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헤엄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는 이슬아 작가.

“어쩜 좋아요.”

이슬아 헤엄출판사 대표가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출판인들이 꼽은 ‘내년이 기대되는 신진 출판사’에 선정된 기분을 묻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라는 직함이 어색하다. 얼떨결에 하게 되어 실수도 많고 ‘가랑이가 찢어지는 느낌’인데 기대해주니 감사하기도,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작가만 했다면 몰랐을 일을 혼나가며 배우고 있다. 좋은 공부가 됐지만 아쉬움이 많은 한 해였다.

지난 1월 이슬아 작가는 출판사 대표가 되었다. 구청에 가서 신고를 하고 사업자 통장을 개설한 뒤 사업자 등록을 하니 끝이었다. 지난해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독립 출판하며 제작·편집·홍보·영업·유통·포장·배송까지 직접 했다. 100개의 독립서점과 거래했지만 여전히 책을 구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되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설립 후 4권을 냈다. 수영강사이자 산업 잠수사였던 아버지에게 배운 헤엄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름을 지었다.

헤엄출판사에 거는 출판인들의 기대가 컸다. 이메일로 구독하는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나 독립출판 등 하는 일마다 화제였다. 이번엔 출판사 대표다. 자연스레 시선이 모아졌다. ‘작가에서 제작자로 변신한 이슬아의 행보가 기대되고, 이런 행보가 앞으로 출판 지형에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칠 듯’, ‘가장 작은 출판사이지만 가장 큰 존재감을 보여준 출판사. 성장할 일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설문 응답자들의 반응을 들려주자 이슬아 작가가 말했다. “새해가 너무 무섭네요.”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헤엄출판사에 갓 출간된 책들이 쌓여 있었다. 파주로 이사 온 지는 4개월. 살림집을 겸하는 주택 1층을 출판사로 쓰고 있다. 창 너머 정원의 해먹이 눈에 들어왔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파주에 오니 물류센터나 인쇄소가 가까워 편하다. 최근 세 권의 책이 한꺼번에 나와 매일매일 소형·중형급 사고를 치고 있다. 이슬아 대표 본인의 산문집과 인터뷰집, 서평집이 출간됐다.

1인 출판사가 아니라 2.5인 출판사다. 그의 어머니는 물류센터장으로 최근엔 세금 관리 등 회계를 담당하고 있다. 유통센터장인 아버지는 트럭으로 책을 운송한다. 일단 어머니만 정식 직원이다. 원고료는 선금으로 준다. 평소 인터넷 쇼핑만 해도 선불인데, 원고료는 글을 보낸 뒤에도 한참 있다 들어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선입금하면 무섭게 마감을 지킨다.

집필만 했다면 몰랐을 것들

작가인 동시에 독자인 그는 평소 남들이 무얼 얼마나 탁월하게 잘하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돋보이게 해주고 싶은 작가를 만날 때 편집자로서 욕심이 생겼다. 직업적 동경도 있다. 멋진 일이라 생각했고 훈련해보고 싶었다. 출판사를 안 하면 질투하고 부러워만 했을 또래의 작가를 동업자로 만드는 과정이 좋았다. 첫 결실이 정재윤 작가의 〈서울 구경〉이다. 직접 출간 계약서를 준비하며 예전에 썼던 계약서에 왜 그 모든 조항이 들어갔는지 알게 되었다. 여전히 미숙한 게 많고 전문가가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투고가 많은 건 의외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글 쓰고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실감한다. 여력이 되면 답장을 하는데 현재는 제 코가 석 자라 직접 출판해보면 어떨지 권유하는 편이다. 제작·홍보·마케팅 등 여전히 많은 일을 혼자 감당한다. 규모를 키우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다.

1년만 내다보고 했다.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미래야 알 수 없지만 해본 것과 안 해본 건 다르다. 배본사와 인쇄소, 파쇄 현장을 경험했다. 집필만 했다면 출판 과정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있는지 몰랐을 거다. 그걸 떠올리며 더욱 최선을 다해 집필에 임하게 되지 않을까. 힘들지만 해보길 잘했다. 작가 정체성이 출판사 정체성과 같이 가는 게 장기적으로는 독인 것 같다. 작가로서의 실패가 출판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간 이슬아’는 시즌 3을 앞두고 있다. 연재 계획은 미정. 일을 줄여야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2년 동안 소진되는 느낌이 들었다. 헤엄출판사의 내년 계획이 궁금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1종이 나오면 다행이고 0종이어도 괜찮습니다. 초반에 에너지를 쏟아 내후년에 부활해도 될 것 같아요.” 책을 내는 것만이 출판사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든 책의 수명을 길게 가져갈 수 있는 방식을 궁리 중이다. 인터뷰집인 〈깨끗한 존경〉의 경우 책에서 다 못 살린 이야기를 오프라인에서 확장하고 싶다.

이슬아 대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직원이기도 한 그의 어머니에게 사장에 대한 평판을 물었다. 직원에게 너그러운 대표였다. 실수해도 그럴 수 있다고 하는 편이라고. 책도 나오기 전 원고료를 먼저 지급하는 게 낯설면서도 멋있어 보인다. 딸이라 조마조마할 때는 있다. 본인의 실수로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봐서다.

이슬아 대표는 여력이 있다면 ‘게으르고 즐거운 비건’이라는 책을 내고 싶다. 대표와 정직원 모두 비건이다. 비건도 게으르고 즐거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출판사가 계속 이어진다면 쓰레기를 덜 만들고 육식을 지양하는 방식의 이야기를 추구할 계획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소감을 전했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고 제가 잘 못하는 부분을 알고 있는 분도 있을 텐데 ‘정신 똑띠 차리라’ 이런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되네요.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인들은 헤엄출판사 외에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페터 한트케의 시집을 출간한 읻다와 ‘묵직한 기획력’을 보여준 메멘토, ‘의미 있는 책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는 프시케의숲 등을 ‘올해의 루키 출판사’로 추천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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