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몸짓과 표정에 어찌 미치지 않으리오
  •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 호수 639
  • 승인 2019.12.20 23: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개다〉 백희나 지음, 책읽는곰 펴냄

백희나는 그림책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작품 내적인 면에서도, 외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나는 그의 첫 그림책 〈구름빵〉이 나온 2004년을 그림책 역사에 하나의 분기점을 찍은 해라고 생각한다.

〈구름빵〉은 획기적으로 자유로운 책이었다. 어떤 교육적 목표, 문화적 의도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연하게 아이다운 상상력과 즐거움이 넘쳤다. 그림책의 그림은 종이에 그려진다는 통념을 깨고, 귀엽고 섬세한 입체 캐릭터·모형 배경과 절묘하게 빛을 이용한 사진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 이 폭발적인 해방감에 독자들이 열광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매출 4000억원 〈구름빵〉, 고료는 천몇백만 원

잘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은 작가의 품을 떠나 거대 자본의 손에 휘둘렸다. 속편 구름빵 시리즈, 학습물,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온갖 미디어로 활용되며 4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거두었지만 작가에게는 천몇백만 원의 고료가 고작이었다. 수입보다도, 정체 모를 이야기가 그의 이름 위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 더 문제였다. 저작권을 돌려받기 위한 싸움에서 작가는 패소했다(어떤 작가는 자기 작품을 무단으로 사용한 거대 학습지·참고서 회사와 그로기 상태로 싸운다). 여기가 우리나라 어린이책 작가들의 현주소이다.

그래도 백희나는 후배들을 위해 싸움을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평소 말이 별로 없고 자주 수줍게 얼굴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그가 얼마나 찢기는 마음을 추스르고 또 추스르며 나아가는지,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저 부단히 굳건하면서도 새로운 작품 세계를 이어나가는 행보에 감탄할 뿐이다.

그의 감탄스러운 후속 작품 중 가장 최근 책이 〈나는 개다〉이다. 진흙 비슷한 ‘스컬피’라는 재료로 캐릭터를 빚어 만든 강아지 이야기. 그가 천착하는 가족 소재가 어떤 변주를 보이는지가 감상 포인트인데, 그 이전에 너무너무 생생한 강아지 구슬이의 표정과 몸짓을 실컷 누리는 재미가 있다. ‘힐끗 뒷눈질하며 저 한심한 인간…’ 하는 표정, 외출할 기대에 벅차 식구들을 올려다보는 달뜬 얼굴, 코앞에서 문이 탁 닫히고 혼자 남을 때의 뒷모습, ‘산책이다!’ 하며 날뛰는 몸. 과장된 원근법이나 클로즈업이 주는 활기와 유머, 무심한 듯 고요하게 정지된 장면이 주는 애잔함과 따뜻함이 번갈아 마음을 쥐었다 놓았다 한다.

예전 작품에 비해 훨씬 간결하면서도 부드럽고 깊어진 글이 거기에 힘을 더한다. 누군가가 빠진(그러니까 전에는 ‘결손’이라고 불렀던) 가정의 인간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쩌면 동네에서 마주치는 개들이 거의 다 내 형제자매일지도 모르는’ 개가 그렇게 가족이 된다. 〈구름빵〉의 딱 떨어지는 엄마·아빠·아들·딸이라는 가족 형태가 이렇게 변주되었지만, 메시지는 더 넓고 깊어졌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열심히 대답해준다.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가족이니까”라는 두 문장이 더하고 뺄 것도 없이 그 메시지 자체이다.

작가는 앞으로 들려올 수도 있는, 누구인지도 모를 후배의 목소리에 지금 대답해주느라 열심이다. 우리도 구슬이와 함께 작가와 함께, 그 대답에 소리를 보태야 하지 않을까.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