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를 ‘불후의 명곡’으로
  • 나경희 기자
  • 호수 644
  • 승인 2020.01.2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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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노랫말도 멜로디도 처음 들었다. 유튜브에서 찾아봤다.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 자욱한 최루 연기 넘쳐나던 날/ 그대는 빨간 머리띠 묶고/ 투쟁의 불꽃을 높이 올렸네.’ 김영복 ‘다음페이지’ 대표(49)의 대학 시절 애창곡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이다. “생각해보면 재밌는 가사예요. 최루탄 연기 속에서 누군가 건넨 손수건 한 장으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노래한 거잖아요.” 1992년 학생운동 노래패인 ‘조국과 청춘’이 발표한 이 노래는 당시 대학가 분위기를 반영했다. 전대협의 전투적인 학생운동 노선 대신 대중적인 학생운동으로 변신을 꾀하던 때였다.  

1996년까지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김 대표는 1년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30대를 코앞에 두고 사회로 나온 그는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 17년 동안 출장 뷔페 업체를 운영하면서도 종종 거리에서 불렀던 그 시절 노래를 무심코 흥얼거렸다. 노래를 듣고 싶어 검색하면 대부분 현장에서 녹음된 듯한 낡은 음질의 유튜브 영상이 전부였다. 그래도 ‘올려줘서 고맙다’ ‘추억이다’라는 댓글이 잇달아 달렸다.

“왜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은 좋은 음질로 들을 수 없을까, 왜 내가 사랑했던 노래들은 벨소리로 만들어져 있지 않을까 답답해하다가 그냥 제가 나서기로 했어요.” 김 대표는 2018년 가을 아예 공연기획사를 차리고 ‘The 청춘’ 콘서트를 추진했다. 노래를 만든 사람도, 노래를 부르던 사람도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지금 아니면 다시는 이런 ‘동창회’ 자리를 못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때 불렀던 노래를 50대가 똑같이 부를 순 없다고 판단한 김 대표는 1980년대 노래를 2020년에 맞게 불러줄 대중가수들을 섭외했다. 노브레인, 육중완밴드, 타카피, 유성은, 박시환 등 젊은 가수들이 흔쾌히 응해줬다. “정치적 노래라는 이유로 거절당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옛날 노래를 편곡해 부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반겨주더라고요. 그때 기성세대야말로 여전히 ‘민중가요’라는 고루한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편곡 과정을 거친 민중가요 30여 곡은 오는 2월1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선을 보인다. 젊은 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조국과 청춘’ 등도 익숙한 노래를 새롭게 재해석해 부른다. 김 대표는 “민중가요가 하나의 문화적 장르로 자리 잡으려면 아티스트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 콘서트가 ‘잘된다’면 민중가요가 지속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는 “잘되면 〈불후의 명곡〉 민중가요 편도 만들어지지 않을까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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