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2017년 12월 경기도 평택시 미 공군기지에서 미군 전투기가 착륙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1966년 주한미군지위협정(한·미 SOFA)을 체결해 미군 주둔 경비를 어떻게 분담할지 정했다. SOFA 제5조에 따르면, 한국은 미군이 시설과 구역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부담한다. 미국은 이를 제외한 미군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부담하도록 합의했다. 미군이 사용하려는 토지나 시설이 제3자 소유이면 한국 정부는 이를 매입하거나 임차해, 주한 미군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 외에도 한국은 세금 면제, 공공요금의 감면, 손해배상 분담, 카투사 및 경계 병력 지원 등 SOFA에 따라 미군 주둔 경비를 부담했다.

1970년대부터 미국 정부는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해왔다. 이에 한국은 탄약 저장 관리, 연합방위력 증강사업 등을 추가 지원했다. 미국의 요구는 계속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주한 미군이 고용한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와 건물 신축 비용을 추가로 요구했다. 이는 한국 정부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주한 미군 경비 부담에 대한 특별협정(SMA)을 체결해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한국은 1991년부터 특별협정을 체결했다. 첫해인 1991년 특별협정 분담금은 1억5000만 달러, 향후 5년간 미군 주둔 비용의 30%가량을 분담하기로 했다. 특별협정은 한국의 분담금 총액과 협정의 유효기간을 정한다. 과거 특별협정의 유효기간은 2년, 3년 또는 5년이었는데, 올해까지 적용된 10차 특별협정은 1년이었다(34쪽 〈표〉 참조). 내년부터 적용할 11차 특별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 정부가 협상 중이다. 미국 정부는 내년 한국의 분담금으로 올해보다 5배 증가한 50억 달러(약 6조원)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분담률은 미군 주둔 경비의 50%를 이미 넘어섰다. 2016년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 대사는 “한국이 미군 인건비를 제외한 주둔 경비의 55%를 지원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으로 임명된 빈센트 브룩스 사령관도 “한국이 50% 이상 부담한다”라고 말했다. 2017년 국방부가 의뢰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특별협정과 SOFA에 따라 정부 예산을 통한 한국의 지원액이 모두 합쳐 4조4000억원에 이르며, 무상 토지 공여나 세금 면제, 공공요금 감면 등 간접 지원까지 더하면 5조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미군 1인당 지원금으로 비교하면 일본 정부의 주일 미군 지원금의 두 배에 육박한다.

ⓒ주미한국대사관12월4일 미국에서 제11차 특별협정(SMA) 회의가 열렸다.

2018년 미군이 쌓아둔 현금만 2800억원

한국 분담금은 늘어나는 반면, 주한 미군은 협정에 맞게 분담금을 사용하지 않아서 여러 차례 지적받았다. 2008년 주한미군사령부는 한국이 지원한 인건비 일부를 전용해 미국 국방부의 감찰을 받았다. 2013년 미국 상원의원들은 해외 미군 주둔 비용을 조사한 결과 주한 미군이 한국의 분담금을 ‘공돈’처럼 쓴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주한 미군이 한국 정부가 지급한 특별협정 군사건설비를 매년 소진하지 않고 일부를 쌓아두고 있다는 점이다. 주한 미군은 2002년 연합토지관리계획 및 2004년 용산기지와 미군 2사단 이전협정을 통해 미군기지를 평택권과 대구-부산권으로 통폐합했다. 이 과정에서 매해 한국 정부로부터 현금으로 지급받은 군사건설비를 다 쓰지 않고 남겨둔 것이다. 2008년 10월 확인된 미집행 현금은 1조1000억원에 이르렀으며, 이에 대한 이자수익과 탈세 논란이 일었다. 그 후에도 주한 미군은 한국이 지원한 분담금을 다 쓰지 못해, 2019년 미집행 현물 누적액이 1조원에 이른다. 2018년 기준 미군 당국이 보유한 미집행 현금도 2800억원가량이다.

