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이주인권 판결] 인간적 사회로 나아가는 체온이 느껴지다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저자·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
  • 호수 640
  • 승인 2019.12.2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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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합리성을 지닌 판결, 함께 사는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하는 판결이 올해 디딤돌 판결의 핵심이었다. ‘대단히 전향적인 판결이 없었다’는 점은 아쉽다.

2019 이주인권 판결 어떻게 선정했나

 

이주인권사례연구모임이 ‘올해의 이주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25건을 선정했다(2018년 7월1일부터 2019년 6월30일까지 판결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주인권사례연구모임은 이주민의 인권을 위해 활동 중인 법률가와 연구자들의 네트워크다.

먼저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에서 선고된 이주인권 관련 판결문 1년 치를 모았다. 이주민이 소송의 당사자로, 이주인권 주제가 주요하게 다루어진 판결을 선정 대상으로 삼았다. 각급 법원 홈페이지의 판결문 열람 서비스를 활용해 ‘외국인’ ‘난민’ ‘귀화 허가’ ‘체류자격’ 등 15개 키워드를 검색하는 방식으로 판결문 3200여 건을 모았다.

판결의 영향력, 이주민 관련 법령에 대한 이해, 이주인권에 대한 이해, 참신성 및 발전성, 구체적 타당성 등 다섯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주인권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면 ‘디딤돌 판결’, 부정적 역할을 했다면 ‘걸림돌 판결’로 구분했다. 긍정·부정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고 계속 주시해야 하는 경우 ‘주목할 판결’로 선정했다. 변호사 24명이 참여한 1차 심사에서 판결문 80개를 추렸다.

11월20일 진행된 2차 선정에는 이주인권사례연구모임에 소속된 내부 심사위원 3명을 비롯해 외부 심사위원 4명이 모였다. 내부 심사위원으로는 박영아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진혜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이탁건 변호사(재단법인 동천)가, 외부 심사위원으로는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 김성수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김영화 〈시사IN〉 기자가 참여했다. 그 결과 디딤돌 판결 7건(이 가운데 2건은 2019년 7월 이후에 선고되어 대상 기간을 벗어났지만 시의성과 의미 면에서 주목할 만해 포함됐다), 걸림돌 판결 10건, 주목할 판결 8건이 최종 선정되었다.

 

 

 

ⓒ시사IN 신선영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안명애씨가 외국인 관련 상담업무를 보고 있다.

외국인 A씨는 2002년 다른 사람의 여권을 가지고 한국에 입국했다가 2003년 출국한 적이 있다. 이후 2005년부터는 본인의 여권으로 입국하고 한국에서 주로 살아왔다. 그러다 2016년에 국적취득 신청을 하면서 과거에 다른 사람의 여권을 사용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15년 전의 일이고 당시 체류기간이 길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출국 명령이 내려졌다. 현재 68세의 나이에 배우자와 자식들, 일생 동안 모은 재산이 모두 한국에 있는데, 홀로 추방당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법은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법은 냉정해야 한다고도 말하고 따뜻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누군가는 아무리 오래전 일이라도 잘못이 있으니 마땅히 내쫓아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는 과거에 잘못이 있더라도 이후의 사정을 보아 판단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지혜로운 판단자의 상징인 ‘솔로몬’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인천지방법원 김영식 판사는 2018년 8월21일 선고한 판결(2018구단50045)에서 후자의 태도를 취했다. 법원은 A씨와 가족들이 한국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기여한 측면을 보았다. A씨가 추방되어 가족과 헤어진다면 “헌법 제36조 제1항,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3조 제2항이 보호하는 가족에 대한 권리 또는 가족결합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보았다. 출국명령은 비례원칙을 위반한 과도한 조치라고 결론을 내렸다. 올해의 디딤돌 판결이었다.

다른 사건에서 외국인 B씨는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하게 되었다. 시어머니가 과도하게 통제하고 부당한 노동을 강요하며 집에서 내쫓기도 했다. 가정법원은 배우자에게 ‘주된’ 귀책사유가 있다고 보고 이혼 판결을 했다. 그런데 법무부는 B씨에게도 일부 문제가 있다며 결혼이민(F-6)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없다고 했다. 본인의 잘못이 ‘전혀’ 없는 경우에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혼 후 체류를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 7월4일 선고한 판결(2018두66869)에서 이런 법무부의 해석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결혼생활에서 한쪽만 전적으로 잘못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드물거나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혼의 주된 책임이 배우자에게 있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오로지 배우자에게만 책임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가정법원은 이런 기준으로 이혼 판결을 내렸고, 행정청은 그 판단을 존중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역시 올해의 디딤돌 판결이었다.

이주민에 관한 많은 사건들이 이처럼 “어떤 이주민과 함께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한다. 만일 어떠한 흠결도 없는 사람만을 받아들이고자 하면, 단 하나의 잘못만 발견되어도 바로 추방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만약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위 두 판결은 한 사회가 구성원을 받아들일 때, 단순히 한두 가지, 즉 일부의 사실이 아니라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합리성을 보여주었다.

