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그림

미국 래퍼 티아이는 열여덟 살 딸에게 매년 ‘처녀성 검사(virginity test)’를 시킨다고 한다. 그가 팟캐스트에 출연해 한 말에 따르면 딸은 열여섯 살부터 산부인과에서 질주름이 손상되지 않았는지 의사에게 확인을 받는다. “딸이 성인이기 때문에 검사 결과를 아버지에게 알려주려면 동의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듣고서는 딸에게 동의를 종용했다.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스스로 방송에서 떠벌렸다. 방송 직후 여성단체는 물론 의료인들로부터 문제 제기가 쏟아졌고, 뉴욕 주의회는 처녀성 검사를 금지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이 에피소드는 어느 ‘관종’ 셀럽의 일화만은 아니다. 처녀성 검사는 ‘두 손가락 검사(two finger test)’라고도 하며, 여성이 질 삽입섹스를 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외성기를 진찰하는 검사다. 여성의 몸이 남편이나 아버지의 소유물이라는 가부장적 관점에서 여성의 ‘순결’에 가치를 매기던 전근대적 악습이 의료화의 권위까지 쓰고 살아남은 잔재다. 아시아나 중동 지역, 이슬람 문화권에서 주로 이뤄진다.

‘질주름 검사’ 자체가 인권침해

또 다른 취약 집단은 성폭력 피해자다. 성폭력 증거를 요구하는 법원이나 의료인에 의해 시행된다. 물론 체액이나 정액 등 물리적 증거를 채취하고, 상처가 있는 경우 치료를 하기 위한 검사는 필요하다. 이 검사 자체로 성폭력을 당했는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가늠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다. 질주름은 굉장히 탄력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상처나 손상 이후 저절로 아물기도 하며, 운동이나 자극 때문에 변형되기도 한다 (〈시사IN〉 제519호 ‘처녀막이 아니라 질주름이다’ 기사 참조). 질주름의 모양은 삽입섹스 여부를 알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되지 않고, 의학적으로도 필요가 없다. 또한 이 검사 자체가 인권침해이며, 장기적으로 자아통합성이나 정신 건강에 위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연합(UN)은 이 검사의 근절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생리컵을 쓸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고 싶어 질 안에 립글로스를 넣었다가 빼지 못한 열두 살 소녀가 병원에 찾아왔다. 몸을 탐구해보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앞으로는 손을 잘 씻고 탐폰처럼 꼬리가 있어서 뺄 수 있는 물체만 넣으라고 교육을 해야 하는데, 어머니가 궁금한 건 오직 ‘처녀막’이 괜찮은지였다. 또 한 번은 동료 산부인과 의사한테 의학 자문에 대한 2차 의견을 요청받았다. 성폭력 사건 피의자를 대리한 법무법인에서 의뢰가 들어왔는데, 내게는 주로 피해자 측 자문만 들어오기에 궁금한 마음으로 문건을 받아봤다. 3㎝가량 질주름과 질내 열상으로 봉합했다는 진단서를 가지고, 성폭력의 증거가 될 수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질내 삽입의 증거로 볼 수 있으며, 상해 정도를 보았을 때 일정 수준 이상의 물리력이 동반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성폭력의 여부는 동의 여부로 가늠하기 바란다’고 의견을 적어 보냈다.

처녀성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알아내려는 노력은 결국 여성의 몸에 대한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누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어떤 기준과 가치를 부여하느냐 하는 질문이다. 성폭력이 정조 상실이나 처녀막의 상해가 아니라 상호 합의와 존중에 기반하지 않은 성적 행위로 정의될 때, 여성과 남성의 섹슈얼리티가 대등한 비중으로 존중받고 교육되고 의료 자원이 할당될 때 비로소 처녀성이라는 단어도 없어지지 않을까. 그전까지는 뉴욕처럼 처녀성 검사 금지 법안이나 성폭력 양형기준 상향 법안이라도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기자명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