지난해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에서 평택으로 이전하며 15년에 걸친 이전사업이 마무리되고 있다. 그렇다면 연간 3000억~4000억원에 이르는 특별협정 분담금 가운데 군사건설비 항목의 신규 사업 소요는 앞으로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연히 분담금도 삭감되어야 한다. 과거 분담금 삭감 여론으로 한·미 양국이 분담금을 줄이거나(2005년 6차 특별협정) 물가상승률 수준의 증액으로 사실상 동결시킨 경우(2009년 8차 특별협정)도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올해보다 5배나 증가한 50억 달러를 분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어떤 계산으로 나온 수치인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추정해볼 만한 자료는 있다. 2019년 3월 미국 국방부가 펴낸 ‘2020년도 군 운영유지 예산 개괄’에 명시된 주한 미군 총 소요비용은 미군 인건비를 포함해 45억 달러로 편성되었다. 45억 달러 중 운영유지 예산이 22억 달러인데, 이는 2018년에 편성된 2019년도 운영유지 예산(11억 달러)의 두 배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대폭 줄었고, 기지 이전사업도 마무리되어 2020년도 주한 미군 운영유지비는 줄어들리라 기대되는데 두 배로 인상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 국방부가 책정한 주한 미군 총비용 45억 달러보다 많은 비용인 50억 달러를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미국 국무부 협상단이 내세운 협상의 기준인 ‘공평하고 공정한 분담’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미군 인건비까지 부담하라는 것은 미군을 ‘고용’하라는 의미와 같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50억 달러 청구를 거부하면 미국이 주한 미군 일부를 철수시킬까? 〈조선일보〉가 분담금 협상 실패 시 주한 미군 1개 여단을 철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자 미국 국방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주한 미군을 본토로 불러들일 경우 유지비용이 더 높아진다(예를 들어 2004년에 합의한 주한 미군 감축으로 철수했던 제23화학대대가 2013년 다시 한국에 배치되었을 때, 미군으로서는 연간 180만 달러의 운영비가 줄었다).

ⓒ연합뉴스2017년 10월31일 미군기지 환경오염 관련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국 정부는 미군의 한반도 순환배치 비용, 전략자산 전개비용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의 한반도 순환배치는 부시 정부가 추진한 효율적인 미군 군사력 증강 프로그램이다. 미국 본토를 포함한 전 세계에 배치된 미군에게 적용한다. 이런 미국의 군사 혁신 프로그램으로 주한 미군 지상군이 순환배치군으로 바뀌었는데, 그 비용을 한국에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회귀 전략,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전략무기 전개를 늘리고서는 그 비용을 한국에 부담하라는 것 또한 큰 문제다. 미군의 미사일방어 시스템인 사드 배치가 불러온 중국과의 갈등으로 한국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한국인들은 누구를 위한 사드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부산에서 운용 중인 미군의 새로운 생물화학무기 탐지 프로젝트인 주피터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성공할 경우 유럽·태평양·아프리카 사령부로 확대할 수 있다고 한다. 주한 미군기지를 이용해 일종의 파일럿을 만들어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주한 미군기지를 이용해서 얻는 이익을 고려하면 한국 정부는 기지 사용료를 받아야 할 판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가 부담해야 할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정화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국 정부는 2005년 이래 반환된 미군기지의 오염을 정화하는 데 수천억 원을 쓰고 있다. 인천 부평 미군기지에서는 맹독성 물질인 다이옥신이 발견되었다. 반환 예정인 용산 미군기지는 과거 오염 사고가 많았던 곳이라 정화에 드는 비용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미국 협상단이 50억 달러를 요구하며 제시한 어떤 항목에 대해서도 한국의 특별협정 분담금을 인상할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그들이 부담해야 할 몫이 늘어날 이유만 쌓여간다.

기자명 고유경 (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운영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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