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영문 번역자가 묻는 안부
  • 제이미 챙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강사)
  • 호수 637
  • 승인 2019.12.0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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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그림

〈82년생 김지영〉은 현재까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타이 등 17개국 수출을 확정지었다. 한국에서는 책이든, 영화든 마치 ‘젠더 갈등’의 대명사처럼 논의되고 있지만 〈시사IN〉은 이 책이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그보다 넓은 세계 각국 여성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다분히 한국적 상황으로 읽을 수도 있는 〈82년생 김지영〉이 가진 보편성과 힘은 무엇일까. 번역자들은 어떤 계기로 이 책을 번역하게 됐을까. 또 번역자 이전에 독자로서 어떤 점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내년 초 출간을 앞둔 영문판과 프랑스어판 번역가 두 명이 글을 보내왔다.
‘김지영’과 동갑내기인 영문 번역자 제이미 챙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강사는 김지영을 이해하는 순간 자신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남성인 프랑스어 번역자 피에르 비슈는 〈82년생 김지영〉이 한국 사회를 비추지만 동시에 프랑스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내 번역 작업은 배우가 역할을 소화해내는 방식과 비슷하다. 독자로서 읽을 때에는 몇 걸음 떨어져 읽지만, 번역자로서 글을 옮길 때에는 일단 이야기로 들어가 핵심 인물과 그의 세계,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읽어내고 이해하려 한다. 그 후 번역을 통해 그의 시각으로 보고 그의 목소리로 말한다.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서사가 있고, 그렇지 않은 서사가 있다. 어느 쪽이든 번역 작업이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무언가를 건드리는 서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2018년은 ‘루카’와 ‘김지영’의 해였다.

윤이형 작가의 ‘루카’(소설집 〈러브 레플리카〉 수록)는 남성 동성애자 커플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루카는 목사의 아들이고 화자인 딸기는 인권운동가다. 독자로서는 자연스레 루카에게 이입해서 읽었으나, 번역을 시작하니 화자인 딸기의 눈으로 상황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루카를 내내 죽은 사람 취급하다가 갑자기 나타나 당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며 부디 내 아들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하는 루카의 아버지. 그 앞에서 딸기는 생각한다.

‘그렇게 간단하게 침묵의 대가를 치르고 너라는 존재를 복원하려 하는 그가, 그를 그럴 수 있게 하는 힘이, 그 힘을 갖지 못한 내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중략) 그가 그토록 (중략) 가슴을 치며 괴로워했다는 사실은 내게 어떤 연민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왜 내가 이해해야 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해해버리면 끝장이라고 말이다. 그랬다. 끝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끝장’이라는 표현을 두고 많이 고민했다. 무엇이 끝장이라는 것인지. 왜 이해해버리면 안 되는 것인지. 고민하는 와중에 마감일이 다가왔고,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찜찜한 단어를 골라 쓴 후 원고를 넘겼다.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루카와 딸기의 이야기가 무시로 내게 찾아오곤 했는데,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지 고민하며 봄과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그해 가을, ‘김지영’이 찾아왔다.

처음 독자로서 나는 김지영이 누구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에 관심이 없었다. 나와 동갑내기 평범한 이성애자 여성의 서사는 문학에서 이미 많이 다뤄오지 않았던가? 얼마나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냈겠나 싶었다. 들어오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프리랜서 번역가로서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내 이력에 꼭 올리고 싶었다.

‘왜 내가 이해해야 하는가’

김지영의 초등학교 시절을 번역하는 동안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나는 김지영과 정반대였다. 어디든 묻어갈 수 있는 성품의 김지영과는 달리, 나는 이름도 성격도 튀었다. 묻어가는 것은 내 능력 밖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는 13년에 걸친 초·중·고등교육 기간에 3개국에서 여덟 번 전학을 했다. 적응할 틈도 없이 변하는 환경에서 좋은 성적과 추천서를 받기 위해 소위 나대는 사람이었다. 수업 시간에 질문하고, 자발적으로 발표하고, 교내외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무엇을 시켜도 무난하게 해내는 조숙한 아이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내 이런 기질은 한국에서 나를 외톨이로 만들었다. 선생님의 총애를 받지만 주변의 ‘김지영들’한테 잘난 척한다고 욕먹는 외톨이. 나는 김지영들이 나를 어떻게 보건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듯 강하게 양육되었고, 약한 모습은 용납되지 않았다. 처음 이민을 갔던 여섯 살 때부터 무슨 문제든 스스로 해결하는 습관을 길러냈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리고 달렸다. 그래서 처음 김지영을 만났을 때, 나는 그녀를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 약한 모습을 미워했다.

