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스포츠계 미투와 성폭력 문제 해결 등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 지난 12월20일 문화체육관광부 최윤희 제2차관이 첫 출근을 하며 밝힌 각오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체육계 성폭력 근절을 외치며 2019년을 열었다면, 그 외침이 2020년에도 여전히 중요한 과제임을 재확인하며 한 해를 마무리 지었다.
최 차관 임명은 최초의 여성 선수 출신 차관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행정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보은 인사’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차관직은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만큼 앞으로 이 부분은 최 차관이 업무 성과를 통해 증명해내야 하는 숙제로 남게 됐다.
공직자로서 돌파해야 할 비판 외에도, 최 차관 임명을 둘러싼 일부 반응에서 여성 선수를 향한 악의를 마주한다. 아무리 아시안게임 5관왕의 전설적인 수영 스타라도 ‘여성’이기 때문에 외모 비하나 성적 모욕이 담긴 댓글이 달린다. 한 경제지 논설위원은 최 차관을 두고 ‘수영 잘하는 아주머니’라고 일컫기도 했다. 결국 이런 생각이 들고 만다. 과연 남자 선수였다면 이런 말까지 들었을까?
‘과연 남자 선수였다면?’ 이는 여성 선수가 진로를 결정할 때 계속해서 마주치는 물음이기도 하다.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 해도 여자 종목은 남자 종목에 비해 팀 숫자도 적고 갑작스럽게 해체되는 경우가 잦다. 단적인 예로 서울시에는 전업 선수를 키워내는 여자 축구부가 초·중·고·대학 각각 한 팀씩밖에 없다. 그나마 서울시의 한양여대 여자축구 대학팀은 신입생을 뽑지 않고 해체 순서를 밟고 있다. 부산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여자 축구부가 하나도 없다.
불투명한 진학과 취업의 문턱을 어렵사리 넘어도 아이를 갖기로 선택한 순간부터 더 큰 고비가 닥친다. 2006년 출산을 이유로 해고되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어 복직했던 펜싱 이명희 선수가 대표 사례다. 이 선수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임신한 선수가 기량과 상관없이 팀에서 나가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관례’였다.
여성 체육인 향한 불평등
여성이 선수 생활을 길게 이어가기 어려운 환경인 만큼 은퇴 후의 환경도 순탄치는 않다. 대한체육회가 2018년 은퇴 선수 1733명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에 비해 미취업자 비율, 비정규직 종사자 비율이 더 높았다. 월수입 역시 여성 선수가 남성 선수에 비해 전반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직 여성 체육지도자 10명을 조사한 논문 〈한국 여성 체육지도자의 젠더 불평등 구조 분석〉(오정수, 2014)을 보면 그 배경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학연과 술자리로 다져지는 인적 네트워크, 체육단체의 요직을 대부분 남성이 차지한 현실, 여성 지도자의 실력을 무시하는 남성 수강생 등이 곳곳에서 여성 체육인을 촘촘하게 옭아맨다.
새해에는 역시 희망을 얘기하는 게 어울린다. 자신의 몸과 신체활동을 긍정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답답한 현실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여성 은퇴 선수들이 만든 사회적 기업 ‘위밋업스포츠’는 여성을 위한 스포츠 플랫폼을 표방한다. 모범적인 창업 사례로 국정감사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권예은 WK리그 해설위원은 과천시 여성축구단 선수 겸 감독, 우먼그라운드 대표라는 직함을 동시에 가지고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의 장벽을 허무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들의 시도가 마중물이 되어 새해에는 더 다양한 자리, 더 높은 자리에서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고 ‘뛰는’ 여성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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