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연말 즈음. 추워지기 시작한다. 필연적으로 따듯함을 생각한다. 몇 도쯤이 따뜻함이다, 정의하긴 어렵다. 일정한 조건에서도 누군가는 춥고 누군가는 덥기 마련이니. 한편, 따듯함이 꼭 온도일까. 보기 좋은 어떤 장면에서 우리는 따듯하다고 느끼곤 한다. 그 ‘어떤 장면’이 내포하는 의미도 각기 다를 터이다. 선함이거나 좋음, 기쁨이거나 부러움일 수도 있고 때론 상상의 영역이 되기도 하니까. 나는 따뜻함이 외부의 일이라 여겨본다. 겨울밤, 불쑥 집에 들어설 때, 말끔히 씻고 잠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가만히 손을 잡아줄 때, 일상에 지친 나를 누군가 덥석 안아줄 때도 우리는 따듯하다고 여기고 만다. 그리고 ‘나’를 따듯하게 만들어주는 그것들은 모두 나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곁이라고 해보자.

올해 여름 아침달에서 펴낸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는 조건 없는 온기로 우리 곁에 있어주는 반려견에 대한 시집이다. 시인 스물한 명이 필자로 참여해 자신의 반려견에 관한 시와 산문을 담아냈다. 이 시집은 누구에게 필요한 책인가. 따듯함을 가져본 사람이겠지. 서로 말 한마디 섞지 못했지만, 무간(無間)히 사랑하며 서로를 아는 그런 관계를 언뜻이나마 경험해본 사람들. 반려동물이야말로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가장 작은 자세로/ 엎드려(안미옥, ‘조율’)” “‘내’ 곁에 있는 존재. 내가 어떤 하루를 보냈든, “구슬 같은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는(유형진, ‘개들의 이름’)” 그런 존재. 너무너무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기꺼이 “이다음에는/ 너의 개가 될게(민구, ‘이어달리기’)”라고 말해주고 싶은 나의 개, 강아지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나부터 개와 함께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며 자꾸자꾸 따듯해지고 따듯해지다가 두 눈두덩이 따끔해지고 말았다. 이와 같은 곁을, 따듯함을 어찌 개에게서만 얻을 수 있겠는가. 다만 당연하고 익숙해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을. 식물이기도 하고 사물이기도 하며 때로 사람이기도 한 나의 소중한 곁들.

“어떤 순간에도 귀엽고 믿음직한 개는 말한다. 네가 누구든 너를 사랑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야(남지은, ‘사랑하는 나의 작은 개’)”라는 문장을 두고는 결국 울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두고 잊은 곁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익숙한 온기가 차올라 자꾸 전화를 걸고 싶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이 시집을 권하면서 말한다. 혼자 있을 때 보라고. 누구든 있다면 읽지 말라고. 그저 울어버리게 될 테니까. 하지만 혼자라면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비로소 나의 곁을 발견할 테니까.

기자명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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