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서울 롯데월드타워에서 내려다본 송파구 아파트 모습.

11월19일, 일반인 패널이 대통령에게 직접 질문하는 ‘국민과의 대화’가 100분간 생중계됐다. 남북 문제, 조국 전 장관 사태 등 굵직굵직한 이슈가 등장했지만 가장 회자된 것은 9분가량 이어진 짧은 대화였다. 부동산 문제에 관한 질문과 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값 문제에 대해 간명하게 답했다. “정부에서는 성장률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부동산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방법으로 (부동산 문제를) 잡지 못하면 보다 강력한 여러 가지 방안들을 계속 강구할 것이다.” 임기 내에 부동산 규제를 푸는 일은 없으리라는 선언이다. 여기까지는 현 정부가 시장에 보내는 정책적 시그널로 이해됐다.

그런데 대통령이 함께 언급한 한마디가 논란을 일으켰다.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 전국 평균 부동산 매매가격이 떨어졌으니 정책의 전체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는 의미다.

문제는 일반 대중의 체감과 달랐다는 점이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한 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전국 집값 안정화라고 하지만 서울은 그렇지 않다. 다주택자를 놓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정책적으로 보유세를 올리고 차라리 양도세를 낮춰서 무주택자가 자기 집을 갖게 하면 어떤가?”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다주택자 출구 마련’에 대한 질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양한 주택 공급정책으로 답변을 대신하면서 “보유세와 양도세 문제는 말씀하신 걸 참고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짧은 대화 속에 현재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다양한 논박이 응축되어 있다.

■ 부동산 가격은 안정되고 있나

전국 단위 통계만 놓고 보면 대통령의 답변이 ‘무조건 틀렸다’라고 말하긴 어렵다.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가격동향’을 살펴보자. 2017년 9월 전국 아파트 가격을 100이라고 한다면, 2019년 11월25일 전국 아파트 가격지수는 97.6 수준이다. 완만한 하락 추세라고 볼 수 있다. 10월1일 관계 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최근 주택시장 동향 및 평가에서도 “9·13 대책 이후 전국은 전반적인 안정세가 지속되고 있다”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수도권만 놓고 보면 사정이 다르다. 2017년 9월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100이라면, 2019년 11월25일 102.3으로 나타난다. 특히 지난 8월부터 수도권 집값이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전국 단위 안정성은 높아졌지만, 실수요와 투기수요가 많은 수도권에서는 ‘집값 안정화’를 체감하기 쉽지 않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통령이 말한 ‘부동산 가격 안정화’는 본질을 다소 회피하는 발언으로 읽힐 우려가 있다. 대통령이 ‘서울 집값 문제’에 대해 남긴 답변도 마찬가지다. 투기수요를 옥죄는 과정에서 ‘똘똘한 한 채’ 프레임이 공고해지고, 서울 아파트는 오르지 못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안전자산’의 성격까지 띠게 되었다. 실수요자 처지에선 무리를 해서라도 서울로 들어가는 게 낫다는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막상 집을 사고 싶어도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지 않아 매물이 귀하다. 결국 몇 년 일찍 집을 산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서는 계급적 격차가 벌어진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등장한 질문은 이 같은 ‘계급 격차’에 대한 불안과 고민이 표출된 것인데, 이에 ‘저렴한 임대주택’이라는 공급정책으로 답한 것은 적절한 대응으로 보기 어렵다.

■ 저금리 시대에 어떤 정책이 남았나

그렇다고 정부 정책이 결국 서울 집값을 올렸다고 선후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다.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은 저금리로 인한 시장유동성 확대다. 금리가 낮아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지만 막상 이 돈이 갈 곳을 잃어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간다. 늘어난 유동성으로 신산업 등에 투자하는 것보다 서울 부동산에 묶어두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시장유동성을 판별하는 M2(광의통화) 규모는 2017년 2342조원에서 2019년 7월 2811조원으로 20%가량 늘어났다.

풍부한 유동성이 글로벌 대도시의 부동산으로 유입되는 것은 한국만 겪는 일이 아니다. 일본도 아베노믹스 이후 늘어난 시장유동성이 도쿄 대도심 내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집값을 잡겠다는 이유만으로 금리를 함부로 올릴 수는 없다. 실물경제 성장이 둔화될 수 있는 데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금리가 모두 낮은 상황에서 한국만 기준금리를 올리기는 어렵다. 오히려 한국은행은 2019년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1.75%였던 기준금리를 1.25%까지 낮췄다.

금리를 올리기 힘든 상황에서, 정부가 올해 주목한 대상이 바로 신규 주택 분양가다. 분양가 상승률이 일반 집값 상승률에 비해 3.7배 높은 데다(10월 정부 발표 당시), 신규 주택의 분양가가 오르면 인근의 주택들까지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분양가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7월 처음으로 분양가상한제를 언급하고 4개월이 흐른 지난 11월6일, 강남 4구 등 서울 27개 동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대상지로 지정되었다.

