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대피소다”
  • 김민섭 (작가·출판사 ‘정미소’ 대표)
  • 호수 641
  • 승인 2019.12.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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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의 문학〉
김대성 지음
갈무리 펴냄

 

〈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문학’이 소설이나 시 같은 개별 장르로 인식되는 동시에 예술적인 무엇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문학을 비롯해 소설, 시가 우리에게 자율성을 가진 장르로 다가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문학이 우리가 아는 ‘literature’의 역어가 된 지는 겨우 100년이 되었을 뿐이다. 문학은 예술이라는 언어로 감각되지 않았고, 1930년대까지도 연희전문학교의 문학 입문 커리큘럼에는 〈명심보감〉이 들어 있었다.

2019년에 이르러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고 물었을 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더욱 답하기 어려워졌다. 문학이 우리에게 답을 줄 거라고 믿는 이들은 별로 없고, 그것은 전공자의 자괴감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나 역시 대학에서 문학을 연구하는 동안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은 열악한 처우나 빈곤한 처지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이 일이 이 사회에 어떠한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아니 과연 문학이라는 게 과연 쓸모가 있기는 한 걸까’ 하는 물음표에 도무지 답할 수 없을 때였다. 그러나 누군가는 자신의 일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으로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구원해낸다. 문학연구자이자 비평가인 김대성은 문학을 ‘대피소’라 명명한다. 그에게 대피소는 단순히 몸을 피하는 장소가 아니다. 함께 “버팀목이 되고 울타리가 될 타인”이 없다면 그곳은 대피소일 수 없다. “곁이라는 관계성의 장소는 대피소의 결을 만들”어낸다. 그에게 문학은 우리에게 부단히 강요되는 사회적 욕망, 사회적 구속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대피소의 문학〉은 연구와 비평의 언어를 충실히 따르고 있어서 논문이나 계간지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어렵거나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이라는 한 단어를 잘 붙잡고 있다면 읽어나가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 어딘가에 대피소가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지키는 사람이 함께 있다는 뜻이며, 그곳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어떤 가치가 지켜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세계가 추방한 것들, 이 세계가 억압하는 것들, 이 세계가 외면한 것들 곁으로 사람이 다가설 때, 대피소의 벽돌은 단단해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작가와 함께 대피소에 존재하는 그런 기분이 되었다. 그가 나를 초대했는지 내가 그를 초대했는지 알 수 없었는데, 그건 아마도 우리 모두가 타인에게 대피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에 더해 이처럼 열심히 읽고, 공부하고, 쓰고, 기록하는 개인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맙고 소중하다. 그가 계속 누군가의 대피소가 될 수 있으면 한다. 나는 그를 지켜내고 싶다. 당신은 누구의 대피소로서 누구의 곁에 함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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