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선 “정규직” 공장에선 “비정규직”
  • 창원·김동인 기자
  • 호수 644
  • 승인 2020.01.21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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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창원공장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이들을 포함해 비정규직 노동자 585명을 해고했다. 사측은 법원의 판결과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을 계속 외면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지난해 11월 해고 통보를 받은 한국GM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재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정규직이 될 기회는 사실상 없었다. 배성도씨(40)는 12년간 비정규직으로 한 공장에서 일했다. 배씨만이 아니었다. 2007년과 2013년 두 차례 도급업체 소속 생산직 비정규직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발탁 채용’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마저 감감무소식이었다. 배씨 주변에는 26년째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창원공장은 2005년 한국GM 산하 공장 가운데 최초로 비정규직 노조가 설립되었다. 고용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조합원이던 배씨는 비정규직 노조(금속노조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이 되었다. 늘어나는 후배는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짧게는 3개월짜리 계약으로 공장을 오갔다. 계약을 세 차례 이행(9개월)하고 난 뒤, 1~2개월 모습을 보이지 않다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공장은 정규직과 무기계약 비정규직, 단기계약 비정규직이 얽히고설킨 채 굴러갔다. 여기서도 위험은 외주화됐다. 일하는 속도가 빠른 도어 조립라인, 화학물질(페인트)을 다뤄야 하는 하부 왁스 코팅 따위는 자연스럽게 비정규직 몫이었다.

그런 작업마저 이제는 손을 댈 수가 없다. 공장은 ‘예고대로’ 585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내쫓았다. 지난해 11월25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각자 속한 업체로부터 해고 예고 통지서를 받았다. 원청인 한국GM이 7개 하청업체와 맺은 도급계약을 2019년 12월31일자로 종료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공장은 생산량 감축과 ‘근무 체계 변경’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판매 물량이 감소해 주간조와 야간조 2교대로 운영되던 공장 근무 체계를 1교대로 변경하겠다는 설명이었다. 1교대 전환은 생산인력 감축을 의미했다. 한국GM 창원공장은 비정규직이 일하던 공정을 정규직이 일하는 공정으로 바꾸는 ‘인소싱(insourcing)’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구조조정 신호탄이었다. 먼저 내몰린 쪽은 비정규직이었다.

근무 체계를 바꾸는 건 회사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단체협약상 노사 협의가 필요한 일이다. 막상 해고 통보를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협의 테이블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 단체협약도, 노사 협의의 대상도 정규직 노조인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창원지회(이하 정규직 노조)의 몫이었다.

정규직 노조는 ‘일시 정지’ 상태다. 지난해 12월12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사측과의 1교대제 전환 협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2020년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새 노조 지도부가 결정할 일이라는 이유였다. 한국GM 공장에서 ‘1교대 전환’은 군산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1교대 전환은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2018년 문을 닫은 한국GM 군산공장은 비정규직을 먼저 해고하고, 2교대를 1교대로 바꾼 뒤 차츰 정규직 생산인력을 줄여나갔다. 결국 군산 공장은 문을 닫았고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한국GM에서 스파크, 라보, 다마스 등 경차 라인업을 주로 담당하던 창원공장 역시 공장 폐쇄에 대한 불안이 컸다.

ⓒ시사IN 조남진7개 하청업체와 맺은 도급계약을 종료해 비정규직 노동자 585명을 해고한 한국GM 창원공장 전경.

정규직 노조의 협의 중단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탄력적 교대조 운영 방안’을 꺼내들었다. 기존에는 주간조와 야간조가 교대로 공장을 가동했지만, 이제는 둘 중 하나를 번갈아 일시 휴업하겠다는 조치였다. 노사 협의 없이 실질적으로 1교대 효과를 보겠다는 결정이다. 비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노조 모두 즉각 반발했지만 사측은 12월23일부터 ‘탄력적 교대조’를 강행했다. 취재진이 1월7일 찾은 공장은 마침 주간조 가동 기간이었다. 공장에 남은 정규직 직원들은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3시40분에 공장 문을 나서고 있었다.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은 지난해 12월23일부터 공장 울타리 안쪽에서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월3일 사측이 비정규직 노조의 진입을 막기도 했지만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은 승강이를 벌이며 “우리는 정규직 판결을 받은 직원들이다”라고 외쳤다. 근거는 충분했다.

