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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의 회장이 일본 검찰에 기소되어 보석 상태로 사실상 자택 연금되었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지구 반대편의 레바논에서 일본 사법기관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냈다. 영화가 아니라 실화다. 그 주인공은 카를로스 곤(66·사진 가운데) 전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회장.

곤 전 회장은 브라질에서 태어난 레바논계 프랑스 국적자다. 1990년대 들어 글로벌 자동차업계에서 신화적 업적을 쌓았다. 1996년 프랑스 르노는 곤을 부회장으로 영입해 파산 위기에 처한 자사의 구조조정 임무를 맡긴다. 곤은 르노를 바닥부터 천장까지 뜯어고쳤다. 부품 조달, 연구개발(R&D), 생산 과정, 인력 등을 포괄하는 전면적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1997년을 경유하면서 르노의 수익성은 급속히 개선된다. 더 나아가 르노는 1999년 일본 닛산 자동차의 지분 36.8%를 매입하면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설립한다. 닛산 자동차가 2조 엔 규모의 부채로 허덕이던 시기였다. 같은 해 닛산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부임한 곤(2001년부터 최고경영자)은 ‘닛산 부활 계획’을 천명한다. 2000년에 흑자를 내고, 2002년 말까지 영업이익률을 4.5% 이상으로 올리며 부채는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것.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 내 공장 5개와 직원 중 14%(2만1000여 명)를 줄이는 무자비한 수단을 동원하는 대신 실패하면 사직하겠다고 선언했다.

곤은 약속을 조기 달성(2002년 3월)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비용 킬러(Le Cost Killer)’ ‘기업을 바로잡는 남자(Mr. Fixit)’ 등으로 불리며 국제적 명성을 쌓더니 2005년에는 르노의 최고경영자(CEO)로 승진한다. 2016년 10월 닛산의 미쓰비시 경영권 인수 이후에는 이 회사의 이사회 의장까지 맡게 된다. 이렇게 성립된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는 2017년 판매대수 기준으로 글로벌 1~2위를 기록한다.

그러나 몰락이 황급히 그를 덮친다. 일본 검찰은 2018년 11월19일, 레바논발 비행기로 하네다 공항에 내린 곤을 체포했다. 자신의 보수를 실제보다 낮게(2011년부터 5년간 50억 엔) 신고하고 회삿돈을 지인(사우디아라비아인)에게 제공한 혐의 등이었다. 얼라이언스 내부의 지배권을 둘러싼 일본과 프랑스 간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일본 측이, 르노가 닛산-미쓰비시를 지배하게 되어 있는 구조를 바꾸려 시도한 것은 사실이다. 닛산과 미쓰비시는 외국인 경영자들을 내쫓았다.

곤은 레바논 현지에서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유죄판결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차별이 횡행하며 기본권까지 부정되는 일본 사법 시스템의 인질이 되기를 거부한다. 나는 정의(justice)를 피해 달아난 것이 아니라 불의(injustice)와 정치적 박해로부터 탈출한 것이다.” 일본과 레바논은 범죄자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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