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한 대한민국이 여배우를 죽인다
  • 주진우 기자
  • 호수 80
  • 승인 2009.03.24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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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돈과 권력이 있는 자의 노리개가 되는 관행, 스폰서 관행, 돈으로 배역을 사는 관행, 성접대 관행…. 한국 연예계는 제2, 제3의 장자연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땅의 여자 연예인이 불행한 까닭.

지난 2월 장자연씨가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레드카펫을 밟고 환히 웃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우 최진실씨, 탤런트 정다빈씨, 가수 유니씨, 영화배우 이은주씨. 영정사진에서 고인들은 모두 웃고 있다.
또 별이 졌다.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꿈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 꿈….” 장자연씨(29)는 끝내 마지막 말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3월7일, 스스로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긴 무명 시절을 보냈다. 올해 들어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악녀 3총사 중 하나로 활약하며 막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죽음의 충격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녀는 세상에 하고픈 말이 많았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녀는 죽기 며칠 전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고통에 대한 글을 써 전 매니저 유장호씨에게 주었다. 이 글에는 소속사 더컨텐츠엔터테인먼트 김성훈 대표에 의해 한 유력 일간지 사장과 PD들에게 술자리와 잠자리를 강요당했고,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 감독이 타이에 골프 치러 오는데 술 및 골프 접대 요구하였습니다.” “룸살롱에서 저를 술 접대를 시켰습니다.”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방 안에 가둬진 채 손과 페트병으로 맞은 적도 있습니다.”

장씨는 연예계의 어두운 구석을 드러내고자 했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에게 연예인이 노리개가 되는 관행, 그리고 부당하고 뒤틀린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를 고발하려 했다. 그녀는 문서 하단에 날짜와 주민번호를 쓰고 서명을 남겼다. 그리고 지장을 찍었다. 꿈을 위해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해야 했던 한 여린 연예인의 항변이었다. 영화배우 김부선씨는 “자연이의 죽음을 보고 연예계의 구조적 비리가 20년이 지났는데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배우가 행복하지 않은 사회는 여성은 물론 사회도 건강하지 못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여배우가 행복하지 않은 사회

이유는 제각각이다. 하지만 꽃 같은 여배우들이 세상을 등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2005년에는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2007년에는 가수 유니씨와 탤런트 정다빈씨가, 그리고 2008년에는 배우 최진실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자연씨의 경우에서 다시 드러났듯이 우울증은 연예인의 직업병이었고, 수면제의 힘을 빌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왜 한국 여자 연예인은 이렇게 불행한 것일까? 왜 우리 사회는 이토록 여배우가 살기 어려운 것일까? 한국에서 여자 연예인으로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톱스타 ㄱ씨. 그녀는 2000년 열아홉 나이에 가수가 되겠다며 연예기획사의 문을 두드렸다. 음반을 내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노래 수업비, 연기 수업비, 헤어·메이크업비, 기타 부대 경비 등…. 기획사에서는 속칭 스폰서라는 사람을 소개했다. 여자 연예인 킬러로 알려진 ㅎ그룹 박 아무개 사장과 벤처업계의 귀재로 불리는 송아무개 회장이 그녀의 스폰서였다. 송 회장은 “ㄱ은 박○○ 형님의 아이였고, 나는 잠시 뒤를 봐준 것이 전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스폰서 때문에 위기를 맞이한다. 2002년 연예 비리 사건이 터지자 성상납 혐의로 검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소속사 김 아무개 사장과 스폰서 박 아무개 사장이 해외로 도피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당시 수사를 했던 서울지검 관계자는 “도피도 도피지만 그녀가 무명 연기자여서 별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무지 뜨더라”고 말했다.

2002년 그녀는 새로운 소속사에서 탤런트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6000만원 들여서 턱·코·광대뼈·가슴 등 온몸을 성형수술해 독특한 매력이 생긴 것도 보탬이 됐다. 운 좋게 광고에서 얼굴을 알리고, 드라마 조연 자리도 잡았다. 그러나 수입은 여전히 지출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다. 신문에는 광고비로 수천만원을 받았다고 했지만, 실제 액수는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 그마저 광고주와 광고를 연결해준 사람 접대비로 나갔다. 2004년 그녀가 KBS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해 받은 출연료는 회당 16만원. 당시 ㄱ씨 매니저의 말이다. “촬영이 있는 날 ㄱ의 머리와 화장에 10만원, 지방출장 기름값과 밥값으로만 40만원이 들었다. 매니저·코디 등에 지출된 비용은 제외한 액수다. 회당 100만원 넘게 적자였다. 촬영이 없는 날에도 운동하고, 피부 관리를 받고, 연기 지도를 받아야 했다. 배우가 성장할수록 씀씀이가 헤퍼져 적자도 커갔다.”
 

사람들은 여자 연예인은 유리구두를 신고 레드카펫만 밟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조연 자리 따내려면 수천만원 필요”

연예 지망생 가운데 스타가 될 확률은 그야말로 ‘만에 하나’라고 한다. 스타가 되었다 해도 경제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자 스타 가운데 자기 비용을 충당할 만큼 수입을 올리는 연예인은 손가락에 꼽힌다. 장자연씨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 1회 출연료로 10만원가량을 받았다.

