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시도는 ‘계륵’ 트럼프는 ‘까르륵’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호수 642
  • 승인 2020.01.0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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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됐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서는 부결될 확률이 100%다. 민주당이 지연작전을 펼칠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트럼프의 지지층은 굳건하다.
ⓒEPA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월19일 탄핵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지고 민주당을 탈당한 제프 반 드루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을 만나고 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결국 미국 최대의 정치 쇼로 끝날 것 같다. 지난 12월18일(현지 시각), 미국 연방하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 등 두 가지 사유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하원에서 가결된 것은 앤드루 잭슨,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어 역사상 세 번째다.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의 장본인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하원의 탄핵소추가 결정되기 직전에 자진 사임했다.

하원을 통과한 탄핵소추안은 상원으로 넘어가 최종 결판을 보게 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우군인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서 소추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없다. 야당인 민주당은 이번에 대통령을 실제로 탄핵하기보다는 탄핵 카드를 잘 활용해 2020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좌초시킬 심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탄핵을 자신의 재선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민주·공화 양측이 서로의 카드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가운데 탄핵 쇼를 벌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7월,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약 4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대가로 민주당 대선 주자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의 비리 조사를 압박한 바 있다. 이 사실이 백악관 파견 직원의 폭로와 전·현직 관리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나면서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를 개시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하원에서 가결됐지만 정작 미국인들 가운데서는 놀란 사람이 거의 없다. 탄핵안이 상원으로 넘어가도 부결이 확실하기에, 시민들은 무덤덤하다. 현재 탄핵소추안은 하원의 손을 떠났지만 정작 이를 심리하고 재판해야 할 상원은 오히려 한가하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탄핵소추안을 즉시 상원에 보내지 않고 향후 추이를 봐가며 보내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1998년 12월 백악관 인턴 직원 성추행 혐의로 탄핵 심판대에 오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 당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에서 13명의 법사위 위원들이 소추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소추위원들은 일종의 ‘검사’ 역할을 맡아서 재판장 격인 상원에서 탄핵 사유와 가결의 필요성을 변론한다. 당시 상원은 약 5주간에 걸쳐 클린턴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인 위증과 사법방해 혐의를 심리한 뒤 두 건 모두 부결시킨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상원의 본격 심리가 시작되려면 먼저 펠로시 하원의장이 소추위원을 임명해야 한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두 가지 이유로 소추안의 즉각 회부를 거부했다. 상원이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없고, 무엇보다 ‘공정성’이 의심된다는 게 이유였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우파 언론 〈폭스 뉴스〉에서 ‘탄핵안 처리와 관련해 백악관과 100% 호흡을 맞출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이렇게 민주당이 늑장을 부리자 트럼프 대통령은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에게 ‘더 이상 (하원의 탄핵안 회부를) 기다리지 말고 (상원) 자체적으로 탄핵소추위원 지명 시한을 정해 즉각 처리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민주당이 지연작전을 펼치게 된 데는 로런스 트라이브 하버드 법대 교수의 주장이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트라이브 교수는 최근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민주당은 지연전술을 통해 하루빨리 탄핵안 문제를 종결짓고 싶어 하는 트럼프 대통령 및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와의 향후 탄핵 심리 관련 협상에서 민주당 견해를 강화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상원의 본격 심리를 늦추는 동안 추가 조사를 통해 더 많은 탄핵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상원 심리에서 공화당이 반대하는 핵심 증인 4명의 채택을 요구한 상태다. 이 가운데는 대북 강경론자인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포함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이 같은 민주당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공화당은 하원에서 소추위원단이 구성돼 상원 심리가 시작되면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표결로 부결시킨다는 방침이다. 상원 100석 가운데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상원의 3분의 2인 67석이 필요하다. 현재 민주당 의석은 친민주당 계열 무소속 2명을 포함해 47석이고, 공화당은 53석이다. 공화당 상원의원 전원이 반대 입장임을 감안할 때 탄핵소추안은 부결될 확률이 100%다.

ⓒAP Photo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지난 12월18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탄핵이 트럼프를 돕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연작전으로 일관할 경우 오히려 정치적 역풍을 자초할 가능성이 크다. 2020년 2월부터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어 6월까지는 경선을 거쳐 공화당과 민주당의 본선 주자가 결정되어야 한다. 민주당으로서도 상원에서 부결이 확실한 탄핵안에 너무 매달릴 여유가 없다. 민주당 대선 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앤드루 양이 당 지도부를 향해 “탄핵에 치중하다 보면 이 나라 국민이 직면한 실제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바라는 국민은 9월 탄핵 조사 개시 때보다 6%포인트 낮은 46%다. CNN은 이를 두고 “탄핵이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을 돕는다는 게 명백해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정 지지층이 굳건하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2017년 1월 취임 후 최근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사실과 다른 주장이 무려 1만5000건에 달한다. 하지만 고정 지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또 그에겐 중서부 산업지대와 중부 농업지대의 고정 지지층이 있다. 2016년 대선에서 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도 바로 이 지역의 선거인단을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의 첫 대선 유세 장소로 중서부 산업지대의 핵심인 오하이오주를 선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고정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하원의 탄핵소추안’을 ‘쿠데타 음모’라고 선전하고 있다. 퀴니피악 대학이 지난 12월 중순에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 고정 지지층이라 할 34%가 그의 국정 수행을 높이 평가한다. 의회 매체 〈더 힐〉의 정치 칼럼니스트 빌 슈나이더는 “트럼프 대통령이 굳이 지지층 이외의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할 필요를 못 느낀다. 고정 지지층만으로도 2020년 대선에서 재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역대 대선 유세에서 여권을 공격할 수 있는 최대 이슈인 경제 문제가 이번 대선에서는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인 중 4분의 3이 실업률 3%대의 최근 미국 경제를 20년 만에 도래한 최고의 호황으로 간주한다. 중국과의 무역 갈등도 최근 1단계 합의를 마무리했고, 멕시코 및 캐나다와도 무역협정을 타결한 상태다. 그러다 보니 2020년 11월 최대 대선 이슈는 경제도 탄핵도 아닌,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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