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의 타이밍
  • 고제규 편집국장
  • 호수 639
  • 승인 2019.12.0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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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하명수사 첩보 문서였다. 기관장 비위가 담겨 있었다. 전언 수준의 10줄짜리 정보였다. 엉성했다. “수사가 되겠습니까?” 검사는 난감해했다. “평상시면 수사거리도 안 되지만 지금이니까.” 이명박 정부 초기였다. 노무현 지우기가 본격화할 때였다. 첩보 출처는 묻지 않았다. 하명수사, 청부수사, 청바라기 수사(청와대 의도에 맞춘 수사) 등 검찰이 칼춤을 출 때였다.

검찰은 그때도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라고 강변했다. 검찰 취재 경험상 나는 이 말을 영장청구권·수사권·수사지휘권·수사종결권·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마음대로 수사하겠다”는 의미로 달리 해석한다. 검찰 수사 의도는 검사의 ‘지금’이라는 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바로 타이밍이다. 박근혜 정부 때만 해도 ‘금요일 법칙’이 있었다. 금요일에 정치적인 사건을 발표했다. 봐주기 수사가 주말을 거치며 묻히기를 노렸다.

타이밍에 초점을 맞춰보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법과 원칙’에 따른다는 수사의 이면도 드러난다. 타이밍에 초점을 두고 보면 답이 나온다. 인사청문회 전에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강제 수사를 개시하고, 인사청문회 당일 소환조사 없이 정경심 교수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하고, 10월에야 9개월간 묵힌 유재수 사건의 강제수사가 시작됐다. 11월에 울산지검에서 1년 넘게 진행한 황운하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하고, 백 아무개 수사관이 숨진 다음 날 경찰이 확보한 휴대전화 증거를 압수했다. 모두 ‘검찰개혁’ ‘조국’ ‘패스트트랙 법안’ ‘수사권 조정’ 등과 무관하지 않다고 의심할 수 있다.

1999년 서울지검 특수2부 소속 6년 차 검사가 경찰청 정보국장을 수뢰 혐의로 수사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잘나가던 호남 출신 치안감이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갈등이 한창일 때였다. 검사는 정보국장을 구속기소했다. 그 검사가 지금의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젊었을 때 경험은 평생 간다. 그 수사로 윤석열은 특수통으로 인정받았다. 동시에 그 수사는 검사 윤석열에게 ‘경찰은 수사에는 무능하고 비리에는 밝은 집단’으로 인식시켰다. 대검은 최근 수사권 조정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국회에 낸 바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때부터 쟁점이었다. 당시 친일 경찰의 인권 수준이 형편없었다. ‘임시적’으로 검찰 통제 아래에 두었다. 임시적인 조치가 지금까지 왔다. 이제는 수사권을 조정하고 공수처를 만들어야 한다. 70년간 이어진 검찰 독점 권력의 병폐를 끊을 수 있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도 사법농단 톺아보기를 커버스토리로 올렸다. 천관율·김연희 기자가 박정희-민복기 체제까지 거슬러 올라가 탐사했다. 검찰과 마찬가지로 사법농단의 씨앗은 과거 독재정권 때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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