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의 ‘선한 영향력’ 어떻게 가능할까
  • 임지영 기자
  • 호수 643
  • 승인 2020.01.1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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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초기 댓글 서비스는 공론장으로서 긍정적인 구실도 했다. 부작용이 뒤따르면서 댓글 폐지와 인터넷 실명제가 거론되고 있다. 댓글의 선한 영향력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시사IN 조남진지난해 12월 한국언론진흥재단 설문에서 응답자의 약 90%가 댓글 운영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댓글의 선한 영향력 너무너무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연말,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받은 개그우먼 안영미가 밝힌 수상 소감 일부다. 그는 시청자들의 댓글 덕분에 〈라디오 스타〉에 합류하고 이 자리에 서게 됐다며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울먹이는 목소리로 ‘선한 영향력’을 다시 한번 당부했다.

그에게 응원이 됐던 ‘댓글’이 누군가에겐 칼이 되었다. 〈SBS 연예대상〉 대상을 받은 유재석은 “〈런닝맨〉에 출연했던 게스트 가운데 안타깝게 하늘로 떠난 구하라씨와 설리씨가 많이 생각난다. 하늘나라에서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면서 편안하게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걸그룹 마마무는 〈KBS 가요대축제〉의 ‘4x4ever’ 무대 인트로에서 ‘악플을 대하는 자세’ ‘도 넘은 악성 댓글·악플’ 등의 메시지를 화면에 띄워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악의적 댓글에 시달리다 법적 대응을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해 아이돌 출신의 설리와 구하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전 악성 댓글(악플)과 루머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고통을 호소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카카오는 설리의 죽음 이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포털사이트 다음의 연예 뉴스 댓글을 폐지하고 인물 관련 검색어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연예 뉴스 댓글에서 발생하는 인격모독 수준은 공론장의 건강성을 해치는 데 이르렀다”라는 이유였다. 지난해 10월31일, 다음의 연예 뉴스 섹션에서 더 이상 댓글이 보이지 않았다. 이용자들은 낯설어 하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간단한 일이었다는 걸 실감했다.

다음의 연예 뉴스 댓글이 폐지된 지 2개월이 지났다. 연말 시상식은 댓글의 부재를 다시 한번 체감하게 했다. 시상식에 참석한 연예인의 드레스나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댓글이 보이지 않았다. 반응은 긍정적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댓글 및 실시간 이슈 검색어(실검) 폐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0.8%가 다음의 연예 뉴스 댓글 폐지에 찬성했다. 응답자의 97.7%는 최근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에 악성 댓글이 영향을 미쳤다고 답하기도 했다. 다른 포털사이트도 뉴스 댓글 폐지가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85%)였고, 절반 넘는 응답자(55.5%)가 정치·사회 등의 섹션에도 댓글 폐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번 설문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응답자의 약 90%가 현재의 댓글 운영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는 점이다. 완전 폐지(40.4%), 댓글 작성에 제한 두기(33%), 선거기간과 같이 특정 시기에만 운영 중지(15.6%) 순서로 선호도를 보였다. 현재 상태를 지지한다는 답변은 7.2%에 불과했다.

카카오는 추가로 ‘실시간 이슈 검색어’ 서비스를 2월 중 폐지할 방침이다. 여민수·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는 “최근 실시간 이슈 검색어는 결과의 반영이 아닌 현상의 시작점이 돼버렸다”라고 밝혔다. 오랫동안 포털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실검 장악-어뷰징 기사 생산-악성 댓글’의 악순환에 대한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악성 댓글의 피해자는 연예인만이 아니다. 최근 한 인터넷 언론사는 외고를 청탁했다가 필자로부터 한 가지 요청을 받았다. 청탁에 응할 경우 관련 글의 댓글난을 없애달라는 게 요지였다. 악플이 달릴 걸 우려해서다.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고안한 자구책이었다. 필자는 해당 언론사의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포털사이트의 댓글난도 막아달라고 했다. 포털로 전송하는 기사의 경우 특정 기사만 댓글을 없애는 게 불가능해 싣는 걸 포기했다. 또 다른 언론사는 악플이 대거 달릴 것으로 예상되는 글의 경우 필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름을 익명으로 바꾼 경험이 있다. 악의적인 게시물이나 댓글에 대한 개인의 신고 건수도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범죄가 2014년 8880건에서 2018년 1만5926건으로 4년 만에 7000여 건 늘었다.

한국 사회가 처음부터 댓글의 영향력에 주목했던 건 아니다. 2002년 〈오마이뉴스〉가 인터넷 뉴스 사이트로는 처음 댓글 서비스를 시작했고 주요 신문사들이 같은 기능을 도입했다. 월드컵과 대선을 거치며 온라인에서 여론 형성이 활발해지던 시기다. 2004년, 네이버가 댓글 기능을 선보였다. 당시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 서비스가 부재했다. 도입 초기 댓글 서비스에 대해 공론장으로서 새로운 역할을 기대하는 긍정적인 시선도 있었다. 언론사에서 일방적으로 뉴스를 전달받던 뉴스 이용자들이 댓글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생산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었다. 기사보다 댓글에 더 많은 정보가 담기기도 하면서 ‘댓글 저널리즘’이란 말이 쓰이기도 했다.

부작용이 뒤따랐다. 댓글 창은 스팸으로 도배되고 욕설과 비방이 난무했다. 일부 댓글은 감정의 즉자적 분출구였다. 언론사가 포털사이트에 뉴스를 납품하는 형태의 유통 구조가 확고해지면서 언론사 홈페이지로의 유입이 줄고 포털사이트의 댓글난이 활성화되었다. 댓글을 통해 유명 연예인들의 사생활이나 루머가 무분별하게 퍼져나갔고 유니, 최진실 등 악플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했던 연예인들이 목숨을 끊었다. 자극적인 댓글을 기사화해 클릭 수를 늘리는 언론사의 습성도 비판 대상이 되었다. 댓글난은 혐오 표현의 생산지이기도 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 보고서 ‘혐오 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 따르면 이주민들이 혐오 표현을 가장 많이 접한 통로는 온라인 뉴스의 댓글이었다.

