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답게 옛날이야기나 할까. 정신분석학이 맹렬하게 유행했던 적이 있다. 1990년대 초 기존 사회주의권의 해체로 당시 대학생들의 ‘교양필수’처럼 여겨졌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서서히 퇴조하게 된 이후부터다.
자크 데리다, 루이 알튀세르 등을 필두로 이른바 ‘포스트(post)’를 단 유럽산 사상이 물밀듯 흘러들었다. 문제는 ‘읽어도 무슨 얘긴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감히 고백하건대, 1장(어떤 책은 서장)을 무사히 통과해보지 못했다. 나름 고심하다가 ‘정신분석학을 먼저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다수의 ‘포스트’ 저자들이 정신분석학 용어와 방법론을 많이 차용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시도였다. 정신분석학이 더 어려웠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기에 한때 관련 책들이 우후죽순 출간되었을 터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럽고 죄책감까지 느껴진다. 당시 내가 돈도 경력도 안 되는 ‘포스트’ 운운하는 사상들을 열심히 공부하려 했던 까닭은 뭘까? 스스로 규정했던 ‘진보’라는 정체성을 ‘기존 사회주의권 몰락’이라는 객관적 현실 속에서 유지하기 위한 헛된 몸부림? 더 나아가 진보라는 정체성 자체가 단지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데 필요한 환상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일 가능성도 있다.
이런 의문 자체가 2017년 번역된 정신분석학 관련 책을 읽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참 공교롭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쉽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친절한 설명과 충분한 예제 덕분에 예전엔 절망의 미로처럼 느껴지던 용어들이 시원스레 풀렸다. 환상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으면서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까지 덜 수 있었다. 이 책을 1990년대에 읽었다면, 그 무시무시한 ‘포스트’ 서적들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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