ⓒ시사IN 조남진엄마 품에 안겨 있는 2016년생 마린(가명)은 난민 신청자이다.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 지키지 못한 판결도

올해의 디딤돌 판결로 선정된 다른 판결들도 종합적 판단을 했다. 한국에서 반정부 민주화운동을 펼친 중국인에 대해 난민 인정을 한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김정환 판사) 판결(2018구단7993), 자녀의 면접교섭권이 실효성을 갖도록 소득활동을 포함하는 체류자격인 결혼이민(F-6-2) 자격을 인정한 수원지방법원 주진암 판사 판결(2018구단6779)이 그러했다.

반면, 단순히 체류기간 만료일에 임박해 난민 신청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남용적 난민 신청’이라고 판단하는 법무부 지침을 용인한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김선영 판사) 판결(2017구단35892)은 걸림돌 판결로 선정되었다.

올해의 판결 선정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또 다른 쟁점은 ‘법 앞의 평등’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판결을 통해, 한국 사회가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을 얼마나 차별 없이 평등하게 대우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2009년 교육청이 외국인 교사에게 차별적으로 HIV 검사를 요구한 사건이 있었다. 10년이 지난 2019년 10월 서울중앙지법 민사35단독(김국식 판사)은, 이 차별이 불법행위로서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했다(2018가단5125207). 한편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주민등록이나 외국인등록과 마찬가지로 국내 거소 신고에 대해 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을 인정하였다(2015다254224). 노동자로서 혹은 주민으로서의 권리가 국적에 따라 달라질 수 없음을 확인한 판결들이었다.

외국인 혐오에 대한 일침도 있었다. 행정청은 요양병원 건축을 불허하는 이유의 하나로, 외국인 간병인이 늘면 “외국인 근로자들의 범죄사건에 대한 불안감, 공포를 인근 주민들이 떠안고 살아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부산지방법원 행정2부(최병준 판사)는 이런 주장을 ‘막연한 추정’이라며 일축했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한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자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막연한 우려나 가능성만을 이유로 이 사건 신청을 거부하는 것은 적법한 기준에 따른 처분이라고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2018구합24804).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외국인의 상황을 고려해야 할 적극적 의무를 인정한 판결이 돋보였다. 창원지방법원 민사2단독(남선미 판사)은 한국어에 능통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를 위해 작업 과정에 관한 충분한 설명과 안전교육, 안전한 인적·물적 환경과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 사고를 방지할 의무가 고용주에게 있음을 확인했다(2018가단102624). 반면,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조차 지키지 못한 판결도 있었다. 고용주가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않고 임금체불을 했는데도, 서울행정법원 행정11단독(박용근 판사)은 이 사업장이 계속 근로가 어려운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2018구단6808).

이주민·난민 아동의 권리 보장은 계속된 숙제로 남았다. 부모의 체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미성년자에게 출국명령을 내리고(2017두69687), 난민 아동의 교육을 위해 안정적인 체류자격을 부여해야 할 필요성을 부인하며(2017구단9030), 한국인 부의 혼외자로 출생한 아동은 먼저 국적을 취득해야만 가족관계등록부를 생성하도록 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2018스32),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 없이 난민 신청을 하였다며 다른 조치나 아무런 판단 없이 각하한 판결(2018구합368) 등은, 아동의 권리에 대해 소극적인 법원의 태도를 보여준다.

ⓒ시사IN 신선영한국에서 반정부 민주화운동을 펼친 중국인에 대한 난민 인정은 ‘종합적 판단’에 따른 디딤돌 판결이었다. 위는 재한 조선족이 모여 사는 서울 대림동.

법원이 통제하지 못한 ‘행정청의 행위’

아울러 경직된 가족 관념과 역할 규범에 기반해 외국인의 체류자격을 판단하는 행정청의 행위를 법원이 통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법적으로 영주비자 발부 요건에 포함되지 않은 배우자의 품성을 판단하고(2017구단72983), 혼인의 진정성을 엄격하게 해석하며(2018구합84867), 결혼이민자의 육아 지원을 위한 방문동거(F-1) 체류자격을 일차적으로 그 부모로 한정하여 언니의 체류를 불허하는(2018구단20997) 등 법무부의 재량권 행사를 용인한 법원 판결들이 걸림돌 판결로 선정되었다.

난민 신청자에 대한 행정청의 의심과 불신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래도 법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조금 더 넓히는 반가운 판결도 있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이승원 판사)은 ‘생명·신체 또는 신체의 자유를 침해받을 공포가 있는 영역에서 도피한 외국인’이 난민 인정만이 아니라 인도적 체류허가조차 받지 못했다면, 인도적 체류를 불허하는 결정에 대해서도 소송을 통해 다툴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2018구단15406).

대단히 전향적인 판결은 없었다. 이주민을 경계 너머의 이방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평등한 동료로서 바라보는 시선도 많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마치 함께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는 냉혹함도 보았다. 그래도 공동체란 완전무결한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사회를 일구는 사람들로 만들어짐을 기억하게 만드는 판결이 있었다. 느리지만 조금 더 인간적이고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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