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사의 죽음, 그 후 1년
  • 나경희 기자
  • 호수 642
  • 승인 2020.01.1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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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진료 중 환자에게 공격당해 숨진 지 1년이 지났다. 의사, 간호사, 정신적 고통을 겪는 당사자와 가족들은 한국 정신보건 체계에 무엇이 필요한지 되묻고 있다.
ⓒ연합뉴스2019년 1월4일 고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1년 전 한국 사회는 의사 한 명을 잃었다. 2018년 12월31일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를 보던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상담 도중 갑자기 흉기를 휘두르는 환자에게 쫓기다 숨졌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환자에게 다가갔던 의사, 환자에게 늘 90°로 허리 숙여 인사하던 사람이었다.

당시 상복을 입은 유가족들이 장례식장에서 호소한 건 가해자 처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앞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낙인이 찍힐까 봐 걱정했다. 고 임세원 의사의 동생 임세희씨는 “오빠와 같이 이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자신의 진료권 보장과 안위도 걱정하지만, 환자들이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질환을 빨리 극복하기를 동시에 원한다. 그분들이 현명한 해법을 내주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임세원 의사의 유지와는 달리 2019년 한 해 동안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공포심은 높아져만 갔다. 2019년 4월17일 조현병을 앓던 안인득씨가 경남 진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불을 지르고 칼을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이틀 뒤 국회에서는 경찰관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정신장애인을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되었고, ‘잠재적 범죄자인 정신질환자를 사회에 무방비하게 풀어놓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잇따랐다. 일주일 사이 한 포털사이트에는 ‘조현병’ 단어가 들어간 기사만 1500여 건이 게시됐다.

이 사건들을 지켜보던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우리가 무엇인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의 정신보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라고 생각한 그는 2019년 4월 ‘정신보건개혁’이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텔레그램 채팅방을 열었다. 그곳을 통해 모인 의사, 간호사, 정신적 고통을 겪는 당사자와 가족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퍼즐 조각이 무엇인지 생각을 나누었다.

한국 정신보건 체계의 틀이 잡힌 건 1995년 정신보건법이 만들어진 뒤부터다. 이후 가장 논란이 된 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즉 강제 입원 규정을 둔 제24조다. 가족 한 명의 동의와 정신과 의사 한 명의 동의가 있으면 6개월 동안 강제 입원을 시킬 수 있고, 6개월 단위로 입원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조항이었다. 제24조를 악용한 사례와 인권침해 사례가 빈번하자 2017년 전면개정안인 정신건강복지법이 통과되며 강제 입원의 조건이 강화됐다. 정신건강복지법 제43조에 따르면 강제 입원 기간은 2주로 줄었고, 연장 가능 기간도 6주로 줄었으며, 연장할 경우 다른 정신과 의사의 진단이 필요하다.

ⓒ연합뉴스2019년 1월4일 동료들이 고인을 떠나보낸 뒤 발길을 옮기고 있다. 유가족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낙인이 찍힐까 봐 걱정했다.

법이 지향하는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컸다. 장창현 의사는 “법은 환자가 병원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하는 탈원화를 장려하는데, 정작 환자들이 병원에서 나왔을 때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과정을 도와줄 인프라는 거의 없는 상태다”라고 말했다.

당사자의 목소리 듣는 자세로

문제의 원인은 정작 아무도 당사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정신의학 시스템 생존자’, 권리를 말하다 기사 참조). 법 개정 이전에 강제 입원되었던 것이나 법 개정 이후 사회에 방치되는 것 중 그 어느 쪽도 당사자가 원하는 게 아니었고, 그들의 회복에 도움이 되는 건 더욱 아니었다. 법과 현실이 겉도는 동안 시스템이 수용하지 못하고 튕겨낸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사회적 공포감이 강화됐고,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기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것은 정신보건개혁 모임에 모인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사회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바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경청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장창현 의사는 “정신의학 시스템 속에서 당사자들은 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어떤 이성적인 판단도 내릴 수 없는 무능한 존재로 치부돼왔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서 의료적인 접근을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정신의학은 어디까지나 당사자를 조력하는 역할에 머물러야지 그들의 삶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정신보건개혁 모임은 ‘함께하는 의사결정 모델(shared decision making model)’을 대안으로 삼았다. 이 모델에서는 의사가 권위적으로 약물치료나 입원을 ‘명령’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합리적 방법을 ‘제안’하고 선택은 당사자가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임세원 선생님의 유가족께서 당부한 ‘인격적인 대우’는 당사자의 말을 듣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단지 약을 처방하기 위한 5분짜리 ‘상담’에서 과연 인격적인 만남이 가능할 수 있을까. 당사자가 정당한 권리 속에서 자신의 삶을 회복해가는 과정이 바람직한 진료 문화로 정착될 때 의료진 역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다.”

