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세상의 속도에 현기증이 난다. 노래 한 곡이 가진 생명력이, 유행어의 순환 속도가, 벼락 스타가 대중의 망각 속으로 흡수되는 시간이, 가끔은 너무 빨라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어제가 다르고 또 오늘이 다른 이 숨가쁜 속도는 금방이라도 세상 모두를 집어삼킬 듯 거세게 휘몰아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의외로 초연하다. 대부분 살고자 하는 의지로 어느새 그 속도에 적응하거나,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시류에 몸을 맡긴다.

2017년 8월, 어딘가 수상한 제목 ‘담다디’로 데뷔한 10인조 보이그룹 골든차일드의 와이(Y)는 이러한 세상의 소모적인 속도전에 휩쓸리지 않은 드문 인물이다. 1995년생이니 올해 스물여섯, 아이돌로서 적지 않은 나이다. 물론 그저 시간만 흘러간 건 아니다. 연습생 생활만 꼬박 6년을 채운 데다 데뷔 3년 전인 2014년, 같은 소속사 그룹 인피니트의 멤버 엘, 호야와 함께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 조연으로 출연한 이력도 있으니 ‘준비된 신인’ 또는 ‘신인 아닌 신인’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경우다.

짧지 않은 6년이라는 시간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 건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그의 능력치로 확인할 수 있다. 팀 내 메인 보컬이라는 포지션에 어울리는 힘 있는 발성과 세련된 음색, 종종 메인 댄서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능숙한 춤 실력은 기본이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카메라와 무대 모두를 사로잡는 퍼포먼스 장악력인데, 정과 동, 강렬함과 유연함이 유려하게 조화되는 무대 위 와이의 존재감은 골든차일드의 무대를 본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주요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만일 와이가 지닌 장점이 여기까지였다면 어쩌면 이 글은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노래와 춤이 능숙하고 외국어 실력에 예능감까지 갖춘 ‘준비된 아이돌’이 꾸준히 쏟아지는 요즘, 와이의 준비된 재능은 모두 ‘시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뛰어난 달리기 실력으로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트랙 위에서 보낸 그가 구체적으로 가수의 꿈을 꾸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이 되고부터였다. 최근 데뷔하는 대다수의 아이돌이 예술에 특화된 중고교를 거치며 어린 시절부터 명확한 목표 아래 다방면의 트레이닝을 거치는 것에 비하면 이 역시 다소 타이밍이 늦은 셈이다.

이 더딘 걸음을 도운 건 다름 아닌 기다림과 성실함의 가치였다. 요즘처럼 뒤돌아서면 유행이 바뀌는 세상에 조금 미련하고 촌스럽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상 가장 화려하고 잔혹한 쇼 비즈니스의 장 한가운데서 가장 수수하지만 그만큼 소중한 가치로 빛나는 그의 땀과 시간에 대한 믿음을 보고 있으면 냉혹한 현실이 이런 거라며, 세상의 속도에 순응해야 한다며 습관적으로 내뱉는 얄팍한 하루의 말들이 어쩐지 무안해진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자신의 지금을 ‘좋아서 뛴 장거리’라고, 자신들이 대중에게 더 알려져야 할 이유가 ‘실력에 대한 자만이 아닌 자신감’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마음 같지 않은 세상의 속도를 원망하지도, 자신이 타고난 속도를 놓치지도 않는 이 단단하고 영리한 젊음. 오래 지켜볼 가치가 있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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