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11월9일 말뫼에서 10대 청소년이 숨지는 총격 사건이 발생해 경찰관들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스웨덴의 항구도시 말뫼는 한국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한국 언론은 말뫼를 ‘유럽 최고의 스타트업 도시’ ‘이노베이션 도시’ ‘앵커 도시’ ‘도시재생 모델’ ‘4차 산업시대를 대비한 첨단 도시’라고 화려하게 조명한다.

말뫼는 스웨덴 조선업의 중심지였다. 1870년 설립되어 조선업을 이끌었던 코쿰스 조선소가 1987년 문을 닫았다. 말뫼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3만여 명이 실직했다. 2002년 코쿰스 조선소 1500t급 골리앗 크레인이 단돈 1달러에 한국 현대중공업에 팔렸다. 말뫼 시민들은 떠나는 크레인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스웨덴 국영방송이 중계했다. 한국에 ‘말뫼의 눈물’로 보도된 장면이다.

이후 말뫼에는 구조조정을 거쳐 대학이 세워지고 창업센터가 들어서는 등 친환경·정보·복지 도시로 거듭났다. ‘말뫼의 기적’으로 소개되는 혁신이다. 한국 언론에 자주 보도되다 보니, 말뫼는 전국의 지자체 공무원들이 단골로 찾는 해외 견학도시가 되었다.

그런데 ‘말뫼의 기적’ 이면에 아직도 ‘말뫼의 눈물’이 흐른다. 도시의 그늘에서 범죄가 자라고 있다. 스웨덴 국내 언론에서 말뫼는 총격과 폭발 사건 발생지로 자주 보도된다. 스웨덴은 서유럽에서 총격사건으로 사망하는 청소년이 가장 많은 나라다. 스웨덴 경찰에 따르면, 2017년 청소년 43명, 2018년에만 청소년 45명이 총격 사건으로 사망했다. 올해도 11월14일 현재 청소년 32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한국에서 기적의 도시로 소개된 말뫼는 명암이 뚜렷하다. 말뫼의 이민자 밀집지역은 우범지역 가운데 하나다. 주로 가난한 아이들이 범죄조직에 연루되어 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11월9일(현지 시각) 열다섯 살 소년이 총에 맞아 사망했고, 또 다른 열다섯 살 소년이 크게 다쳤다. 이날 카트린 셰른펠트 얌메 말뫼 시장은 “가장 어두운 밤”이라고 말했다. 이 총기 사건은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다. 스테판 뢰프벤 총리는 이 사건과 관련해 11월17일 긴급 텔레비전 인터뷰를 했다.

“삶의 롤모델을 찾아볼 수 없는 동네”

건축가 출신 일마르 레팔루 전 시장은 1990년대 말뫼의 혁신을 이끌었다. 그는 “말뫼를 이제 조선소 위주 노동자들의 도시가 아니라 지식 도시로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내일이 없는 듯 쇠락했던 도시는 새로운 활력이 넘치는 지식 도시로 탈바꿈했다. 인프라는 혁신되었지만 사회 격차는 커졌다. 시민들이 눈물을 흘렸던 코쿰스 조선소 자리에 IT 기업의 사무실이 들어섰고 아파트가 지어졌다. 주택 가격이 상승해 고학력 중산층이나 화이트칼라 계층만 도심에 거주할 수 있다. 그곳의 가난한 사람들은 더 열악한 지역으로 밀려났다. 특히 저소득층 이민자들은 스웨덴에서 이민자 밀집도가 가장 높은 말뫼 외곽인 로센고르드 지역으로 밀려났다. 범죄조직에 연루된 청소년들은 모두 이런 가난한 이민자 밀집지역에 산다. 비유럽 출신 이민자 청소년들은 학교를 일찌감치 그만두고 거리로 나와 마약을 판다.

ⓒEPA말뫼의 랜드마크인 터닝 토르소(가운데)와 주변 모습.

이렇게 한 도시에서 주거지역 양분화는 범죄도 양분한다. 도시의 균형 발전에 걸림돌이다. 이미 그 증상이 나타났다. 말뫼는 스웨덴에서 거리의 노숙자가 가장 많은 도시다.

매년 총격으로 청소년들이 사망하자 스웨덴 범죄방지지식센터는 총기 범죄에 연루된 청소년 21명을 집중 인터뷰했다. 지난 1월 ‘총기 범죄의 환경’이라는 조사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대개 가난, 부모나 학교의 무관심, 사회적으로 이민자라는 낙인에 공통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스테판 뢰프벤 총리는 11월17일 긴급 인터뷰에서 범죄에 연루되어 총격으로 사망하는 청소년을 방지하는 대책의 일환으로 학교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학교를 중단하지 않고 마쳐 직업을 가지면 소외 문제가 해결된다. 학교에 더 재원을 투입해서 아이들을 탈선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야당은 말뫼시의 범죄 근절에 근본 대책이 없다고 비판했다. 반(反)이민을 기치로 내세운 스웨덴민주당(SD)은 어김없이 범죄를 난민과 이민자 탓으로 돌렸다. 공영방송 SVT의 마츠 크누트손 정치 분석가는 “총격 사건은 사회 양극화 문제를 극명히 드러냈다. 폭력과 양극화 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라고 평가했다.

이후 경찰은 ‘작전 림프로스트’를 전개했다. 경찰력을 대거 투입해 폭발물 관련 범죄 등 강력범죄 소탕에 나섰다. 범죄 조직원들을 더 신속하게 체포하고 기소했다.

오랫동안 이민자 지역 청소년들의 탈선 방지 교육을 맡아온 이산 켈레시오글루 씨(39)는 “정부나 정치권 모두 청소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나 정치권은 이 복잡한 사회문제를 학교와 방과후 청소년센터가 전부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한다. 경찰력이 대거 투입된다고 해결될까?”라고 비판했다. 그의 말대로 청소년들은 범죄방지지식센터와 인터뷰하면서 이미 대안을 제시했는지도 모른다. 한 청소년은 “초등학교 때부터 문제아로 찍혔다. 무슨 큰일이 있을 때마다 ‘너 때문이야. 너희 이민자 그룹 때문이야’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청소년은 주거 환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롤모델을 주변에서 잘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부유한 동네에선 문화예술로 성공하거나 조종사로 일했던 이들이 이웃일 수 있다. 우리 동네에는 10대에 가게를 털거나 마약을 팔아 돈을 많이 번 이웃 얘기만 들을 수 있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말뫼의 눈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자명 예테보리·고민정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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