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클라라 비크 슈만. 지난 한 세기 동안 그녀는 거의 잊힌 채로 있었다. 19세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가장 사랑받고 영향력 있는 콘서트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고, 멘델스존·쇼팽·슈만·브람스·요하임·리스트·바그너의 비중 있는 동료이거나 인정받는 후배였으며, 반짝이는 재능을 지닌 작곡가였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문득, 2019년 그녀의 이름이 멀리서부터 호출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여성’이라는 키워드에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고, 탄생 200주년이란 수식에 기대어 간신히 가능해진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

낸시 B. 라이히의 〈클라라 슈만 평전〉은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시대를 살았던 한 여성 음악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세밀하게 복원해낸 성실한 기록물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본문에는 인물의 삶과 그것의 몇 가지 주제들이 두껍게 기록되어 있고, 제시된 연대표에는 부친 프리드리히 비크가 태어난 1785년부터 막내딸 오이게니 슈만이 사망한 1938년까지 그녀의 가족이 펼친 음악과 일상의 중요한 마디들이 촘촘히 걸려 있다.

클라라 슈만은 ‘여성은 가정의 천사’라는 그 시대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복잡한 태도로 항상 그것과 대면해야 했다. 이를테면 결혼 후 그녀에게 연습과 창작의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지만, 대체로 자발적인 방식으로 슈만과 브람스의 작품 활동에 조력하거나 그들의 작품을 알리는 데 많은 에너지를 투여했다. 음악가로서 자신의 능력이 공정하게 이해받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예술가로서 자신이 지닌 재능 또한 자주 걱정했다. 연주 활동을 통해 가장인 남편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도 그녀에게는 매번 불편한 일이었다.

그러한 위태로움 속에서도 클라라의 삶은 온전히 음악 속에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 공적 생활과 연관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음악의 시간 속에 배치되어 있었고, 그런 방식을 통해서만 관계 맺을 수 있었다. 훗날 그녀의 딸은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어머니 안에 여성과 예술가가 분리되지 않고 한 몸으로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건 어머니의 이 부분에, 저건 어머니의 다른 부분에 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어머니에게서 음악과 우리 중 하나를 앗아가면 우리를 더 아까워할지, 음악을 더 아까워할지 궁금해하곤 했다.”

“남성적 에너지와 여성적 감각을 모두 지닌 위대한 예술가” 혹은 “피아노의 여사제” 같은 수사는 클라라 슈만의 전부가 아니다. 그녀의 탁월함은 오히려 자신의 삶 속에서 일상과 예술을 분리 불가능한 방식으로 조화시켜냈다는 데 있다.

기자명 권용선 (수유너머104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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