ⓒ마르코 카발로 정신건강실험센터정신병원에 수용된 환자들의 빨랫감을 실어 나르던 말 ‘마르코 카발로’의 모습을 본떠 만든 푸른 목마는 자유와 회복의 상징이다.

함께하는 의사결정 모델은 1960년대 영미권에서 시작된 비평정신의학(critical psychiatry)에 닿아 있다. 비평정신의학은 어떤 영역에서든 한쪽 주장만 있어서는 건강한 체계를 만들어갈 수 없고, 이는 정신의학도 예외가 아님을 강조한다. 당사자들은 자신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정신의학 시스템에서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았던 경험을 공유하며 스스로를 환자가 아닌 ‘(정신의학 시스템) 사용자’ 혹은 ‘(정신의학적 시스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로 재정의했다. 당시 활발했던 반전 운동이나 흑인 인권운동, 페미니즘 운동, 성소수자 운동 등과 맞물려 크게 성장한 비평정신의학은 학문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논의 수준이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한국 정신의학계에서 비평정신의학이 거론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2년 젊은 정신과 의사들이 모여 만든 정신보건연구회는 비평정신의학의 취지를 받아들여 당시 정신장애인을 위험한 자로 취급하는 내용의 정신보건법이 제정되는 걸 막았다. 1995년 좀 더 진보적인 정신보건법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창립 목적을 다한 모임은 해체됐고, 이후 2019년 정신보건개혁 모임이 만들어질 때까지 한국의 비평정신의학은 20여 년이 넘는 공백기를 거쳤다. 그만큼 정신의학계의 관성을 깨기는 쉽지 않았다.

장창현 의사는 일주일에 병원 세 곳을 돌며 진료를 본다. 매인 곳이 없기에 좀 더 자유롭게 고민할 수 있었다. 월·금요일에는 느티나무의료협동조합, 화·목요일에는 살림의료협동조합, 수요일에는 녹색병원에 진료실을 연다. 모두 ‘마을 주치의’를 표방하는 협동조합이거나 비영리 의료기관이다. 이처럼 지역사회에 밀착된 의료기관이야말로 병원에서 벗어난 당사자들이 사회에 정착하고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재활 시스템이라고 믿는다. 현실은 이런 의료기관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이탈리아와 미국을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사례로 들었다. 이탈리아는 성공적으로 정신장애인들의 탈원화와 정착을 이뤄낸 경우다. 1961년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의 정신과 의사 프랑코 바살리아의 노력으로 1978년 정신병원을 점진적으로 없앨 것과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공공시스템이 지원할 것을 명시한 법률 180호가 제정됐다. 정신병원에 수용된 환자들의 빨랫감을 실어 나르던 말 ‘마르코 카발로’의 모습을 본떠 만든 푸른 목마는 자유와 회복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20년 동안 의료인들의 진료 관점을 전면 재교육하고, 환자들이 퇴원한 뒤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기반을 구축한 이탈리아는 1998년 마침내 모든 정신병원을 폐쇄했다. 반면 향정신병 약물의 효능을 믿고 별다른 준비 없이 탈원화를 추진한 미국은 결국 정신장애인들을 다시 정신병원이나 길거리 혹은 교도소로 내모는 결과를 불러왔다.

ⓒ시사IN 조남진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회복과 인권, 지역 정신보건에 관심 있는 정신과 의사들의 모임(가칭)’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강원 속초·고성·양양 지역의 유일한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근무했던 최정화 간호사도 지역 기반 재활시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신보건개혁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최 간호사는 2019년 8월까지 4년5개월 동안 폐쇄병동에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환자들을 지켜봤다. 그가 현재 정신보건 시스템의 한계를 느낀 건 병원의 치료 방식 때문이다. “병원은 원래 사람을 치유해야 하는 곳인데,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이는 것 말고는 딱히 별다른 게 없었다.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는 했지만 모든 환자가 똑같이 색칠하기를 하거나 영화를 보는 식이다. 치료나 회복보다는 생명 유지 혹은 요양을 위한 곳에 가까웠다.”

