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2018년 6월18일 예멘인들이 제주출입국· 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당신은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요. 일터와 학교와 가정에서 상대방의 피부색과 성별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과연 당신은 그럴까요?

응급의학과 의사인 녹스 토드 박사 연구팀은 1993년 미국의사협회지에 큰 논쟁을 일으킨 논문 〈인종에 따른 부적절한 응급실 진통제 처방(Ethnicity as a Risk Factor for Inadequate Emergency Department Analgesia)〉을 발표합니다. 연구팀은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대학 응급실에 긴뼈 골절로 인해 지난 2년 동안 찾아온 환자들의 의무기록을 분석합니다. 그중 어떤 사람이 진통제를 처방받지 않았는지 확인합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진통제 처방 여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자가 다름 아닌 환자의 인종이었기 때문입니다. 긴뼈 골절 환자 중 진통제를 처방받지 않은 비율이 백인 중에서는 25.9%였던 반면 히스패닉에서는 54.8%였습니다. 2.12배 차이가 났던 것이지요. 보험 여부, 골절의 심각도, 성별, 입원 여부 등을 모두 통제했을 때 위험비는 오히려 더 크게 증가했습니다. 같은 질환으로 응급실에 왔을 때 히스패닉계 환자는 백인에 비해 명백히 진통제 처방을 적게 받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 결과가 알려진 후, 의사들의 첫 번째 반응은 ‘황당하다’였습니다. 자신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 인종이 아닌 오직 환자의 의학적 상태에 따라 객관적으로 진단과 치료를 해왔기 때문에 연구 결과를 믿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토드 박사 연구팀은 7년 뒤인 2000년 응급의학연보(Annals of Emergency Medicine)에 게재한 〈인종과 진통제 처방(Ethnicity and analgesic practice)〉 논문에서 이번에는 애틀랜타 에모리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인종과 진통제 처방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이 논문은 흑인이 백인에 비해 진통제 처방을 받지 않을 위험이 66% 높다는 결과를 보여주며, 앞선 연구 결과가 우연이 아니었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오늘날 의학 교과서에서 극소수의 질병을 제외하면 인종에 따라 진단이나 치료를 다르게 권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인종별로 차별적으로 진료를 한다는 연구 결과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국회의 요청에 따라 미국 국립과학원 의학연구소(Institute of Medicine)가 2002년 출판한 보고서 〈불평등한 치료(Unequal Treatment)〉에는 경제적 능력이나 의료 접근성과 같은 명백한 불평등 요인을 감안해도 여전히 인종에 따른 의료 서비스 이용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보고한 논문이 100편 넘게 인용되어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심장병과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HIV 감염과 당뇨병과 신장병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인종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AP Photo6월12일 미국 테네시주에서 흑인 청년을 사망하게 한 경찰 총격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명시적 편견과 암묵적 편견

이렇게 유색인종 환자가 백인과 동등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이후, 연구자들은 대다수가 백인인 의료진이 진료 과정에서 환자를 차별할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의료진 중에서 적어도 눈에 띄는 명시적인 인종적 편견을 가진 사람은 소수였을뿐더러, 그것만으로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복잡한 문제의 사슬을 풀어낸 실마리 중 하나는 명시적 편견(explicit bias)과 암묵적 편견(implicit bias)을 구분한 것입니다. 명시적 편견은 의식적 수준에서 인간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나 믿음을 뜻합니다. 지난해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온 예멘인을 수용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은 명시적 편견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입니다. 2018년 난민 신청을 했던 예멘인 484명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목소리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라는 의견이었습니다. 실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구체적인 정보 없이, 이슬람 문화에 대한 편견과 유럽 난민 사태의 영향 속에서 일부 한국 사람들은 예멘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겼습니다.

