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이 책은 막연히 내 삶과 밀접하게 엮여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집’과 ‘집에 관한 느낌’의 기원, 그 느낌이 내 삶에 미쳐온 심각하고 지대한 영향력에 대해 인지하고 공감하게 해줄 안내서다. 더불어 남은 생애 동안, 집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친절하고 진지하게 조언한다. 생물학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모두 7장으로 구성된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호모사피엔스의 진화에 집이 미친 영향과 그 흔적,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재화와 상징이 된 집이 주는 의미와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응당 지녀야 할 태도,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집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우리 인간은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종(homebodies)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집은 우리 종의 매우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저자는 진화의 과정에서 집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설명하고, 집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현생인류의 진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고릴라나 침팬지는 어쩌면 매일 잠자리를 만들지만 ‘집’을 만들지 않는다. 인간 종이 진화의 단계에서 습득한, 집을 만드는 기술은 진화를 촉진했다. ‘집’을 중심으로 한 협력과 유대로 사회적 관계를 강화해나갈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종으로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다.

인간은 ‘집’이라는 무척 특별한 ‘고정점’에서 수면과 피로회복 같은 생리적 항상성을 얻을 수 있다. 그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과의 특별한 유대를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취한다. 집에 대한 막연한 느낌은 삶의 필수 조건으로 생체에 각인된 본능이다.

현대사회에서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정신적 이유, 혹은 재난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취약해지며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는지 설명하는 대목에서 주거는 ‘권리’임을 천명한 세계인권선언 제25조 1항을 수긍하게 된다. 집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집의 느낌이 강화되고 우리는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집과 관계를 맺으라고 조언한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고 집에 대한 온전한 느낌을 간직하라고 권한다. 집의 느낌을 잃어버렸을 때 앓는 향수병은 의지박약의 증거가 아니며, 더 큰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백신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집’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지 자문해보았다. 그 느낌을 잃어버려 상심한 사람들보다, 문득 잃어버릴 그 느낌조차 없는, 삭막한 주거 환경이 떠올라 슬퍼졌다.

기자명 김주원 (건축가·하우스스타일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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