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정치를 잘 모른다. 정치는 내 일상과는 상관없거나 더 어른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나도 서른인데!) 또 ‘국회’ 하면 그려지는 이미지는 삿대질과 고성 혹은 반대 의사를 표시한다는 의미로 뒤돌아 앉아 있는 모습 등이다. 그런데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는 〈핀란드의 의회, 시민, 민주주의〉는 정치 학술서적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관심 없던 정치를 달리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잘 알지 못하더라도 정치를 즐겁게 읽을 수 있다.

핀란드에는 20~30대 나이의 국회의원, 총리, 장관이 흔하다고 한다. 한 영상에서 스물한 살인 핀란드 총선 후보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녀는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 앞으로 그 주체가 될 청년들의 목소리가 당연히 반영되어야 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이를 보며 연령별 대표성이 떨어지는 우리나라 국회의 모습이 당연한 게 아니라, 개선해야 할 문제임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핀란드의 정치는 왜, 어떻게 다르지?’ 하는 궁금증이 이어졌다. 책 뒤쪽의 에필로그에 먼저 손이 간 것은 그 때문이다.

에필로그는 한국 정치 상황을 분석한다. 최근 뉴스에서 많이 거론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대통령 중임제를 비롯해 촛불혁명이라 불리는 지난 정권 교체 이후 시민들의 정치 참여 형태 등을 핀란드의 그것과 비교하여 설명한다. 온라인, 특히 SNS에서 활발한 ‘국민청’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다. 에필로그를 읽다가 더 깊이 알고 싶어지는 핀란드의 사례를 찾아 읽는 식으로 책을 탐독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국민청원 제도의 긍정적인 면과 그 한계점을 읽으면서 핀란드의 시민 발의 제도는 한국과 어떻게 다르고, 그 도입 과정이 어땠는지, 시민 발의의 조건은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 등을 담은 3장을 찾아 읽었다. 이렇게 읽다 보니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알 수 없던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덩달아 국내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저자인 서현수 박사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핀란드 고등교육기관을 졸업한 첫 한국인 박사이다. 2011년 말부터 핀란드에서 유학하며 쓴 논문을 바탕으로 이 책을 출간했다. 그만큼 핀란드 사례를 더 깊고 역동적으로 분석했다. 핀란드 정치제도 배경의 설명과 구체적 인터뷰 내용들은 다층적 이해를 돕는다. 시민사회의 요구가 크지 않아도 정부가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제도를 도입한 사례나 헌법 개혁을 통해 이루었던 과정들은 특히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비교학적 관점으로 읽어나갈 때 더욱 유용할 것이다. 2019년 세종학술도서(사회과학 분야)에도 선정된 이 책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정치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기자명 서정화 (전 스키 국가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