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나는 ‘치유’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병을 치료하는 것도 아닌데 여기저기 쓰이는 것 같아서다. 어디를 가면, 무엇을 먹으면, 무엇을 사면 치유가 된다는 식으로. 누구나 치유가 필요한 것처럼, 누구나 아픈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불편하다. 그러니 ‘문학 치유’라는 말을 다른 맥락에서 읽었다면 한숨을 쉬었을지도 모른다. 문학도 치유의 도구로 호출되는 것인가 하고.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문학 상담에서 작품은 치유의 도구가 아니다. 명쾌한 답을 주는 상담자도 아니다. 오히려 작품은 내담자와 함께 상담실을 찾은 또 다른 내담자로 여겨진다. 이 텍스트 내담자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실들을 ‘무심하고 정직하게’ 들려준다. 현실의 내담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내고, 자신의 생각과 상황을 그와 연결함으로써 성찰의 기회를 갖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텍스트에 대한 냉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단순한 정서적 지지와 자기 긍정을 통해서 봉합된 심리적 문제들은 너무 쉽게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을 읽으면 마음의 어떤 부위가 낫는 게 아니다. 작품을 통해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고 통찰을 이룰 때 내담자는 심리적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문학 상담에서는 성장이 곧 치유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것은 결국 문학의 독자들이 작품을 읽는 이유 아닌가. 적어도 문학 치유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맞는 모양이다. 텍스트의 권위나 정전적 해석을 거부하면서도 잘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들은 ‘함께 읽기’를 권한다. 상담자와, 다른 내담자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인문학적 지혜를 키워갈 수 있다. 문학은 그렇게 힘을 발휘한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던 것을 가시화한다.

그리고 ‘쓰기’가 있다. 시인의 문장을 빌려 시 쓰기, 시를 콜라주해서 자기 작품 만들기 등 다양한 글쓰기가 이 책에 제시된다. 은유와 상징을 통한 쓰기는 안전한 자기 탐색을 보장한다. 쓰기는 문제와 자신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만든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새롭게 자신을 만들어간다. 문학을 읽고 말하고 쓰는 일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든다.

이 책은 문학작품처럼 독자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고 그 무늬를 세심하게 관찰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어떤 진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누구에게나 마주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고, 문학이 그 일을 돕는다는 진실을. 그런데 그 목소리가 너무 ‘다정하고 정직하게’ 들려서, 고백하자면 나는 이 문학작품과는 거리 두기에 실패했다. 이 지면을 ‘이 책이 너무 좋다’라는 문장으로 채우면 몇 번을 쓸 수 있나 세어보았을 정도다. 딱 100번이었다.

기자명 김소영 (〈어린이책 읽는 법〉 〈말하기 독서법〉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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