표 의원은 “21대 국회는 제도 조건상 야당과의 협치가 필수”라고 말했다.

2019년 4월29일은 한국 정치가 트랙을 바꾼 날이다. 이날 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3대 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을 탄다. 20대 국회 하반기 구도, 나아가 문재인 정부 상반기 국정 운영까지 사실상 이날 결정 났다. 이후 정치 과정 대부분이 알게 모르게 패스트트랙의 자장에서 움직였다. 영향력은 미래로 더 멀리 뻗어간다. 2020년 총선부터 적용될 선거법은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을 바꾼다. 즉, 권력을 결정하는 규칙이 바뀌었다. 이제 정치 세력들은 달라진 규칙에 맞게 정치의 문법을 다시 써야 한다.

홍영표 의원은 이 결정적 변곡점을 만들어낸 집권당 원내대표였다. 2018년 5월에 임기를 시작한 그는 임기 막판인 2019년 4월에 패스트트랙 정국을 여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그는 패스트트랙 법안 협상을 물밑에서 조율했다. 패스트트랙 법안 중 마지막으로 남은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이 통과된 다음 날인 1월14일 오전 9시30분부터,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90분 동안 만났다. 패스트트랙의 출발부터 마무리까지, 무대 뒤의 드라마가 궁금했다. 하루가 지났지만 얼굴은 여전히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제대가 늦었다. 이제야 임기가 끝난 기분이다”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선거법과 검찰개혁법이 한데 묶인 이유는?

공수처법 같은 검찰개혁법이 우리는 제일 중요했다. 소수 야당(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선거법이 모든 협상의 대전제였다. 2018년 8월에 5당 원내대표가 청와대 회동을 하려는데, 소수 야당들이 “대통령이 선거법 개정 의지를 모두발언으로 밝혀달라”고 회동 조건으로 요구했다. 실제로 대통령 모두발언에 들어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법 개정안은 민주당에 불리하다.

소수 야당들은 그거 없이는 아무것도 협력하지 않겠다는 기조였다. 2018년 연말에 예산안을 통과시키자고 하니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약속을 요구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당시 원내대표가 의총에서 선거법 얘기를 꺼내봤는데, 거의 모든 의원이 반대한다고 하더라. 그러면 민주당만 약속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나. 그래서 예산안을 자유한국당과 손잡고 통과시켰다. ‘더불어한국당’이라고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선거법을 내걸고 단식을 했다. 그때 나경원 의원이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된다. 전화가 와서 가보니 소수 야당 원내대표들이 다 와 있는데, 나경원 원내대표가 합의안에 서명을 하겠다는 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이렇게 돼 있다. 그게 2018년 12월15일이다.

자유한국당은 곧 합의를 파기한다. 패스트트랙으로 간다는 구상은 언제부터 했나?

선거제도를 2019년 1월까지 합의 처리하기로 했는데 그게 물 건너갔다. 자유한국당이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거기까지 지켜본 다음에, 소수 야당이 요구하는 선거법과 우리 핵심 과제인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엮어서 패스트트랙에 태우기로 마음을 굳혔다. 내가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1호 법안을 만진 사람이라 제도가 익숙했다. 2016년 연말에 발의된 사회적참사법이 환경노동위원회 소관이었고, 내가 위원장으로 패스트트랙을 태웠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홍영표 비서실2019년 4월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 홍영표 원내대표의 모습.

실패할 가능성도 생각했나?

사실 기본 구상을 취임 때부터 갖고 있었다. 2018년 원내대표가 되고 6월에 하반기 원 구성 협상을 했다. 국토위(국토교통위원회)나 산자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이런 데가 의원들한테 인기가 좋다. 여기 한 자리를 더 가져오는 게 굉장히 치열하다. 나는 그런 데를 내주면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를 계속 챙겼다. 우리 쪽(민주당과, 우호적인 야당)에서 60%를 가져온다는 목표를 내심 갖고, 그걸 위해 인기 상임위를 다 양보했다. 패스트트랙 상정 요건이 60%니까. 당시 정의당은 환경노동위원장을 원했다. 자유한국당이 절대 못 준다더라. 나는 지금은 고인이 된 노회찬 원내대표한테, 환노위를 내려놓고 정개특위를 받으시라 했다. 그가 동의해서 결국 심상정 대표가 정개특위 위원장이 됐다. 밑그림 준비가 없었으면 패스트트랙은 어려웠다.

