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대법원 공보관을 함께 취재한 적 있다. 사진을 찍는데 배경이 문제였다. 대검찰청과 대법원 건물은 마주보고 있다. 서로 자신이 소속된 청사를 배경으로 삼자고 옥신각신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담이었다. 공평하게 허공을 배경으로 삼았다. 검사들의 ‘준(準)사법기관’ 의식을 그때 확인했다.

검사들은 검찰을 법원과 동등하게 인식한다. 사법고시에 똑같이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마치며 행로가 갈렸을 뿐이라고 여긴다. 임관 때부터 준사법기관 소속이라는 자의식이 싹튼다. 하지만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검찰은 법무부 외청이다. 입법·사법·행정 삼권분립 체제에서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다.

검찰을 준사법기관으로 보는 이유가 없지는 않다. ‘의무’의 관점에서 효용성이 있다. ‘준사법기관으로 특별한 대접을 해줄 테니 부정부패에 물들지 말고 공평하게 사법정의를 세우는 일에만 집중하라.’ 문제는 검찰이 의무는 잊고 권리만 챙겼다는 점이다. 준사법기관론을 검찰 권력 확대의 이론적 기반으로 삼은 것이다. 어떤 간섭도 배제된 검찰상을 상정한다. 여기에 준사법기관론의 맹점이 있다. ‘검찰 행정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준사법기관의 의무를 강조할 수 있지만 이것은 검찰의 권한 강화 견제와 감시 시스템의 와해를 초래하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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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되지 않은 검찰 권력의 독주를 8월27일 강제수사와 9월6일 한밤중 기소로 목격했다. 대통령 인사권을 침해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력화했다. 청문회용, 낙마용 기소도 서슴지 않았다. ‘정치 검찰’을 넘어 내각 구성권까지 검찰이 장악하려는 ‘검찰 국가’를 지향하는 징후였다. 검찰 권력의 독주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주권자들은 근본적인 질문을 검찰로부터 받았다. 헌법적 권한은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의 인사권이다. 인사권 행사마저 ‘대학살’로 비판하는 건 검찰을 사법기관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헌법에 어긋난다.

지난해 7월 윤석열 검찰총장은 취임 직후 인사 때 자신의 의견을 거의 100% 관철했다. 자기 사람을 중용했다. 공안 파트에도 윤석열 사람이 중용됐다. 그때 검찰 안에서 ‘윤석열 사단만 출세하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박상기-조국 장관 이양의 공백기에다,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에 따른 호의가 빚은 인사 참사였다. 윤 총장은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인 줄 착각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인사 의견 개진 지시마저 거부했다. 초유의 항명이다. 그는 법무부 소속 기관장이 아닌 준사법기관장으로 행세했다.

윤석열 총장은 평소 헌법을 자주 언급한다. 지금이야말로 윤 총장이 헌법을 다시 읽어야 할 때다. 그래야 말 따로 행동 따로 ‘윤체이탈 화법’이라는 비판도 사라질 것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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