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눈물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걸까. 어떤 책은 독자에게 이런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질문과 대답이 담기지 않은 책이 어디 있겠냐마는 올해 내가 책에서, 독서를 통해 드물게 얻은 ‘보람’은 ‘눈물의 수원지’에 관한 이 물음에 답하고자 스스로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올해 어떤 책은 사람에게 사람됨을 자문자답하도록 힘쓰기도 한 셈이다.

유병록 시인이 펴낸 산문집 〈안간힘〉은 어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한 사람, 한 가족, 한 세대가 마주한 슬픔을 담담히 써내려간 책이다. 아들의 장례를 치르는 하루 반나절 동안 세 끼를 챙겨 먹은 자신을 치욕스럽다고 여기던 시인은 그 치욕스러움에 담긴 힘을 애써 발견하고, 아내와 불화를 겪는 와중에도 ‘사람을 이해하는(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에 대해서 고심한다. 불행을 전염병처럼 여겼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백한 뒤에는 세월호 참사와 유가족의 심정을 기어이 돌아보기도 한다.

산 사람은 “왜 죽음으로 인해 삶이 달라지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또다시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마음먹을 것이다. 죽음으로 인해 달라지지 못한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건 가당치도 않을 테니까” 하고 죽음 이후를 산다. 그 이후의 치욕·행복·보람·떨림·침묵·마음·사람을 일러 시인이 적어둔 문장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그리운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에게….”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생사의 의미라는 싱거운 진리를 구체적으로 적은 선한 언어 앞에서 나는 몇 번씩 고개 숙인 끝에 이러한 문장을 책장 한쪽에 적었다.

죽음은 우리의 삶을 기쁨 쪽으로 조금 더 옮겨놓는다.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책이 우리의 마음에 결국 머물게 되는 건 그 울음 때문이 아니라 웃음 때문이라는 사실을. 사랑하는 이를 준비 없이 떠나보낸 비극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영원한 부재’를 기꺼이 짊어지길 자청하며 계속해서 “걸어가는 사람”이고자 애쓰는 시인, 한 인간의 자세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새삼스레 되새겨볼 수 있도록 한다. 살고 죽는 것에 관한 의미는 모든 책이 대체로 품고 있는 주제이지만, 그 의미에 주눅 들지 않고, 그 의미로 어깨에 힘주지 않으면서 자연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책은 꽤 희소하다. ‘등나무 그늘’로 시작해 ‘높고 어질게’라는 뜻을 가진 죽음의 ‘이름’에 또 한번 생명을 부여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유병록 시인의 책은, 그 희소한 것을 경험하게끔 하는 ‘올해의 찬란한 나아감’이다.

그리하여 눈물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걸까. 잘은 몰라도, 그것은 슬픔보다는 기쁨에 조금 더 가까운 장소에서 생겨나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보다 언제나 한발 앞선 곳에서.

기자명 김현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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