분양가상한제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고 있다. ‘공급을 줄인다’와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주장이 함께 나온다. ‘공급을 줄인다’고 비판하는 이들은 서울 지역의 주택 공급이 수요보다 적기(수요가 공급보다 많기)에 집값이 오른다고 생각한다. 이들에 따르면, 분양가상한제는 자칫 신규 주택의 공급을 둔화시켜 집값을 더 올려놓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집값을 잡기 위해 좀 더 강도 높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쪽(경실련)에서는 “실효성을 없앤 무늬만 분양가상한제”라고 비판한다. 일부 지역(‘핀셋 정책’)만 선정해서 적용하다 보니 제대로 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경실련을 비롯해 분양가상한제 전면 적용을 외치는 이들은 2014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없앤 이후 주요 아파트들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11월6일 정부가 발표한 1차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에서 서울 흑석동과 경기도 과천, 광명 등이 빠진 것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 거래세는 낮추고 보유세는 올린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즉답을 피한 대목이다. 한국 부동산은 거래세 부담이 큰 반면 보유세는 낮은 편이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부과하지만 실제 부과 범위는 좁은 편이다. 공시가격 기준 6억원(1주택자는 9억원)을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양도소득세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부동산을 사고파는 데 세금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로 인해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지 않고 버티면서 매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도소득세를 내리는데도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 신뢰성에 타격을 줄 수 있다. 2017년 8·2 부동산 대책의 핵심이 바로 높은 양도소득세였다. 부동산 투기로 높은 수익을 올리도록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던 것이다. 이 같은 정책 기조를 바꾸면, ‘집값 안정화 포기’라는 신호로 해석되어 부동산 시장에 오히려 불을 지필 수 있다. 조건부 축소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투기수요를 늘리는 효과가 작동할 수 있다.

이미 ‘버티면 오른다’는 심리가 팽배해 있다. KB국민은행이 11월11일 발표한 ‘월간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부동산에 대한 매매가격 전망지수(향후 3개월 뒤 아파트 매매가격에 대한 기대치 조사, 100은 보합)가 122.6을 기록했다. 응답자의 46.9%가 향후 서울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답한 결과다.

결국 보유세 부과를 크게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유세는 재산세와 종부세로 나뉘는데, 정부 정책은 종부세를 재정비하는 쪽에 초점을 두고 있다. 종부세를 산정하는 요소 중 하나인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거나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올해부터 점차 높이는 방식(2018년 80%에서 2020년 100%로 매년 단계적으로 인상)이다. 그동안 세금 부과에서 어느 정도 비켜나 있던 보유세 부담 대상자들에게 실질적인 부담을 안기는 방식이다. 이처럼 보유세를 어느 정도 올리면서 높은 양도소득세는 유지한다는 게 앞으로도 정부 정책의 기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종부세 폭탄’ 등을 언급하며 ‘무고한 부과 대상’ 등을 조명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전격적인 세제 개편을 주장하기도 한다. 지방세인 재산세와 국세인 종부세로 나뉘어 있고, 각종 산정 방식이 복잡한 현행 보유세 체계를 간명하게 바꾸자는 얘기다. 그래야 과세하는 처지에서도 세제 변화의 효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논리다.

ⓒ연합뉴스11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위)에서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 문재인 정부가 그리는 수도권의 미래

공급 부족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정부는 ‘대규모 수도권 주택 공급’을 통해 맞불을 놓고 있다. 이미 3기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었고, GTX를 비롯한 수도권 광역교통망 역시 ‘예비타당성 조사(정부 재정 투입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 면제’ 등의 수단으로 사업 진행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서울에서 발생하는 투기적 수요는 막는 동시에 서울 실수요를 가까운 수도권으로 분산하겠다는 계획이다. 값비싼 중심지역(서울)에 밀도 높게 공급량을 늘리는 대신 값싼 분양 및 임대주택을 외곽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장기적으로 ‘인구의 수도권 집중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서울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서울을 넓히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대표적으로 3기 신도시는 1·2기 신도시에 비해 서울에 좀 더 인접(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해 있으며, 교통망 증축도 ‘서울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GTX, 고양선 등)’으로 전개된다. 자급자족하는 신도시라기보다는 서울에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신도시다. 신도시의 핵심 기능이 결국 ‘베드타운’이라는 걸 인정하고 추진한 정책이다.

실수요자들을 위한 정책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방 인구를 더 많이 끌어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피해를 보는 쪽은 경쟁력에서 밀려나는 지방도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훗날 ‘지방정책’과 맞물려 그 공과가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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