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온라인 서점 역대 하루 판매 기록을 모조리 바꿔놓은 펭수.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는 일은 책과 출판의 시간을 돌아볼 때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다. 가급적 다른 길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2019년을 마무리하며 베스트셀러 1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은 교육방송의 캐릭터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펭수. 예약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온라인 서점 역대 하루 판매 기록을 모조리 바꿔놓았다.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가 몇몇 온라인 서점에서 10분 만에 1000부, 3시간에 1만 부가 판매되었다는 기사는 믿기 어려웠다. 그야말로 펭수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책이 팔렸다. 사후 출간된 평전 〈스티브 잡스〉, 대통령 선거 출마를 앞두고 큰 관심을 모은 〈안철수의 생각〉 출간 때 줄 서서 책을 구매하던 모습을 넘어선 풍경이다. 펭수니까 일단 구매를 예약하고 기다리겠다는 (나를 포함한) 독자들의 100자 평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책이란 무엇이고 누가 왜 책을 사는지 되새겨보게 된다.

올여름을 뜨겁게 달군 화제작 〈반일 종족주의〉도 베스트셀러 1위로 기억될 텐데, 일본의 수출규제를 시작으로 격화된 한·일 갈등 속에서 책 내용을 둘러싼 논란이 이슈를 만들었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에서 모두 1위에 올랐고, 지난가을 일본에서도 출간되어 여러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펭수와는 다른 맥락에서, 과연 책이란 무엇이고 누가 왜 책을 사는지 되새겨볼 일이다.

출판계에서는 이 책을 베스트셀러에서 빼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서점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는데, 베스트셀러는 판매량 집계이니 임의로 특정 도서를 제외하는 방식이 오히려 온당치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참고로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집계에는 실제 판매량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사재기 등 베스트셀러 순위의 인위적 조작을 막고 출판업계의 건강한 경쟁을 도모하고자 만든 업계 내 자율협약에 따라 한 사람이 단기간에 여러 권을 구매해도 실제 순위에는 한 권만 반영된다.

이렇게 보면 현재 베스트셀러 순위 역시 상황과 방향이 반영된 결과이니, 특정 도서를 넣고 빼고를 넘어 베스트셀러 순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염두에 두고 집계와 발표 방식 등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논란을 빚은 키워드 ‘베스트셀러 어뷰징’도 짚고 넘어가자. 어뷰징은 언론사가 특정 키워드를 포함한 기사를 반복 노출하는 것을 뜻한다. 이슈를 보도하는 게 아니라 기사 자체로 이슈를 만드는 방식이다. 출판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의 ‘자가 생산’ 베스트셀러가 등장했다. 이를 ‘베스트셀러 어뷰징’이라 부르며 문제를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베스트셀러 어뷰징’ 규제 어려워

대략 흐름은 이렇다. 강연을 비롯한 여러 활동으로 영향력을 쌓은 이가 독서를 독려한다며 몇몇 책을 권한다. 그의 추천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책을 구매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그런데 책을 추천한 이와 해당 출판사가 가깝게 얽혀 있다. 통상의 책 추천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런 방식으로 추천자와 출판사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득을 얻는 구조가 온당하지 않다는 의견이 꾸준했다.

베스트셀러 어뷰징은 지속되고 있다. 아직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의도적으로 개입해 판매 확산을 노리는 사재기와는 다른 방식이다. 당분간 이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과연 책이란 무엇이고 누가 왜 책을 사는지 되새겨보기로 한다. 책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한둘이 아니다. 새로운 매체나 플랫폼이 등장할 때마다 전에 없던 홍보 방식이 등장한다. 올 한 해 출판계에서는 유튜브가 가장 강력한 채널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스타 강사 김미경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김미경 TV’는 구독자를 80만명 이상 확보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집중 소개하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러자 수백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내고서라도 순서를 기다려야 방송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전언이다.

