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이 사라지다
  • 고제규 편집국장
  • 호수 643
  • 승인 2020.01.06 12: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헤아리다 포기했다. ‘범 조국 수사’와 관련해 몇 번째 압수수색인지 숫자를 세다 접었다. 조국 전 장관 관련 압수수색만 70여 곳, 별건 수사로 의심받는 유재수 사건, 울산 사건까지 합치면 하루가 멀다 하고 검찰은 압수수색에 나섰다. 윤석열 검찰의 숱한 압수수색 가운데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최근 검찰이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을 밝히겠다며 경찰청을 압수수색했다.

영장 청구권을 독점한 탓에 검찰만이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내달라고 요청한다. 영장을 받아 압수수색을 하려면 경찰은 검찰로부터 관련 지휘를 받는다. 그런 경찰에게 대한민국 청사 중에서 유일한 성역이 있다. 바로 검찰청사다. 지난 10년 동안 경찰이 검찰청사를 압수수색하겠다고 신청한 영장은 검찰 단계에서 100% 반려되었다.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이나 스폰서 의혹 등 검사 비위 사건이 불거진 뒤 검찰 스스로 검찰청사를 압수수색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지난 70년간 경찰이 대검찰청을 압수수색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안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독점은 이렇게 사각지대를 만든다.

그렇다면 검찰이 감찰로 자정능력을 발휘했을까? 2018년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8~2017년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은 검사는 377명이었다. 이 가운데 337명이 감봉이나 견책, 경고, 주의 등 경징계를 받았다. 비위가 경미했다기보다 제 식구를 감쌌기 때문이다. 검찰 과거사위에 따르면 2008~ 2018년 피의사실 공표로 접수된 사건은 347건이었다. 검찰은 한 건도 기소하지 않았다. 피의사실 공표 범죄행위 주체와 기소 주체가 검찰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제 눈의 ‘들보’는 눈감았고, 남의 눈의 ‘티’는 돋보기로 보았다.

ⓒ시사IN 이명익

지난 검찰 역사를 되돌아보면 관료 검찰이었다. 형사사법 위에 군림했고 권력과 유착해 검찰 조직의 힘을 키워왔다. 조직의 안위와 우위를 지키는 게 검찰 조직의 지상 과제였다. 검찰만능주의를 넘어 검찰공화국을 추구했다. 정치인을 배출하는 사관학교 노릇도 했다. 엘리트주의로 무장한 검사들은 사회와 국민을 계도해야 한다는 의식을 체화했다(문준영, 〈법원과 검찰의 탄생〉). 윤석열 총장의 신년사를 보더라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의 본질”을 지키고 있다는 계몽주의 시각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지난해 12월30일 공수처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도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수사권이 조정되고 공수처가 활동에 들어가면 대검찰청이라는 압수수색의 성역도 사라진다. 물론 공수처가 실제적으로 활동에 들어가는 7월까지 검찰은 수사로 또는 여론전으로 ‘정치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다. 공수처법 통과는 검찰개혁의 끝이 아니다. 성역과 검사들의 엘리트 의식까지 허무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