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미제로 남을 것 같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특정되어 잡힌 지 꽤 되었다. 무기징역으로 수감 중인 이춘재가 범인이었고, 여죄가 많다는 것도 드러났다. 그가 저지른 사건을 뒤집어쓴 윤 아무개씨의 억울한 사연도 알려졌다. 윤씨는 누명을 벗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다.
이춘재의 과거 사진과 몽타주, 현재 사진도 공개되었다. 언론은 이 과정에서 그의 과거 사진과 몽타주가 닮았다고 보도했다. 이춘재가 이렇게 닮은 얼굴인데도 당시 수사망을 벗어난 것은 국과수의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법과 혈액형 감정 결과 때문이라고도 했다. 즉 과학적 검사 결과라는 증거 앞에 닮음이나 다른 정황은 무력화됐다.
이춘재 몽타주는 그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 사진과 닮았다. 졸업 앨범 사진은 보통 증명사진이다. 주민등록증을 비롯한 여권, 운전면허증 등에도 사진이 꼭 들어간다.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시각적 증거로 사진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사진만이 아니다. 지문이라는 생물학적 증거,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이 함께 기재된다. 주민등록증 사진은 아무렇게나 찍을 수 없다. 여권이나 운전면허증 사진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바뀐 주민등록증 사진 규격은 여권 사진과 반명함판 크기가 모두 가능하다. 과거에 사용되던 반명함판과 함께 여권 사진 크기를 같이 쓸 수 있도록 편리하게 개선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어떻게 얼굴이 촬영되어야 하는지 세세한 규정은 남아 있다. 얼굴 비율과 사진 품질, 배경 및 조명, 안경 및 액세서리, 얼굴 방향 및 어깨선, 표정 및 눈동자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규정한다. 예를 들면 얼굴은 정면을 응시해야 하며, 측면 사진은 불가하다. 당연히 고개를 약간 삐딱하게 기울이거나 얼굴 한쪽 면이 4분의 3 보이는 사진도 안 된다. 흑백사진은 안 되며, 입은 자연스럽게 다물어야 한다 등등.
이 모든 규정의 목표는 사진이 본인인가 아닌가를 식별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얼굴을 약간 기울인다고 사람을 식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을 국가라는 권력의 감시와 명령 체계에 순응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목표일 수 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권력에 의해 결정되는 사진의 정체성
손택이라는 사진 이론가의 말대로, ‘사진은 정체성이 없지만 권력과의 연관성에 의해 그 정체성이 결정된다’. 우리 헌법은 개인이 자유롭게 의사 결정을 하며 그에 따라 사유하고 행동할 권리를 보장한다. 그 이면에는 당연히 ‘국가라는 권력의 명령에 따르는’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 조건의 하나는 한 개인이 인적 자원으로 국가에 등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등록 증거로서 주민등록증 사진은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읽힌다. 주민등록증에 붙어 있으면 평범한 개인 사진이지만, 범죄인 수배 전단 속에 포함되면 범죄형 얼굴로 읽힌다. 즉 사진의 용도, 읽히는 맥락은 결국 권력의 장치와 의도에 따라 결정된다. 국가 권력인가, 언론 권력 또는 문화 권력인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것도 거기에서 벗어나는 사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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