폐쇄병동에서 환자들이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건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동안 옥상에서 걷기 운동을 할 때뿐이었다. 물론 외출이나 외박을 할 수도 있지만, 가족이 데리러 오지 않는 경우 병원을 벗어나기 힘들다. 최정화 간호사는 “그렇다고 가족을 탓할 수 없다. 정신장애가 없는 ‘평범한’ 아이와도 마찰이나 갈등 없이 잘 지내기가 힘든 일인데, 지역사회가 정신장애인 가족의 부담을 함께 보듬고 해결해주지 않는 시스템이다 보니 모든 책임이 가족에게만 쏠린다”라고 지적했다.

긴밀히 반응하는 지역 재활시설 많아져야

정신보건개혁 모임에 참여하는 홍수민씨에게는 조현병을 앓는 딸이 있다. 홍씨는 9년 전 딸이 환각이 보이고 환청이 들린다고 했을 때 굿을 했다. 조현병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전이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병원뿐이었는데, 병원에서는 ‘약 먹이고 산책 시키라’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병원을 여섯 곳이나 다녀보고 약도 바꿔봤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가족들이 당사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해야 하는지 배우지 않은 상황에서 약물만 처방받은 환자가 집으로 돌아오면 십중팔구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홍씨는 2019년 5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청소년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정신건강 교육을 의무화해달라’는 청원을 올렸다. 청와대 청원에는 약 2600명이 참여했다.

홍수민씨는 청원을 보고 연락해오는 당사자, 가족, 시민들과 함께 2019년 8월, 지역 내에서 ‘설악 어우러기’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심정으로 만들었다. 약물만으로는 안 되는데, 병원에서는 다른 선택지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재활시설은 형식적인 역할만 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게 가둬두거나 약만 먹이는 땜질 처방으로는 결국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속초 같은 지방의 경우 지역 재활 시스템은 더욱 척박하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2월 말 기준으로 전국의 정신재활시설 348곳 중 약 49%가 서울과 경기도에 집중돼 있으며, 여기에 6개 광역시에 위치한 시설을 더하면 수치는 73%까지 치솟는다. 속초가 속한 강원도에 있는 정신재활시설은 5곳뿐이다. 정신재활시설은 정신장애인의 입원이나 요양이 아닌 교육을 통해 조력하는 시설이지만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개개인에 맞는 사회 복귀 프로그램이나 직업 재활 프로그램은 기대하기 어렵다.

최정화 간호사가 바라는 목표는 당사자의 상태에 긴밀하게 반응하는 지역 재활시설이 좀 더 많아지는 것이다. “똑같은 자극을 줬을 때 어떤 사람은 무디게 반응하고, 어떤 사람은 예민하게 반응하며, 또 아주 과격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보통 평범한 자극에 ‘아주 과격하게 반응’하면 정신장애인으로 간주된다. 농담으로 던진 말이 방아쇠 같은 역할을 해 환자를 자극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경험이 반복돼서 쌓이면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다. 당사자의 ‘방아쇠’가 무엇인지 알고 배려해서 사회 복귀를 돕는다면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는 “상대방이 어떤 말과 상황을 불편해하는지 살피면서 대화를 하는 건 상식 아닌가.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결국 모든 사람은 서로 끊임없이 알아나가고 배워나가야 하는 존재다”라고 덧붙였다.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의료계와 더 이상 숨어 지낼 수 없다고 외치는 당사자들은 지난 4월 이후 정신보건개혁 모임에서 꾸준히 만나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세미나를 꾸렸고, 그 자리에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정치인과 공무원을 초대했다. 10월에는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한국 최초로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축제 ‘매드 프라이드’가 열리기도 했다. 2019년은 임세원 의사가 뿌렸던 ‘안전한 진료, 인격적 대우’라는 씨앗이 기어이 싹을 틔운 한 해이기도 했다. 장창현 의사와 뜻을 함께하는 정신과 의사 7~8명은 한 발짝 더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회복과 인권, 지역 정신보건에 관심 있는 정신과 의사들의 모임(가칭)’ 출범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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