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가 떠난 세상 남은 자들이 할 일
  • 랜디 서 (대중음악 평론가)
  • 호수 638
  • 승인 2019.12.1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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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양한모

한 달여 만에 또 한 편, 젊은 사람의 부고를 쓴다. 너무 이르다. 비통함이라는 말로도 다할 수 없는 감정이다.

구하라는 부단히도 열심히 살았다. 환상을 직조하는 아이돌 산업의 플레이어였음에도, 그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구하라는 이름처럼 그가 중간에 합류한 걸그룹 카라를 ‘구하러’ 왔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는 실로 복덩이였다. 그와 강지영을 영입하고 재정비한 카라는 마침내 무명기에서 벗어나 대형 스타가 되었다. 팬들의 지지로 서서히 인기를 얻은 성장 서사나 한 작곡팀과의 긴밀한 작업으로 연속성을 보여준 디스코그래피(음악 목록) 등은 카라가 케이팝 신에 남긴 굵직한 유산이다. 특히 2010년대 초반 일본에서의 폭발적 인기는 소녀시대와 더불어 일명 2차 한류, 그중에도 걸그룹 붐의 초석이 되었다. 카라는 일본 최대 공연장인 도쿄돔에 최초로 입성한 한국 걸그룹이기도 했다.

구하라,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

구하라는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크게 활약하며 카라를 널리 알렸다. 몸을 사리지 않는 것이 매력이었다. 그는 예상 밖의 운동 실력으로 여러 번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민첩하고, 집중력이 높고, 끈기가 있었다. ‘구사인 볼트’라는 별명이 탄생하던 달리기 경주 장면, KBS 〈청춘불패〉(2009~2010)에서 경운기를 몰던 농촌 체험 장면, SBS 〈주먹 쥐고 소림사〉(2015~2016)에서 물 위에 띄운 널빤지 위를 내달리던 수련 장면 등은 ‘원조 태릉돌’ 구하라를 대표하는 순간이다.

그의 팀 카라는 2010년 초 당시 소속사 DSP엔터테인먼트와 분쟁을 겪었다. 노동환경 개선과 투명한 정산 등을 요구하는 노동쟁의였다. 하지만 이들이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도가 지나친 비판을 들어야 했다. 권리 주장을 하는 모습이 순수한 걸그룹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억지 논리나, 잘나가는 한류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책망이 연예 기사의 댓글난을 채웠다. 다행히 이후 컴백하며 발표한 ‘STEP’이나 일본 활동곡 ‘Go Go Summer’로 오히려 인기가 반등했으나, 이 시기의 사회적 비난은 카라와 팬들에게 상처로 남았다.

구하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주어진 상황을 직시하고 그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격이었다. 일례로 2014년 MBC 뮤직에서 방영된 밀착 리얼리티 방송 〈하라 On&Off:더 가십〉에서는, 팬들 앞에서 전성기를 막 지난 아이돌로서 자신의 상황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쉽지 않을 이야기였다. 그러나 구하라는 차라리 현실을 인정하고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안무에 파워를 더하기 위해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언니들과 새로이 영입된 막내 허영지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도 했다.

그리고 2018년, 데이트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헤어 아티스트 최종범은 연인이었던 구하라에게 일방적인 폭행 피해를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구하라 측이 반박하며 사건은 재판정보다 대중의 심판대 앞에 먼저 섰다. 이 과정에서 최종범이 폭행뿐 아니라 언론사에 성관계 동영상을 제보해 ‘연예인 생명을 끊겠다’라며 협박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연예인 구하라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여성인 구하라에게 치명적일 공격이었다.

지난 8월 최종범의 1심 선고가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오덕식 부장판사)는 상해, 협박, 재물손괴, 강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이하 불법촬영) 혐의 가운데 앞의 네 가지만을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젊은 여성들이 목 놓아 외친 혜화역 불법촬영 반대 시위는 불과 한 해 전 2018년 여름이었다. 구하라의 변호인들은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적정한 양형이라 볼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피고인 최종범이 행한 것과 같은 범죄행위가 근절되려면 좀 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검찰과 최종범 측이 모두 항소해 2심이 진행 중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볍게 여긴 사법부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시점부터 구하라의 고통은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동영상으로 협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자 그날로 ‘구하라 동영상’이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남성 이용자가 많은 유명 커뮤니티에는 공공연하게 동영상을 찾거나 피해자를 모욕하는 2차 가해 발언이 올라왔다. 이렇게 조롱당하는 상황에서도 구하라는 증거를 모으고 고소를 준비했다. ‘버닝썬 단톡방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를 돕고자 연락하기도 했다. 그 사건은 여성 대상의 디지털 성폭력이라는 점에서 구하라가 겪은 일과 멀리 있지 않았다. 구하라는 힘을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했다.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한 그에게, 1심 판결은 현실의 벽이 되었다. 끝없는 2차 가해를 당하면서도 정의가 구현되기만 바라며 버텼을 터이다. 판결이 내려졌을 때, 사법부가 여성 대상 폭력을 가볍게 여김이 또다시 드러났다. 피해자의 회복에는 관심이 없고, 가해자의 복귀를 장려하며 앞으로도 이 사회는 이런 종류의 폭력에 너그러울 것이라는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꼿꼿하게 지켜온 그의 마음이 절망을 맞아 허물어진 것을 어찌 탓할 수 있을까.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악의가 담긴 논란성 기사나 포털 뉴스의 댓글에 결단을 내리는 일, 2차 가해를 포함한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일, 성폭력 양형 기준을 바로잡는 일,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수사와 사법기관을 시민들이 견제하는 일. 떠오르는 것은 많지만, 정말 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이 공존한다. 그가 느꼈을 참담함도 이것과 비슷했을지 모른다.

세상을 떠난 설리와 구하라는 가까운 친구였다. 우리가 놓쳐버린 두 젊은 생명을 생각한다. 구하라는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이제는 구하라가 떠난 세상에 남아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때다. 그의 영혼이 그곳에서는 안식하기를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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