ⓒ연합뉴스카카오는 곧 실검 서비스도 폐지할 방침이다. 위는 카카오 조수용(왼쪽)·여민수 공동대표.

실제 댓글 작성자는 소수

줄곧 포털사이트 영향력 1위 자리를 고수해온 네이버의 댓글 정책은 자주 바뀌었다. 2006년 댓글 추천 기능을 추가했고 곧 공감·비공감으로 나뉘었다. 댓글 기능이 활성화될수록 이용자들의 체류 시간도 늘었다. 이는 광고 수익으로 이어졌다. 악성 댓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진 가운데 2007년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됐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같은 해 네이버가 아닌 SNS 계정으로 로그인할 경우에도 댓글을 달 수 있게 되었다. 2010년대 이후 대부분의 언론사가 이 같은 ‘소셜 댓글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2013년 네이버 댓글에 공감·비공감 수치에 따른 댓글 정렬 기능이 생겼다. 글자 수, 댓글 개수의 제한과 폐지가 반복됐다.

연예 뉴스 댓글이 먼저 폐지됐지만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리는 기사는 첨예한 이슈를 다루는 정치·사회 분야다. 정제되진 않았지만 다양한 견해가 충돌하는 댓글을 통해 이용자들은 여론의 향방을 가늠하곤 했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국가정보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2심 재판부는 “국가기관이 사이버 공론장에 직접 개입하는 바람에 자유롭게 논쟁하던 일반 국민들이 사이버 공간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라고 밝혔다. 국가 공무원이 포털 댓글을 공작한 데 이어 네이버 기사 댓글의 추천수를 조작한 ‘드루킹 사건’도 온라인 공론장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현재 네이버는 기사의 댓글 제공 여부와 정렬 방식을 언론사가 직접 정하도록 하고 있다.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욕설이 포함된 댓글을 자동으로 숨겨주는 댓글 필터링 AI ‘클린봇’을 실행 중이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댓글의 기능과 영향력이 과장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댓글이 곧 여론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댓글을 작성하는 사람은 소수라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2017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패널 94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3개월 동안 한 번이라도 댓글을 작성한 사람의 비율은 8%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2017 언론 수용자 의식조사’에서도 응답자의 11%가 댓글을 작성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댓글 차단 프로그램 사용하기도

소수가 댓글을 쓰지만, 다수가 읽는다. 2018년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성인 1075명에게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70.2%가 일주일 동안 포털사이트 뉴스 하단에 게시된 댓글을 읽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포털 뉴스 서비스 및 댓글에 대한 인터넷 이용자 인식조사〉). 댓글을 작성한 경우는 21.1%에 그쳤다. 주로 기사 내용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서(84%)였다. 댓글이 뉴스 이용자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정확하게 가늠하긴 어렵지만 소비 패턴은 뚜렷하다. 사람들은 기사를 접할 때 상위 10여 개의 댓글을 동시에 읽는다.

해외의 뉴스 댓글 서비스는 어떨까? 영미권은 뉴스 소비에 관한 한 한국처럼 포털사이트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언론사가 개별적인 정책을 취한다. 미국 공영 라디오 NPR(National Public Radio)은 2016년부터 댓글 자체를 폐지했다. 도입 당시 건전한 토론을 예상했으나 댓글을 남긴 독자가 0.03%에 불과했다. CNN, 로이터 등도 비슷한 이유로 댓글난을 없앴다. 이들 매체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한다.

〈뉴욕타임스〉는 제한적으로 댓글을 허용한다. 약 10%의 기사에 한해 별도 인력을 투입해 댓글 중재 작업을 벌인다. 어떤 댓글을 중재해야 하는지 예측해서 알려주는 알고리즘(모더레이터)을 통해서다. BBC는 댓글 대신 온라인 게시판을 활용한다. 〈가디언〉의 경우 인종이나 이민 문제 등 논쟁이 될 만한 기사에는 댓글을 달 수 없다. 우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기사를 소비하는 일본은 포털사이트의 책임을 강조한다. ‘프로바이더(서비스 제공자) 책임 제한법’에 따라 피해자의 요청을 받은 사이트 운영자는 악플을 삭제하고, 발신자 정보를 피해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대안을 찾고 있다. 포털이나 언론사의 정책과 상관없이 댓글을 차단하기도 한다. ‘셧업’이라는 웹 브라우저용 확장 프로그램은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댓글 창을 자동으로 차단해준다. ‘댓글을 닫아둠으로써, 정신을 보호하고 상처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다. 악성 댓글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댓글 폐지와 인터넷 실명제가 다시 언급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뿐더러 의사 표현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반론이 만만치 않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원은 포털사이트와 언론사 사이트를 별개로 접근한다. “한국은 뉴스 소비 면에서 플랫폼 의존도가 높다. 포털 뉴스 댓글은 공론장으로서의 가능성을 고려할 때 폐지보다는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댓글이 많이 노출되도록 만들 것인가 연구해야 한다. 언론사 홈페이지까지 가서 댓글을 다는 경우는 드문데 열성 독자 아니면 정반대일 확률이 높다. 더 극단적이고 퇴행적인 댓글이 달릴 수 있다. 포털과 달리 개별 언론사로서는 심각하게 고민해볼 문제다”라고 말했다. 댓글의 선한 영향력은 어떻게 가능할까. 세상을 등진 피해자들과 그의 동료들이 남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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