사개특위는 이해하기 쉽다. 정개특위는 왜 2018년 6월부터 패스트트랙 의석수를 원했나?

선거법을 하지 않으면 공수처를 할 수 없다고 초기부터 판단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아예 과반 의석 확보가 안 되도록 하는 법이다. 집권 여당이 과반 의석을 제도적으로 포기한다? 부담이 얼마나 컸겠나. 원내대표 시절에 너무너무 고민이 많았다. 의총에서도 반대 의견이 격렬했다. 첫째, 여당이 과반 의석 없이 안정적 국정운영을 할 수 있겠나. 둘째, 어떻게 선거법을 제1야당과 합의 처리를 하지 않고 갈 수 있겠나. 내가 의총에서 방어한 논리는, 선거법을 소수 야당에 양보하지 않으면 검찰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자유한국당 쪽 협상 파트너로 김성태 원내대표와 6개월, 나경원 원내대표와 6개월을 겪었다. 김성태 원내대표랑 합의서가 12개다. 나경원 원내대표랑은 딱 두 개다. 파기된 선거법 합의서 포함해서 두 개. 일절 아무 합의도 안 해줬다. 소수 야당 협조 없이 국정 운영이 불가능했는데, 그러려면 선거법이 필수였다.

선거법은 권력 배분의 규칙을 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헌법이나 다름없다. 검찰개혁법과 교환한다고 쳐도 양쪽의 무게가 안 맞는데?

이건 원내대표 홍영표가 아니라 정치인 홍영표의 의견이다. 양당 정치는 극단적 대결과 대립으로 흐르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안정적 국정 운영에 꼭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집권당이 단독 과반을 한 경우가 2004년 열린우리당과 2008년 한나라당 두 번인데, 그런다고 국정이 안정되지 않더라. 현대사회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기 때문에, 그런 다양성을 정치가 반영하려면 어느 정도는 다당제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당 구도에서 협치를 제도화하는 것이 양당 구도에서 대결 구도로 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패스트트랙에 태운 후에도 자유한국당과 합의 처리하려는 시도는 계속했나?

우리는 자유한국당을 빼고 간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12월 초쯤에 의견이 꽤 근접했다. 물밑에서 자유한국당이 던진 안은 연동형 배분 의석수 상한을 20석으로 하자(실제 통과된 선거법 개정안에서는 30석이다)는 것이었고, 이 정도면 좀 더 노력하면 합의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번에는 연동형 제도 도입 자체에 의의를 두자고 오히려 반대쪽(소수 야당)을 설득했다. 검찰개혁법도 차이가 크지 않아서, 정말 마지막에는 다 근접했는데 왜 이상하게 안 될까 생각했다. 결과를 보니까 자유한국당의 속내가 사실은 다른 데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데?

그것까지 내가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당시 협상 과정을 잘 아는 민주당 인사들은, 자유한국당의 진짜 관심사는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물리력을 사용해 수사 대상에 오른 의원들을 구제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자유한국당이 공수처법을 합의해줬다면 선거법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홍준표 전 대표가 황교안 대표에게 그렇게 조언하기도 했는데?

당연히 막았겠지. 이렇게까지 협상에 나오지 않는 건 상상도 못했다. 법안들을 패스트트랙에 태운 후에 내가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8월30일 정개특위에서 선거법을 의결했다. 그 이틀인가 전에 나경원 원내대표를 만났다. 여기까지 왔는데 의결을 안 할 수는 없으니, 내가 방망이 두드리면 한 달쯤 냉각기를 갖고 협상을 시작하자고 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무조건 하지 말라는 말만 반복했다. 물밑 대화인데도! 지금 평가해보자면, 자유한국당은 자기들이 협상을 안 해도 어차피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선거법을 결국 민주당이 못 받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내부에서도, 130석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 과반 의석을 달라고 국민께 말씀드리자, 선거법까지 걸고 희생할 것 없이 다음 총선을 이겨서 통과시키자, 그런 주장이 있었다. 나도 사실 그 길로 갈까 생각도 했다.

ⓒ시사IN 조남진2019년 12월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자유한국당의 예측도 근거는 있었다. 선거법은 민주당 안에서도, 청와대 핵심에서도 ‘결국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치가 참 역설이다. 이게 결국 그래서 된 거다. 다들 불가능하다, 선거구 하나 바꾸는 것도 힘든데 선거법이 웬 말이냐고 생각한 바람에 결국은 됐다.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면? 그러면 자유한국당도 협상에 열심히 들어왔을 것이고, 우리 내부에서도 조금 더 공론화가 되면서 다른 변수가 생길 수 있었다.