사측, 강경 대응 일관하며 노노 갈등 부추겨

사법부의 결정, 행정부의 감독 결과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2016년 대법원은 창원공장 비정규직 5명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2013년에는 한국GM 대표이사가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기도 했다. 한국GM 측은 2016년에 승소한 5명만 정규직으로 전환했을 뿐 나머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측은 소송에 이긴 노동자들에게만 개별 적용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고용노동부 역시 한국GM에 ‘경고장’을 보낸 바 있다. 2018년 5월 고용노동부는 창원공장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 774명을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한국GM이 이에 불복하자 고용노동부는 뒤이어 과태료(77억여 원) 처분을 내렸다. 한국GM 측은 이마저 불복해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과태료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비정규직 노조는 개별 노동자가 모여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연이어 진행하고 있다. 노조 소속이 아니더라도 함께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은 5명 외에 2차 소송인단 38명, 3차 소송인단 105명이 2019년 모두 1심에서 이겼다. 사측은 항소했고, 1심에서 승소한 이들까지 포함해 ‘연말 대량 해고’를 강행했다. 법원은 노동자의 손을 연이어 들어주고 있지만 정작 회사는 법원의 결정을 계속 외면하는 상황이다.

해고 이후 정규직으로 비정규직 자리를 채운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지만, 또 다른 비정규직들이 생산 라인에 투입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지난해 12월24일, 공장 한편에서 ‘사원모집 공고’가 발견됐다. 신규 하청업체인 H사가 창원공장에서 일할 사람들을 모집한다는 구인 공고문이었다. 비정규직 노조는 “과거 7개 하청업체의 관리자를 포함해 40명 정도가 신규 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라고 말했다. 새로 투입된 인력 역시 대부분 3개월짜리 단기 계약직으로 알려져 있다.

사법부 판결과 행정부 명령에도 불구하고 한국GM 창원공장은 왜 이렇게 강경한 대응을 보이고 있을까. 사측은 대외적으로는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량 감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산 물량을 조절해야 한다면서, 대내적으로는 ‘정규직 우선’을 주장하고 있다. 12월10일 사측이 발행한 소식지에는 “창원공장 정규직의 고용 보장이 우선이다”라는 대목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인소싱 자원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지에서 사측은 “지금은 ‘정규직이냐, 도급직이냐’를 선택하고 결단해야 한다”라며 이를 “더 많은 직원들을 살리기 위한 회사의 절박한 노력”이라고 표현했다. 노노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일각에서는 창원공장이 군산공장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지만, 이미 창원공장은 차세대 CUV(크로스오버 유틸리티 자동차) 생산기지로 낙점받아 지난해 5월부터 신규 생산설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8년 4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한국GM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지원금 7억5000만 달러(약 8100억원)를 투입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경차 중심이던 창원공장을 재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창원공장의 기존 설비는 2021년부터 재편 공사에 들어간다. 이 기간에 정규직 역시 휴업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규모 휴업이 예정되어 있어서 당장 정규직을 늘리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제공지난 1월6일 한국GM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작업 라인 바깥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적극 나서야 한다”

한국GM은 생산기지로서 가장 중요한 생산 결정권이 없다. 한국GM의 국내 경영 실적보다 GM 본사 측의 글로벌 전략에 의해 생산 물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창원에 배정한다는 차세대 CUV도 어느 정도 수준일지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새롭게 바뀌는 창원공장이 조립 공장에 불과할지, 한국에서 주도적으로 GM 본사의 차세대 CUV를 개발하는 전초기지가 될지 확실하지 않다. “정규직을 우선시하며 일단 버틴다”라는 사측 논리는 여기서 비롯된다. 사측도 GM 본사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한국GM의 2대 주주로서 ‘그나마’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산업은행이 비정규직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공적자금을 집행한 결과가 대량 해고라는 걸 당사자들은 납득하기 힘들어했다. 배성도 지회장은 “한국GM과 산업은행 간 각종 협약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고통을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하고 있다”라며 산업은행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강조했다.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2차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인단 38명에 대한 2심 판결이 1월31일로 예정되어 있다. 별개로 상호 고소·고발도 이어진다. 1월3일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 5명을 상대로 목재 운반대 10여 개를 가져갔다며 절도 등의 혐의로 창원중부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1월8일에는 비정규직 노조 측이 한국GM 카허 카젬 사장을 불법파견 혐의로 창원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사측은 한편으로는 위로금을 지급하면서 소 취하와 부제소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미 비조합원 가운데 오랜 법적 공방에 부담을 느낀 일부는 소를 취하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더 자주 ‘법원’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늘 그렇듯 법원 판결은 더디고, 생계는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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