이에 비해 암묵적 편견은 무의식적 수준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태도와 믿음을 뜻합니다. 난민이 내 주변의 한국인처럼 각자 고유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자신의 가치에 따라 살아간다고 믿기에 충분히 알지도 못하는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이 사람은 명시적 편견으로부터는 자유로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는 곳에 거주하는 난민의 숫자가 증가할 때, 그로 인해 아무런 사건도 없었지만 불안함을 느끼거나 난민들이 오는 가게에 가길 꺼린다면, 그 과정에는 암묵적 편견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종에 따른 ‘불평등한 치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흑인이나 히스패닉에 대해 명시적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의료진이라 할지라도 암묵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경우가 많고, 그 편견이 환자 진료를 다르게 하는 데 작용했다는 점을 밝혀냅니다. 이러한 암묵적 편견이 소수자 집단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강력하고 광범위한지 검토한 다양한 연구가 등장합니다.

예일 대학 아동연구소는 2016년 9월 미국에 큰 충격을 준 연구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연구팀은 학회장에서 현직 유아원 선생님 135명을 모집했습니다. 연구 참여자들은 15인치 크기의 노트북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노트북 뒤에는 파란색 천으로 된 벽이 있고, 외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참가자는 헤드폰을 착용합니다. 외부 자극을 최소화한 것이지요. 컴퓨터 앞에 앉은 선생님들에게 연구팀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금부터 유아원 아이들 활동을 기록한 비디오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문제행동을 어떻게 발견해내는지 알고자 합니다. 이는 문제행동이 드러나기 전 사전에 확인하는 작업을 포함합니다. 비디오에는 문제행동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잠재적인 문제행동을 발견할 때마다 버튼을 누르되, 필요할 때마다 최대한 자주 눌러주세요.”

연구팀이 보여준 비디오에는 둥근 책상에 앉은 어린아이들이 등장합니다. 백인 남아, 백인 여아, 흑인 남아, 흑인 여아 이렇게 4명입니다. 아이들은 평화롭게 모래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수업시간 모습을 담은 30초짜리 동영상 12개를 쉬는 시간을 포함해 6분 동안 보여줍니다. 비디오에서 어떤 아이도 문제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연구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다름 아닌 비디오를 보는 동안 유아원 선생님의 눈동자가 향하는 대상을 추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문제행동을 찾으려 하는 선생님은 여아보다는 남아를, 백인보다는 흑인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성별과 인종을 조합해 좀 더 엄격한 분석을 시행한 결과,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아이의 피부색이었습니다. 아무런 문제행동이 없었던 영상에서 선생님들은 문제행동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흑인 아이를 더 자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는 그동안 유아기 시절 흑인이 경험하는 사회적 폭력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예를 들어, 왜 흑인 유아가 백인 유아에 비해 유아원을 그만둘 확률이 3배 이상 높았는지를 해석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연구에 참여한 유아원 선생님 중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대상이든 의심하는 눈으로 오랫동안 바라보면 문제는 더 많이 발견되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더 자주 감시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몸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2004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샐리 디커슨 박사 연구팀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어떠한 사회적 상황에서 인간의 몸에 증가하는지 정리한 〈급성 스트레스 인자와 코르티솔 반응:이론적 통합과 실험 결과 종합(Acute Stressor and Cortisol Response:A Theoretical Integration and Synthesis of Laboratory Research)〉을 심리학회보(Psychological Bulletin)에 발표합니다. 이 논문은 기존 실험 연구 208편을 검토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물론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기에 왕따·차별·폭언과 같은 자극은 연구윤리상 기존 연구에서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요건 중, 스트레스 호르몬을 가장 크게 증가시키고 원상태로 회복되기까지 가장 오래 걸리는 급성 자극은 다름 아닌 사회적 평가 위협(social evaluative threat)이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위협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작은 잘못이라도 찾아내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고혈압, 우울증, 심장병을 비롯한 수많은 질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흑인들은 유아원에서부터 일상적으로 과도한 사회적 평가 위협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2017년 국제학술지 ‘랜싯’에 게재된 크리스토퍼 윌더먼 교수 연구팀의 논문 〈미국의 대규모 수감, 공중보건, 그리고 커져가는 불평등(Mass incarceration, public health, and widening inequality in the USA)〉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난 미국 흑인 남성 5명 중 1명은 35살이 되기 전 교도소에 한 번 이상 수감된 경험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비극적인 숫자는 열악한 물질적인 삶의 조건에서 비롯된 흑인 범죄율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유난히 가혹한 사회적 평가 위협의 결과를 보여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소수자에 대한 명시적 편견이 없다고 말하는 많은 이들이 암묵적 편견을 가지고 있을까요? 물론 소수자에 대한 명시적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조사 과정에서 숨겼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결코 그 이유만은 아닙니다.