2004년 열린우리당은 단독 과반 의석을 갖고도 국정과제 입법에 실패했다. 2020년 민주당은 훨씬 적은 의석으로 성공했다. 차이는?

우리에게 큰 교훈이다.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선거법도 합의를 만들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21대 국회는 제도적 조건상 야당과의 협치가 필수일 텐데, 결국 이 길로 가야 한다고 본다. 검찰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심지어는 공수처법을 표결하기 전날, 공수처법을 무기명 표결로 하게 해달라는 문자를 검찰이 의원들에게 보낸다. 이런 검찰의 반대를 뚫고 국회가 입법권을 행사하는 능력을 보여준 것이 큰 의미가 있다. 이것도 역설인데, 검찰이 검찰개혁법을 막겠다고 완전히 발 벗고 나서니까, 우리로서도 이걸 통과시키지 않을 방법이 없잖아. 총선 공약으로 미룰 수도 있었는데, 이번에 안 할 수 없게 검찰이 우리를 몰아붙였다.

검찰 반발이 알려진 것보다도 컸던 모양이다.

2018년 5월 원내대표가 되고 중점 법안을 체크하다 보니까,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 대선 공약 1호인데도 여당 되고 나서 법안 제출을 못했더라. 검찰 반발이 심해서 안 자체를 못 만들었다고 하더라. 이후로도 고비마다 검찰이 등장한다. 2018년 6월에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이 나온다.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명한다. 그해 연말에 자유한국당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란 걸 들고 나오는데, 내가 환노위 오래 해서 잘 안다. 이게 뭐냐면, 지난 정부에서 환경부 산하기관들에 능력도 경력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사람들을, 감사 이런 자리도 아니고 핵심 중의 핵심인 경영본부장 이런 데다가 앉혀둔 일이 정말 많았다. 이걸 정리하라고 노조에서도 난리가 났는데, 장관은 현황을 파악만 한 거야. 그게 블랙리스트다. 어떻게 보면 ‘깜이 아닌’ 건이었다. 개혁에 반대하는 검찰 분위기가 반영된 수사 아니냐는 얘기가 그때도 많았다. 나는 이 수사의 본질이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본다.

ⓒ연합뉴스윤석열 검찰총장이 1월7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법무부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도 검찰개혁 흐름이 멈추지 않고 패스트트랙으로 이어졌다.

패스트트랙 직후에는 검찰도 상황을 지켜봤다. 자유한국당이 저건 결국 안 될 일이라고 봤으니까 그 판단을 공유했는지, 아무튼 그랬다. 그러다가 8월에 정개특위에서 선거법이 의결되면서 이게 정말 될 수도 있다는 신호, 본회의만 남았다는 신호가 딱 나왔다. 그때부터 검찰 판단이 바뀌었던 것 같다. 원래 패스트트랙 국회 폭력 사태 수사를 경찰이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나도 7월에 경찰 조사를 7시간이나 받았는데, 그때 경찰이 이미 국회의 모든 CCTV나 방송사 영상을 다 구해서 의원별로 분류까지 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9월에 검찰이 사건을 가져간다. 경찰이 며칠이면 마무리가 된다는데도 그랬다. 검찰 명분은, 이 사건을 총선 때까지 끌면 안 되니까 자기들이 빨리 마무리하겠다는 거였는데, 정작 가져가서는 아무것도 안 했다. 쥐고 있었지. 내가 추정하기로는,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수사에 압력을 느꼈고, 검찰은 공수처나 검경 수사권 조정을 저지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검찰이 이걸 가져간 것으로 본다. 카드가 되니까.

국회에서는 자유한국당이나 소수 야당과의 협상만 주로 눈에 띄는데, 검찰과의 대결이 물밑에서는 더 치열한 정치투쟁이었던 것 같다.

검찰이란 조직의 생리가 그런 것 같다.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검찰개혁 논의에 직접 개입하고, 사실상 ‘정치’를 해온 것이다. 검찰이 생기고 72년이 지났는데, 검찰이 이렇게 정면으로 반대하는 법을 국회가 통과시킨 적은 한 번도 없다. 검찰이 막는 법은 못한다는 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상식이 결정적으로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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