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트루스’ 시대 비영리 언론의 길
  • 김영화 기자
  • 호수 639
  • 승인 2019.12.18 10: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탐사보도와 비영리 저널리즘’을 주제로 제3회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악화된 언론 환경을 돌아보고, 비영리 언론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과 생존 전략을 공유했다.
ⓒ시사IN 신선영12월3일 수 크로스 대표가 ‘비영리 뉴스룸이 생존하는 법’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지난 7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의 청문회 위증 의혹을 제기한 〈뉴스타파〉에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비리와 관련해 윤 총장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한 이후였다. 〈뉴스타파〉에 항의 전화가 폭주했고 후원자 3500여 명이 이탈했다. 전체의 10% 수준이었다.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는 “객관적 사실보다 신념이 중요해진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 시대, 언론이 도전에 직면했다”라고 말했다. 보고 싶은 뉴스만 구독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 알고리즘과 ‘필터버블(필터링된 정보로 인해 편향된 정보에 갇히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은 어느 때보다 깊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국내외 언론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2월3일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SJC 2019)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올해로 세 번째 열리는 콘퍼런스의 주제는 ‘탐사보도와 비영리 저널리즘’이었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심인보 기자가 ‘사회 개혁과 비영리 저널리즘’을 주제로 발표했다. ‘윤석열 보도’ 이후에 겪었던 경험을 들려줬다. 지난 8월 〈뉴스타파〉가 두 달여간 보도한 ‘죄수와 검사’ 시리즈로 이탈했던 후원자들 중 1000여 명이 돌아왔다. 심 기자는 “비영리 언론과 후원자의 신뢰 관계는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이번에 돌아온 후원자는 〈뉴스타파〉가 또다시 자신이 추구하는 바와 다른 방향의 보도를 하더라도 기다려주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조세도피처의 한국인들’ ‘친일과 망각’ 등 그간 〈뉴스타파〉가 해온 굵직한 탐사보도 사례도 언급했다. 심 기자는 “비영리 언론사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보도”라고 말했다. 기성 언론의 한계는 명확했다. “몇 달 공을 들여도 실패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상업적인 이윤이 중요한 언론사가 탐사보도에 투자하기 쉽지 않다.”

해외 언론인들의 고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탐사보도를 위한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2009년 설립된 〈INN(Institute for Nonprofit News)〉은 미국 비영리 언론사 239개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네트워크다. 연단에 오른 수 크로스 INN 대표는 광고수익 모델의 실패, 트럼프 정부의 언론에 대한 공격, 그리고 소셜미디어로 퍼지는 가짜 뉴스로 인해 미국의 언론 환경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화면에 ‘대나무 숲’ 사진을 띄운 수 크로스 대표는 비영리 언론의 생존 방식을 이에 빗대어 설명했다. “작은 대나무들이 땅 밑에서 뿌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비영리 언론인들끼리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시스템이다.” 그는 비영리 언론 〈블록 클럽 시카고(Block Club Chicago)〉의 ‘흑인 카우보이’ 기획을 사례로 들며 “비영리 저널리즘은 다양성을 기치로 기존 주류 미디어의 빈틈을 채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카고 남부에 살고 있는 흑인 목장 주인과 기수들의 존재를 다룬 기획 기사로, 백인으로만 기억되기 쉬운 카우보이 세계의 현실을 드러내 호평받았다.

ⓒ시사IN 신선영제3회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가 12월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클릭’으로 먹고사는 언론 생태계

수 크로스 대표는 비영리 언론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과 생존 전략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는 〈뉴스타파〉 사례에 공감하며 “미국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기부자가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수익 모델을 다양화하기 위해 주기적인 이벤트를 열어 지역사회와 접점을 마련하는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팩트체커 미디어 〈뉴스톱〉 김준일 대표는 질문을 던졌다. “국내 2만 개 언론사가 어떻게 먹고살까요?” 일간지 기자 출신인 그는 ‘조국 대란’ 관련 기사가 10만 개 이상으로 ‘범람’했던 현실을 언급했다. ‘클릭’으로 광고수익을 벌어들이는 언론 생태계의 그늘을 지적했다. 2017년 비영리 매체로 〈뉴스톱〉을 설립한 것은 ‘작고 강한 저널리즘 모델’을 만들어야겠다는 고심의 결과였다.

김 대표는 그간 보도했던 팩트체크 사례를 소개했다. ‘페미니즘 때문에 뉴질랜드가 망했다’ ‘스마트폰 때문에 젊은이들 머리에 뿔이 났다’ 따위 문구가 화면에 뜨자 객석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이런 허위 정보가 온라인에서 500만 회씩 조회수를 올리며 확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짜 뉴스 소비자에게 어떻게 팩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느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그는 “카카오 등 플랫폼 사업자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라고 답변했다.

지역 밀착형 탐사보도를 하는 〈샌프란시스코 퍼블릭프레스〉의 마이클 스톨 대표는 2002년 같은 지역 다른 언론사에서 해고됐다. 지역 정치인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다가 경영진과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편집권 독립이 보장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했다. 지역 공동체의 ‘후원’이 그가 떠올린 해답이었다.

〈샌프란시스코 퍼블릭프레스〉는 한 달에 한 번씩 독자들을 초대한다. “워크숍, 콘퍼런스 등을 열어 취재 후기를 공유하고, 독자들로부터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지역 공동체와 협업하는 ‘풀뿌리 언론운동’의 일환이다.

마지막 연사인 천관율 〈시사IN〉 기자는 ‘20대 남자 3부작’ 시리즈를 들려주었다. 그는 “20대 남자 현상을 설명하는 가설은 많았지만, 데이터는 하나도 없었다.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현상에 투사했다”라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조사 방법론부터 시작해 208개나 되는 질문을 분석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우리가 20대 남자 현상이라고 부르는 것 중 어떤 건 한국 남자 현상이고, 어떤 건 20대 현상이었다.” 데이터 교차분석을 통해 20대 남자 일부에서 ‘마이너티리’ 정체성 집단을 추출해냈다. 객석의 한 참가자가 “세대 분석도 좋지만 그게 오히려 분열을 야기하는 게 아닌가”라고 질문하자 천 기자는 “언론은 사회현상에 질문해야 한다. 다르게 생각하는 그룹이 등장했다면 그들을 설명할 언어의 도구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12월4일 수 크로스 대표와 마이클 스톨 대표는 〈뉴스타파〉와 국내 미디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인 메디아티 등을 찾아 국내 미디어 관계자들을 따로 만났다. 소셜미디어, 뉴스레터, 오프라인 행사 등을 통해 잠재적인 후원자와의 접점을 찾기 위한 다양한 경험과 전략 논의가 이어졌다. 수 크로스 대표는 국내 비영리 공익재단 ‘아름다운 재단’을 찾기도 했다. 그는 “미디어 스타트업 부흥은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대부분 지속 가능한 모델을 찾으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서로가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