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어머니는 ‘어디에서’ 시작돼 ‘어디에서’ 끝이 나는가? 나의 의지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나의 0을 만들고 1이 되도록, 2로 크도록 나를 잡고 놓지 않았던 사람. 내가 무엇인지 안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오해하는 것이 운명인 사람. 그런 그녀들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과 더 닮아 있다. 그 땅 위에서 자식들은 밥을 먹고 똥을 누고 울고 웃고 나뒹굴고 마침내 그곳을 떠남으로써 어른이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머니가 사라지는 광경을 세밀하게 그려낸 최현숙의 〈작별일기〉를 읽으며 수몰민에 대해 생각했다. 살아온 흔적이 지문처럼 묻어 있는 땅이 죽음으로 꺼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 그 마음의 모양은 어떤 것일까? 〈할매의 탄생〉 〈할배의 탄생〉 등으로 노인의 생을 기록해온 작가 최현숙은 딸이자 관찰자로서, 절묘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어머니의 죽음을 글로 담았다.

〈작별일기〉는 고급 실버타운에 입소한 86세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으로 해체되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일지처럼 써 내려간 글이다. 억 소리 나는 보증금에 월 수백만 원을 지불할 수 있는 노인들을 위한 곳이지만 어머니는 이곳을 ‘관짝’ ‘감옥’ ‘예비 납골당’이라고 말한다. 2018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알츠하이머 증상이 심해진 어머니는 개인 주거공간에서 공동 케어홈으로 옮기게 된다. 저자는 이를 ‘복귀 불가능한 하강’이라고도 말한다. 그렇게 타인에 의해 ‘터’가 옮겨지고, 육신은 냄새와 함께 무너지고, 정신은 주야 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그런 이유로 저자 역시 어머니 옆에서 때때로 과거, 그 시간을 함께 걷는다.

다르면서도 닮아 있는 온갖 꼴들을 활자로 새겨놓은 이 일기를 읽으며 나는 내 안에 존재하던 묵은 질문을 마주했다. 그것은 “왜 나는 나의 부모가 그때, 대체, 왜 그랬는지를 이토록 이해하고 싶은가”였고, 동시에 “나는 왜 그들에게 제대로 이해받고 싶은가”였다. 때때로 이 질문들은 지독한 갈망으로 나를 덮쳐오는데 그 앞에서 나는 주로 ‘결국 패배할 것’이라는 무력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하지만 〈작별일기〉 속 어떤 마음의 풍경들은 마치 살갗에 와닿는 것처럼 구체적이고 기묘한 슬픔과 위로를 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화자의 어머니가 안전하게 죽음에 ‘도착’할 수 있었음에 안도했고, 그 온도가 너무 미지근해서 눈물이 차오르고 흘러내렸다. “늙어 죽어간다는 이 무지막지한 노역”을 해내며 화자의 어머니는 산 자들을 향해 ‘사느라 애쓴다’고 말한다. 실은 모두가 감당하고 있는 이 분투의 노역을 증언하며 최현숙은 한 노인의 죽음을 가장 잘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법을 미리 보여주었다. 기록의 힘은 이토록 정치적이다. 심지어 최현숙의 기록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기자명 김다은 (CBS PD·팟캐스트 〈혼밥생활자의 책장〉 진행)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