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사회과학자들이 사회현상을 설명할 때 가정하는 세계가 있다. 정치학자들은 중간층의 중도적 의견을 기준으로 진보 좌파와 보수 우파가 종형으로 펼쳐진 분포의 세계를 가정한다.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이 집토끼인 진보 좌파와 보수 우파 시민들을 대표하면서, 이슈에 따라 중도파인 산토끼 시민들을 포섭하기 위해 선거 전략을 연구하고 양당이 타협하는 세계. 반면 사회학자들은 두꺼운 중간층 대신 양극화되는 세계도 얼마든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혁명이나 포퓰리즘 우파가 득세하는 상황에 대해 묵시론적인 생각을 쓸 때가 많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유럽의 포퓰리즘 열풍, 영국 브렉시트 등은 중산층이 단단한 안정과 타협의 시대가 위기에 빠졌음을 환기시킨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 앤드루 양의 〈보통 사람들의 전쟁〉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계에 대한 밑그림을 다시 그려낸다. 보통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을까봐 항상 두려워하고 무력감에 화가 난 다수의 옛 중산층이다.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 숙련된 목수이지만 나이 많은 실직자인 그에게 일자리는 없다. 싱글맘의 집을 고쳐주고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일터는 그를 잉여 인간으로 본다. 공공서비스는 그를 컴맹이자 ARS 서비스를 쓰지 못하는 디지털 문맹으로 취급한다. 앤드루 양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자리 상실 중 75%는 자동화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사무직, 소매판매직, 요리사 및 서빙, 운송업, 제조업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단다. ‘대실업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저자는 데이터를 통해 낙관론을 짓밟는다. 일자리를 잃은 운수업 노동자들이 거리를 점거할 비상상황 예측을 읽으며, 타다와 택시 노동자들의 갈등이 떠오른다. 침체된 도시를 묘사할 때 군산이나 쇠락한 산업도시가 보인다. 그사이 미국의 탁월한 상위 1%는 기술혁신으로 52%의 소득을 선취한다. 책은 사회학자들의 극단적·묵시론적 세계 인식을 드러내는 것 같다.

“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의 경구는 대책 없는 묵시론을 읊어대는 지식인들에게 죽비처럼 꽂힌다. 저자는 보편적 기본소득과 디지털 사회 신용에 기초한 사회적 경제를 말하고, 이는 미국 민주당 좌파들의 대안 정책이 되고 있다. 해법 자체가 너무 논쟁적이라 간단히 설명하긴 어렵다. 다만 노동시장 정책이 작동하기 어렵고, 기술혁신이 반드시 대실업을 만든다는 해석은 너무나 미국적 맥락처럼 보인다. 기술혁신과 세계화는 사회적 타협과 노동시장 정책에 현 단계의 한계를 뛰어넘은 다음 단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보통 사람들’에게 닥친 일의 묘사는 너무나 생생하기에 꼭 살펴 읽어보길 권한다.

기자명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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