ㄱ엔터테인먼트 박 아무개 사장은 “여자 배우가 광고와 출연료로 자기 몸값을 버는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광고를 찍을 수 있는 여배우는 정해져 있고 실제로 받는 액수는 알려진 액수의 반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ㅈ엔터테인먼트 박 아무개 이사의 말이다. “드라마 주연은 회당 7000만~8000만원을 받는데 조연들은 수십만원을 받기도 어렵다. 그 조연 자리를 따기 위해 수천만원을 베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업계에는 미니시리즈 조연 자리는 5000만원, 시트콤의 비중 있는 신인은 3000만원 정도로 공정가가 정해져 있다. 연기자가 경험이 없거나 연기력이 떨어지는 경우 그 가격은 더 올라간다.”

많은 연예인이 도덕적으로 나무랄 데 없이 반듯하게 연예인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일부 연예인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빠른 시간 내에 스타로 발돋움하기 위해 스폰서의 힘을 빌린다. 여기에는 매니지먼트 사장이 개입하는 구조가 성립되어 있다. 매니저는 통상 스폰서비의 10%를 받는다고 한다. ㅈ엔터테인먼트 박 아무개 이사는 “연기자의 선택 없이 스폰서를 붙이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바꿀 만한 기회가 있다면 가겠느냐’라고 물으면 ‘노’라고 하는 연예인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ㅅ엔터테인먼트 유 아무개 실장은 “스폰서의 힘이 스타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기도 한다. 돈이 큰 이유지만 스타로 성장하고 싶어서 연예인들이 파워 있는 스폰서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스폰서 문제는 연예계의 오랜 관행으로 알려져 있었다. ㅋ엔터테인먼트 전 아무개 팀장은 “사람은 세 가지로 나뉘는데 남자, 여자 그리고 연예인이다. 연예인은 성공을 위해 스폰서에게 몸을 파는 것이 이 바닥에서는 관행이고 진리다”라고 말했다.

잠자리 횟수까지 적시한 ‘스폰서 계약서’

일부 스폰서는 연예인과 ‘스폰서 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스폰서 계약서는 광고 계약서 형식으로 내용도 매우 비슷하다. 스폰서를 갑, 연예인을 을로 정하고, 둘 간의 관계·동거 기간·잠자리 횟수·데이트 횟수 등에 관해서 세세하게 계약을 맺는다. 또 연예인의 스케줄을 미리 통보한다는 문구가 꼭 들어간다고 한다. ㅋ엔터테인먼트 전 아무개 팀장은 “장자연 사건으로 지금은 뜸하지만 스폰서 계약서는 연예계에서 굴러다닌다. 체위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까지 스폰서 계약서에 집어넣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13일 KBS가 최초로 보도한 장자연씨의 문건.
스폰서에게 여자 연예인을 제공하는 것을 주된 돈벌이로 삼는 연예기획사도 있다. “연예인을 재벌가에 소개해주는 일을 많이 했다”라고 고백한 한 엔터테인먼트 사장은 전화 통화에서 “연예인과 연예 지망생을 찾는 특권 의식을 가진 사람은 많다. 특히 재벌가 쪽 손님이 많은데 한 그룹 회장은 여자에 꽂히면 여자 연예인은 물론 그녀의 어머니에게도 집을 사준다. 그래야 주변에서 말이 안 나온다”라고 말했다.
스폰서 문제가 불거질 때면 연예계는 ‘제 얼굴에 침 뱉기’라고 무마하기 바빴다. 연예계의 뒤틀린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지난 2월 가수 아이비가 홈페이지에 “‘힘든 부분들 도와주겠다’ ‘만나만 줘도 3억을 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제안까지 받은 적도 있지만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연예계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글은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그동안 누구도 연예계에 만연한 관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3월17일 민주노동당은 “배우로서 꿈을 꾸었으나 배우가 되기 위해 강요받아야 했던 ‘연예 시스템’ 속에서 홀로 괴로워하다 죽음을 선택했다. 고 장자연씨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명백한 타살이다”라는 논평을 냈다. 3월18일 여성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장씨가 남긴 것으로 알려진 문건의 성상납 의혹은 그동안 연예산업에서 지속적으로 불거져온 문제다. 수사 당국이 여자 연예인을 성상납하고 죽게 만들어온 관행과 권력 사슬을 명확하게 파악해 끝까지 수사하고 그 사실들을 낱낱이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연예인이 돈과 권력이 있는 자의 노리개가 되는 관행, 스폰서 관행, 돈으로 배역을 사는 관행, 성접대 관행…. 불행하게도 우리 연예계의 현실은 제2, 제3의 장자연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중견 여자 탤런트는 “20대에 검사·국회의원 그리고 재벌들에게 불려가 장자연씨와 비슷한 꼴을 당했다. 여배우가 아니라 창녀 노릇을 했다. 나도 유서를 쓰고 죽으려 했다”고 말했다. 다른 여배우는 “여자 연예인은 돈 있는 사람에게 바쳐지기 위해 태어난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배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구조적 틀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우선 경찰의 명확한 수사가 필요하다. 경찰의 오락가락하는 수사 태도는 연예계의 구조적 문제를 회피한다는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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