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강사는 학생을 ‘돈벌이’로만 본다고?
  •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 호수 638
  • 승인 2019.12.1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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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선생님이 입력을 해주던 시기에는 배우는 기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출력을 내라고 하니까 머리가 하얘지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학생한테 이런 피드백을 받은 날이 있었다. 내 머리도 같이 하얘졌다.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수험 생활에 내가 투입하고 있는 게 먹히지 않으면 어쩌나.

멜버른 대학 존 하티 교수는 학생의 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탐색한 전 세계의 연구 9만5000건을 대상으로 1600건을 메타 분석한 결과 학생의 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277개 중 교사와 관련된 요인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2019). 내 자료 난이도가 높나? 학생들이 과제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몇 명 불러서 확인해볼까? 피드백은 적시에 이뤄지고 있나? 판단과 책임은 끊임없이 쏟아졌고, 오류를 수정해가는 내내 나의 부족함만 느껴져 숨이 턱턱 막힐 때였다.

학원에서도 ‘교사 학습 공동체’ 가능하다

선배가 조언을 건넸다. “학생들은 자신이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 수업을 좋아해요.” 시야가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학습 목표에 매몰되어 그 수업을 하는 주체인 나 자신과 학생을 등한시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입력과 출력의 간극이 줄기를 바랐고, 그 간극이 해소될 때 학생들은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제야 내가 쓴 지시 사항이 정제되지 않은 게 보였다. 반복 적용할 수 있는 횟수도 적었다. 교재와 답지를 아예 새로 만들었다. 표준화된 표현을 고르느라 몇 날 며칠을 보냈다.

개선된 학생 반응에 뿌듯해할 즈음, 또 다른 선배가 조언했다. “교재가 예쁘면 좋겠어.” 책의 표지, 제목, 삽화 등이 독자의 선호나 흥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 연구물을 읽으면서도 정작 그 중요도를 체감한 적이 없었다. 내 교재를 만들 때도 여력이 없다는 핑계로 인쇄업체에서 적절히 골라주는 디자인으로 타협했다. 가독성이나 읽기 중에 지속되어야 할 흥미 요소에 눈을 감곤 했다. 중요성을 알면서도 내가 슬쩍 지나가려는 부분을 짚어주는 선배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교육 업계에서 전문적인 교사 학습 공동체를 기대해본 적은 없었다. 마음이 맞는 이들끼리 함께 교재를 연구하고, 자료를 나누거나, 수업에 대해 얘기해본 적은 있지만 주로 학원 밖에서 개별적으로 이뤄졌다. 오랜 기간 한 학원에서 동료 강사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런 고민을 교무실 안에서도 나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러 선후배들도 나처럼 학생 눈높이에서 그들의 흥미와 학습을 고심하고 있었다. 뜻이 통하면 서로 나누고 조언을 할 수 있다. 학원에서도 교사 학습 공동체, 배움 공동체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은 단순해요. 가르치는 사람이 열의가 있는 걸 알면 금방 따라오거든요.” 교수자로서의 신념과 정체성을 갖추고, 주변에 꽤 큰 울림을 주는 몇몇 학원 강사들을 본다. 분명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수익을 내야 한다는 압박은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그 속에서도 교육의 가치를 잃지 않고,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교육으로 가다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은 학생들도 그 정성을 알아챈다. 한 제자는 사교육으로 점철된 자신의 청소년기를 ‘아동학대’라는 말로 표현하지만 몇몇 강사에 대해선 “우리를 돈벌이로만 보지 않고 교육적인 면을 고민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라고 말한다. 나 또한 선배들이 학생들에게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같은 질문에 반복해서 답하는 걸 보며 자신을 반성한다. 언론에 비치는 사교육은 어쩐지 극단적이고 파렴치한 모습만 부각된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학원에서도 교육을 토대로 강사와 학생이 서로를 성장시키는 배움이 종종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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