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 평전
한명기 지음, 보리 펴냄

“무엇보다 철저하게 현실을 직시하면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려 했던 최명길의 경세가로서의 풍모가 그립다.”

김상헌과 최명길. 영화·소설 〈남한산성〉을 보고 읽으며 두 인물에 관심이 갔다. 병자호란 때, 김상헌 등 척화신들은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명길은 명을 위해 종사를 포기할 수 없으며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자고 했다. 척화파와 주화파의 논쟁이 인조가 도피한 남한산성 안을 맴돌았다. 김상헌이 화친을 청하는 국서를 찢고 통곡하자, 최명길은 그것을 주워 맞추며 말했다. “국서를 찢는 사람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국서를 주워 맞추는 사람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당시 척화파와 주화파의 비율은 95대 5 정도였다고 한다. 최명길은 왜 소수파의 자리에 기꺼이 섰을까? 이런 궁금증을 지닌 독자에겐 이 책이 마침맞다. 역사학자 한명기 교수의 저작이라면 더더욱.


 

 

 

 

 

 

 

 

오늘 일은 끝!
폴커 키츠 지음, 신동화 옮김, 판미동 펴냄

“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일하는 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자아실현이나 행복, 성취감 같은 휘황찬란한 단어로 ‘일’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루 9시간, 주 5일, 12개월을 주야장천 하다 보면 꿈의 직업이라는 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실망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저자는 말한다. 사실 우리는 일을 가졌다는 사실을 좋아할 뿐, 일하고 있을 때는 원래 불행한 것이라고. 일을 일로만 바라보기로 한 저자의 통찰은 일에 지친 사람들에게 주옥같은 명언을 남긴다. ‘일은 시간과 돈의 교환이다’ ‘일에 대한 의미 부여는 오히려 삶에 대한 만족감을 파괴한다’ ‘같은 노동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등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곧 노동자 권리에 가까워지는 일이다.

 

 

 

 

 

 

 

 

 

 

그들은 목요일마다 우리를 죽인다
앤서니 레이 힌턴 지음, 이은숙 옮김, 혜윰터 펴냄

“누가 살 가치가 있고 누가 죽어 마땅한지 우리가 판단할 수 있을까?”

1985년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던 29세 흑인 청년 앤서니 레이 힌턴이 일급 살인 두 건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국선변호사는 검찰의 거짓 주장을 반박하지 못했고 힌턴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14년이 흐른 뒤 사법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 단체에서 활동하던 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이 힌턴을 찾아왔다. 스티븐슨은 10여 년에 걸친 법정 싸움을 통해 그가 무죄임을 밝혀냈다. 힌턴은 수감된 지 30년이 지난 2015년 감옥에서 나와 책을 쓸 수 있었다. 그는 책 말미에 출간 당시 미국 교도소에 사형수로 수감돼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실어놓았다. ‘통계에 따르면 이 명단에서 열 명 중 한 명은 무고하다. 이 이름들을 천천히 읽어보라.’

 

 

 

 

 

 

 

 

 

염소가 웃는 순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염소 머리가 나를 보며 교활한 미소를 짓고 있다.”

홍콩 출신 작가인 저자는 굉장히 신기한 사람이다. 일본을 제외한 동양권 작가로서는 기이하게 느껴질 만큼 독보적 수준의 미스터리 소설을 쓸 뿐 아니라 작품마다 맛이 다르다. 저자를 한국에 널리 알린 ‘13·67’이 홍콩의 역사적 변천과 사회상을 짙게 반영한 사회파 소설인 반면 ‘염소가 웃는 순간’은 일종의 호러 미스터리. 도입부의 설정은 일본에 흔한 ‘학원 호러 미스터리’를 표절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초자연적인 사건이 터지면서 작품의 인상을 바꾸고, 결말부에서는 모든 복선을 깔끔하게 회수하면서 ‘산뜻하고 합리적인 해결’이란 느낌을 준다. 그의 소설들은, 작품별로 맛이 다르지만 공통점은 ‘맛있다’는 것이다.


 

 

 

 

 

 

 

 

 

거래된 정의
이명선·박상규·박성철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간첩 조작은 일련의 사법절차 안에서 완성됐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두 번째 책. 공동 창립자인 박성철 변호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2016년 겨울, 당시 박 변호사는 과거사 사건의 국가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를 6개월로 제한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위헌 소송을 한 상태였다. 이명선·박상규 〈셜록〉 기자에게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곧 양승태 사법부에서 벌어진 국가배상 청구권 자료가 눈앞에 펼쳐졌다.
제주 간첩조작 사건, 춘천 강간살인 조작 사건, KTX 승무원 해고에 이르기까지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 의혹 피해자들을 직접 만났다. 법원에 농락당한 이들의 기나긴 삶을 한마디로 축약하는 게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 책을 넘기다 보면 깨닫게 된다. ‘양승태 사법부가 바꾼 인생들’이다.

 

 

 

 

 

 

 

 

 

수영장의 냄새
박윤선 지음, 창비 펴냄

“분명히 다들 나처럼 불편해하면서, 모두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어린이에게는 분명 잔인한 구석이 있다. 흔히 유년시절을 순수함이라는 단어로 포장하지만, ‘모른다’라는 말에는 윤리가 깃들기 어렵다. 아이들은 주변 사람을 대상으로 옳고 그름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실험하며 사회화 과정을 밟는다. 때로 시험 대상은 무리 중 가장 약한 사람이 된다. 무리 짓고, 위계를 만들고,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괴롭힘당하면서 우리는 성장한다.
그래픽노블 〈수영장의 냄새〉는 유년을 미화하지 않는다. 학교와 학원과 수영장을 그저 부모가 시키는 대로 오갈 뿐인 주인공 민선이 느끼는 모순과 복잡함을 정면으로 다룬다. 평범한 민선은 그 덕분에 어느 한 시절의 ‘목격자’가 된다. 독자는 민선을 통해 내가 지나온 유년 시절이 결코 평탄치만은 않았음을 서늘하게 마주하게 된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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