ⓒYouTube 김미경 TV 갈무리‘김미경 TV’(위)가 집중 소개하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연간 수입 10억원에 이른다는 유튜버가 인생을 바꾼 책으로 꼽은 도서들은 출간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재조명받았다. 출간 당시보다 높은 순위에 오르며 뜻하지 않은 수확을 누렸다. 과거 블로그 플랫폼이 인기일 때, 파워블로거들의 상품 관련 글이 판매에 영향을 미치자 광고가 개입되었다. 결국 신뢰도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광고 표기 규제가 생겼다. 유튜브에서도 비슷하게 자정작용이 일어나고 균형점을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도 유튜브의 영향력은 지속될 것이다. 유튜브에서 펼쳐질 책과 출판의 이야기에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

텔레비전 방송에 책이 소개되며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모습이 훨씬 익숙하다. 올해에는 tvN의 〈요즘책방:책 읽어드립니다〉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다. 제목과 저자 정도는 들어봤지만 막상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책을 소개했다. “죽은 책도 살리”고 “어떤 책도 속전속결 마스터 가능”하다는 이 방송은 인기 강사 설민석이 진행한다. 소개가 되는 도서에 적합한 전문가나 연구자가 게스트로 나온다. 〈사피엔스〉 〈징비록〉 〈군주론〉 〈총, 균, 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등 고전을 아우르며 책들이 소개됐다. 방송은 이 책들의 판매 상승에 힘을 보탰다.

유튜브와 방송사의 영향력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단기간 영향력을 중심으로 보면 방송사보다 유튜브의 파급력이 더 크다. 출판계는 변화하는 매체 환경에서 책과 연계성·친화력이 높은 쪽이 어디인지, 각각 특색에 맞춰 책이 어떻게 다뤄질 수 있을지 즐거운 상상을 펼칠 기회다.

ⓒ연합뉴스tvN의 〈요즘책방:책 읽어드립니다〉는 스타 강사 설민석(왼쪽)이 진행한다.

올해 출판계를 되돌아보며 온라인 서점 20년사도 짚어보자. 예스24와 알라딘은 올해 사이트 오픈 20년을 맞았다. 출판사에서 책을 공급받기 어려웠던 초창기를 생각하면 오늘날 출판계에서 온라인 서점의 역할과 영향력은 상전벽해다. 당일배송, 할인 판매를 거쳐 온라인 및 오프라인 중고 서점과 굿즈를 동반한 판촉 활동까지 다양하게 이뤄진다. 동시에 여전히 출판업계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서점을 둘러싼 이야기는 한둘이 아니며 현재진행형이다. 책과 출판의 다음 20년을 그려보는 데에도 지난 20년 온라인 서점의 궤적은 중요한 자료이자 방향타이다. 개별 서점의 20주년 이벤트에 그칠 게 아니라 출판업계 안팎에서 폭넓은 조사와 평가, 반성과 전망이 이어져야 한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낸다고 했듯 새로운 시도와 제안이 줄을 이으며 출판계와 독자의 판단과 선택을 재촉한다. 20년을 맞은 온라인 서점의 20년 후를 그려보는 마음은 초창기 때와 다르지 않을 듯싶다. 유명 저자가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개별 도서나 글 또는 활동으로 콘텐츠 제작과 확산이 이뤄진다. 기존 종이책과는 다른 제도 위에 있던 전자책 시장을 어떤 층위에서 다루어야 할지 격론이 벌어진다. 스스로 4세대 서점을 표방하며 연쇄 판매와 재정가 판매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숨 쉴 틈 없이 쏟아진다. 이미 앞물로 밀려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 밀려나가도 좋으니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고 더 나은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 그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마음이 뒤섞이는 요즘이다.

새해에는 더 많은 베스트셀러로 이 지면을 가득 채워 이런 고통에 이르지 않기를, 책을 권하고 알리는 새로운 채널과 시도를 담기에도 이 지면이 모자라기를 바란다. 최소한 더 나은 온라인 서점의 21년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코 만만찮을 다짐을 붙인다.

기자명 박태근 (알라딘 도서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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