인간의 두뇌는 외부 자극을 범주화해서 이해하며 진화했습니다. 인간이 처음 사자와 호랑이를 봤을 때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경험이 반복되면서, 사자와 비슷한 생명체를 봤을 때 인간의 두뇌는 그것을 맹수라 분류하고 위험한 동물이라고 판단합니다. 그에 따라 도망치거나 싸우는 행동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러한 판단이 빠를수록, 또 무의식적 수준에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질수록 인간의 생존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인간 두뇌에 깊이 새겨진 고정관념과 그에 기반한 편견이 활성화되는 과정은 생존하기 위해 수많은 외부 정보를 인지하고 처리해온 과정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인간이 타인을 생각하는 방식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뇌의 신경망이 첫눈에 보이는 피부색이나 성별과 같은 정보를 조합해 그 사람을 특정 범주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데 0.1초가 채 걸리지 않습니다. 인간이 눈을 깜빡하는 데 보통 0.1~0.4초가 걸린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새보다 빠르게 우리는 타인을 자신의 고정관념에 따라 인지하고 분류해 그에 따라 믿을 만한지 여부를 판단합니다. 이 과정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입니다.

ⓒ연합뉴스2017년 9월12일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다른 인종과 이웃하고 싶지 않다

그 과정에서 암묵적 편견은 큰 힘을 발휘합니다. 특히 기존 연구들은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고, 시간에 쫓기고, 피곤한 상황에서 빠르게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 이러한 암묵적 편견이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요인들을 두루 갖춘 한국 사회 일터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소수자에 대한 암묵적 편견이 차별적 행동으로 드러나기 매우 쉬운 장소입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편견은 한 사회의 역사와 권력관계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예멘인이나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는 사고가 대표적입니다. 그런 편견들은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 깊이 침투해 감시의 눈으로 소수자의 삶을 옥죄고, 병원과 학교와 직장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만들어냅니다.

암묵적 편견과 명시적 편견은 밀접히 닿아 있습니다. 명시적 편견이 만연한 사회에서 암묵적 편견이 그보다 덜할 리 없으니까요. 2010~2014년 측정된 세계 가치조사에는 ‘나는 다른 인종과 이웃에 살고 싶지 않다’라고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인종에 대한 명시적 편견을 측정하는 내용입니다. ‘살고 싶지 않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스웨덴에서는 2.8%였고 미국에서는 그 두 배인 5.6%였습니다. 그런데 그 응답수치가 한국에서는 34.1%였습니다.

저는 이 결과를 볼 때마다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한국 사회가 인종차별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과 한국인은 인종차별 성향을 보고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검열과 긴장이 부족한 나라라는 점입니다. 인종별 거주지 분리가 심각한 미국 사회에서, 같은 질문에 ‘살고 싶지 않다’라고 응답한 5.6%가 실제 미국인의 속마음을 반영하는 숫자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 5.6%는 적어도 누군가 그런 질문을 했을 때, 인종차별주의자로 비쳐지고 싶지 않은 미국 사회의 긴장을 반영하는 숫자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그 긴장조차 부재한 것이지요.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암묵적 편견을 바꾸는 길은 권력의 적극적인 재분배를 통해 소수자의 삶을 바꾸어내는 것과 함께, 우리 스스로가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나 역시 내 의도와 무관하게 가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인식하고 경계하며 행동하는 일이라고요. 차별하는 줄 모르고 하는 차별 행동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저는 차별금지법이 그 인식과 경계와 행동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자명 김승섭(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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