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싸움에 이주노동자 등 터지다
  •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 호수 638
  • 승인 2019.12.1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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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홍콩 센트럴에 모여든 동남아 이주노동자들.

홍콩 시민들의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혼비백산했다. 센트럴 일대는 주말마다 모여드는 동남아 여성 노동자들의 놀이터 같은 곳이다. 이번에는 그곳에서 그들을 볼 수 없었다. 사실상 모든 정치적 집회가 불법화된 홍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자칫 시위 인파에 휩쓸려 연행되거나, 경찰에게 해코지당할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홍콩 이공대학에서 난리가 난 상황임에도 주말에 잠깐 짬을 내 센트럴에 들러보았다. 주말마다 센트럴 거리를 가득 메우던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몇몇 필리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요즘은 게릴라성 시위가 벌어져 주말에 아예 시내로는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수십 년을 이어온 필리핀 노동자들의 주말 집단 회동은 몇 달째 이어진 혼란 속에 영영 명맥이 끊어진 것처럼 보였다.

홍콩 조사통계국에 따르면 2018년 말까지 홍콩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는 38만6075명이다. 이 가운데 아이 돌봄,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건 대부분 필리핀 여성 노동자이다. 이들의 숫자는 약 13만명이다. 필리핀은 노동자 해외 송출을 전담하는 부서가 따로 있고 전 세계로 나간 필리핀 노동자들이 보내는 송금액이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육박한다. 그래서인지 필리핀은 가장 절실하게 홍콩 사태의 향방을 주시하는 나라 중 하나다. CNN 필리핀 지국이 요즘 관심을 보이는 주제는 홍콩 시위 사태로 인해 해고당해 귀국하는 노동자다. 본국으로 돌아온 노동자들이 필리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보도하고 있다.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은 홍콩인의 월평균 임금(1만7500홍콩달러)의 4분의 1에 불과한 4630홍콩달러를 받는다. 근근이 생활하며 이 돈의 대부분을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한다. 이들은 필리핀의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홍콩은, 필리핀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다음으로 많은 노동자를 송출한 지역이다.

센트럴의 만다린 오리엔탈호텔 앞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필리핀 노동자 안젤리카는 홍콩에 온 지 17년 된 베테랑 육아 도우미다. 그동안 자신이 안아 키운 아기들이 자라서 시위를 하고 있다고 했다. “10월 하순쯤에 어떤 아이가 마스크를 훌렁 벗으며 ‘안젤리카 아줌마!’라며 반가워했어요. 내가 돌보던 아이가 올해 열네 살이 되었더라고요. 나도 몸을 피하느라 몸조심하라는 말도 못했어요.”

사회 밑바닥 이들에게 가혹한 홍콩의 시간

10월6일 한 필리핀 도우미가 완차이에서 경찰의 최루탄을 맡고 기절했다. 이후 주말 동남아 노동자들은 시내 외출을 삼간다. 안젤리카는 주인 내외의 부탁으로 만다린 오리엔탈호텔 베이커리에 심부름을 왔다고 했다. 엄밀히 따지면 돌봄 노동자의 주말 노동과 업무외 노동은 홍콩의 노동법 위반이다. 주말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 있어야 하니 그는 이런 일 정도는 해야 한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안젤리카는 가사노동자라 그나마 일자리를 잃을 염려는 없다. 식당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해고당하고 있다. 시위 이후 홍콩의 관광객은 34%가 감소했고, 주요 지역 식당은 폐업하거나 직원을 줄이며 버티고 있다. 직원 가운데 대개 필리핀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해고된다.

홍콩 사람들이야 자신이 누릴 권리를 위한 싸움이니 불편을 감수할 수 있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지탱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홍콩의 시간은 가혹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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