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게 탄핵은 위기 아닌 기회?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호수 640
  • 승인 2019.12.2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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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주도의 탄핵을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고 모금운동을 확산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려 한다. 경제 호황 덕에 탄핵안이 잘 먹혀들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AFP PHOTO12월10일 제럴드 내들러 미국 하원 법사위원장(가운데)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공개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미국 정국을 뜨겁게 달궈온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논란이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12월10일, 민주당이 지배하는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공개했다. 탄핵의 구체적 사유가 적시된 문서다. 이 탄핵안은 12월 중순 하원 전체 표결에서 가결되면 내년 1월 상원으로 넘어간다. 민주당이 과반을 점유한 하원에선 탄핵안 가결이 확실하다.

민주당의 탄핵 발의를 ‘정치적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탄핵 심판을 받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 미국 헌법 제4조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은 ‘반역, 뇌물 혹은 기타 중범죄’ 혐의가 인정되는 경우, 탄핵으로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어 있다. 19세기에는 앤드루 잭슨, 20세기 들어서는 리처드 닉슨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각각 탄핵 심판을 받았다. 닉슨 전 대통령은 탄핵안의 의회 통과에 앞서 자진 사임했다. 잭슨과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하원에서 가결됐으나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주도의 탄핵소추안에 대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적 성과를 달성한 데다 어떤 잘못도 없는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완전한 정치적 광기”라고 트위터에 썼다. 그의 우군인 공화당도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에 해당되는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민주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탄핵 스캔들을 만들어냈다”라며 반격에 나섰다.

탄핵소추안에 포함된 탄핵 사유는 ‘권력남용’과 ‘의회 업무 방해’다. 탄핵안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7월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의 비위 의혹을 조사해달라고 압박했다. 이 요청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4억 달러 규모 군사원조의 보류를 연계시켰다(권력남용).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회 조사가 시작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부 관리들에게 의회 증언을 거부하도록 명령했다. 또한 관련 기록도 제출하지 않았다(의회 업무 방해). 이번 탄핵안의 법률적 토대를 마련한 민주당 측 배리 버크 변호사는 하원 법사위 증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는 관련 문서, 증언 및 기타 증거를 감안할 때 너무도 뻔뻔스럽고 명백한 탄핵 사유에 해당된다”라고 말했다.

하원 법사위원회가 12월9일 의견 청취 차원에서 초청한 헌법학자 4명 가운데 3명은, 군사원조를 지렛대로 자신의 정적에 대한 조사를 해외 정부에 압박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는 명백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공화당 측 헌법학자는 민주당 측이 준비한 탄핵 사유가 “헌법상 탄핵 기준에 비춰볼 때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라며 팽팽히 맞섰다.

ⓒAP Photo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위)에 대한 탄핵 사유는 ‘권력남용’과 ‘의회 업무 방해’이다.

트럼프 탄핵안 상원 통과 가능성 낮아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거센 반발에도 탄핵안이 하원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공은 상원으로 넘어간다. 하원이 소를 제기하는 검사라면, 상원은 이를 심리하고 판결하는 판사 구실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상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원 100석 가운데 공화당이 53석을 점유하고 있다. 민주당 의석은 친민주당 계열의 무소속 2명을 포함해 47석이다. 상원 전체 의석의 3분의 2인 67명이 동의해야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 있다. 공화당 상원의원 가운데 탄핵을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의원은 아직 한 명도 없다. 즉, 현재로서는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될 게 확실하다. 더욱이 내년 11월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연방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을 새로 뽑는 중간선거가 치러진다.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원칙적으로 탄핵소추안은 하원에서 가결되는 즉시 상원에서 최종 표결을 위한 심의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부결을 확신하는 백악관 측도 가급적 상원에서 신속히 심리가 개시되기를 바란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는 내년 2월 이전에 탄핵과 관련된 논란을 끝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등 연말 휴가로 인해 상원의원들은 내년 1월께나 탄핵안을 본격 심리할 예정이다. 백악관 인턴 여직원 성추행 등으로 탄핵 심판에 올랐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 하원이 1998년 12월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으나 상원의 심리는 이듬해 1월에 진행되었다.

대선 여론 분석 전문 웹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에 따르면, 12월10일 현재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은 찬성 41.6%, 부정 53.5%로 부정적 의견이 훨씬 높다. 탄핵 찬반 비율 역시 12월9일 현재 탄핵 찬성 47.9%로 탄핵 반대 43.6%를 앞지른 상태다. 하지만 이런 민심이 상원의 탄핵 심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리라 보인다.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주들에서는 여전히 탄핵 부정 여론이 강하다.

일부 정치 분석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직무 스타일을 감안하면, 민주당 주도의 탄핵안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까지 점친다. 통상적으로 현직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탄핵소추에 직면하면 개인의 불명예는 물론이고 재선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워싱턴 제도권의 ‘정치 문법’ 밖의 인물이다. CNBC 방송은 “트럼프 측은 민주당 주도의 탄핵 소동을 지지율 제고를 위한 효과적인 대국민 메시지 및 모금운동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 하나 탄핵안이 하필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는 시점에 제기됐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지난 10월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3.6%로 1969년 이래 최저다. 주가지수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대통령 탄핵안이 잘 먹혀들지 않게 마련이다. 닉슨 전 대통령이 탄핵안 가결에 앞서 자진 사임할 당시 실업률은 6%대였다. 중동의 석유 위기까지 겹치면서 미국 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든 시기이기도 했다. 반면 클린턴 대통령은 재임 중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4%를 기록할 정도로 호황을 누린 덕분에 재선에 성공하고, 탄핵 위기도 넘겼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호황의 정치적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정치 분석가들은 전망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탄핵안 부결 이후 미국의 국내외 정책이 어떤 쪽으로 갈지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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