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 한 명의 부고를 들었을 때, 그는 마침 로마에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아침 미사가 막 시작될 참이었다. 고인을 추념하기에 더 좋은 장소는 없어 보였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5만명 인파 속에 작가 앤서니 매카튼이 섞여 들어간 사연이다.

마치 록스타를 대하듯 교황에게 환호하는 사람들 틈에서 여자친구가 들려준 이야기. “지금 다른 교황은 이 광장 뒤 작은 수도원에 있다지, 아마?” 갑자기 궁금해졌다. 교황 두 명이 동시에 생존한 적이 있었나? 600년 전쯤에 마지막으로 한 번. 그때 이후로는 줄곧 이전 교황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새 교황이 선출되었다. 특히 “온전히 본인의 자유의지로” 중도 사임한 교황은 2000년 가톨릭 역사에서 처음이라고 했다.

또 궁금해졌다.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 베네딕토 16세가 어떻게 가장 전통적이지 않은 선택으로 혁신을 일으켰을까? 그가 동의할 수 없는 신념을 가진 진보주의자에게 어째서 모든 권력을 넘겨주기로 결심한 걸까? 액면의 사실이 말해주지 않은, 이면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상상과 취재가 함께 시작됐다.

전임 교황 사임과 신임 교황 취임 사이, 두 사람이 단둘이 만났다면? 밤이 깊도록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면?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속마음을 서로에게 내보이다가도, 양보할 수 없는 각자의 신념이 불쑥불쑥 뜨겁게 부딪쳤다면?

만남은 가상의 설정이지만, 두 사람의 실제 발언과 기고를 토대로 대화를 구성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쓰며 스티븐 호킹의 삶으로 들어갈 때처럼, 〈다키스트 아워〉를 쓰며 윈스턴 처칠의 마음을 탐험할 때처럼, 〈보헤미안 랩소디〉의 각본을 준비하며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을 재구성할 때처럼, 작가 앤서니 매카튼은 두 교황이 속한 서로 다른 우주를 넘나들며 아주 멋지고 튼튼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코미디에서 출발해 버디무비로

그리하여 이것은 종교영화가 아니다. 유쾌한 코미디로 출발해서 충실한 전기영화로 달리다가 극적인 성장영화로 반환점을 돈 뒤에는 뜻밖의 버디무비로 결승점을 통과하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우리가 잊고 있던, ‘대화와 토론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이다. 벽을 쌓는 대신 다리를 놓으려는 두 교황. 편을 가르는 대신 곁을 나란히 하는 두 사람. 혐오와 단절의 시대, 끝까지 경청과 설득을 포기하지 않는 양극단의 두 진영. ‘그들의 대화’에서 ‘우리의 대화법’을 돌아보게 된다. “잘 짜인 대화 장면은 자동차 추격전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라고 한 작가의 주장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었다.

〈시티 오브 갓〉 〈눈먼 자들의 도시〉 〈콘스탄트 가드너〉를 만든 브라질 감독 페르난두 메이렐레스가 연출했다. 하여간 이 사람, 영화 끝내주게 잘 만든다. 앤서니 홉킨스와 조너선 프라이스가 두 교황을 연기했다. 연기 대가들이 맞붙는 순간마다 영롱한 불꽃이 튄다. 12월20일부터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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