〈82년생 김지영〉은 현재까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타이 등 17개국 수출을 확정지었다.

김지영이 버스에서 남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에도, 대학 MT에서 혐오 가득한 소리를 들었을 때에도, 주변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에도, 독자로서 나는 아무런 연민도 느끼지 않았다. 김지영이 약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튀는 나를 욕하던 김지영을 내가 왜 이해해야 하는가? 이해해버리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번역가로서의 나는 김지영의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녀와 함께 육아와 살림 속에 고립되어 예전의 삶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문득 내 학생들이 떠올랐다.

내가 강사로 일하는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는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면서도 대학원 입시 준비를 병행하여 2년 석사과정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매년 20~30%를 차지한다. 입학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김지영이었던 이들은 공부에만 전념하는 학생들도 겨우 해내는 엄청난 양의 과제를 어떻게든 해낸다.

내 안의 약자 혐오를 깨달으며

사실 번역하는 내내 나는 일부러 내 학생들과 김지영을 연결 짓지 않았다. 수업 직전에 아이가 아프다고 다급하게 이메일을 보내올 때에도, 새 학기 자기소개를 하며 ‘내 인생은 뭐가 된 건가’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말할 때에도, 하루 세 시간만 자면서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과제를 해내는데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계속 스스로를 실망시키고 있는 것 같다며 푸념할 때에도, 내 학생들은 김지영보다 강하고 재능이 있다고 믿었다. 김지영은 약하고 재능이 없어서 그렇게 된 거라고 믿었다. 시간강사로서 해줄 수 있는 형식적이고도 영혼 없는 말을 읊었다. ‘괜찮아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대학원 다니고 이만큼이라도 해내는 게 어디예요. 졸업만 하면 돼요….’

김지영의 남편이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라고는 못하겠다”라고 말할 때, 김지영의 정신과 의사가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김지영이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때, 나는 그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하고 싶은 거 하지, 왜 못하나? 다 해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 일터에도 수두룩한데?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82년생 김지영〉에 반복되어 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도 이 말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남주 작가 덕분에 나는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되었고, 김지영의 시각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자 ‘루카’의 딸기가 말한 ‘끝장’이 시작되었다. 이해해버리고, 다시는 눈을 감아버릴 수 없을 정도로 보게 되어버리는 과정. 공감.

사방에 김지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명 지르는 아이 때문에 마을버스 안에서 눈총을 받는, 놀이터에서 탈진 상태로 아이를 바라보는, 아파트 정문에서 어린이집 버스를 안 타겠다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는, 아이를 겨우 학교에 데려다주고 이미 방전되어 내 수업에 나타난 김지영들. 보이기 시작하니 목소리도 들려왔다. 꼭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라고? 왜? 너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나는 왜 힘들다는 말도 못하고 버러지 소리를 들어야 해? 돈을 안 버니까? 사방에서 김지영들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할 무렵, 학생 면담이 있었다. 힘들어하는 학생에게 ‘혼자 감당하기엔 벅찬 일이지요’라고 말하며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버렸다.

김지영과 공감한다는 것은 나의 가장 여리고 취약한 부분을 마주하는 일이었고, 그것을 마주한 순간, 그동안 나를 지탱해온 것은 내 안의 약자에 대한 혐오였음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오랜 시간 내 스스로의 다그침 속에 힘들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그저 견디기만 했던 또 다른 나를 수면으로 떠오르게 했다. ‘언제나 강한 모습만 보이는 거, 힘들고 무섭고 외로운 일이야. 계속 이렇게 살라고 하지 마.’

‘혼자 감당하기엔 벅찬 일이지요’는 내가 너무도 듣고 싶은 말이었다. 나에게, 김지영에게 미안했다.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학생과 함께 한참을 울었다. 미움의 힘은 강하지만 살리는 힘은 아니다. 미움의 힘은 파괴하는 힘이다. 가장 오랜 시간 외면해왔던, 그래서 가장 보살펴야 하는 부분을 계속해서 부정하고 파괴하려 한다. 내가 살려면 나를 파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더 이상 미움에 기대어 살아갈 수 없다. 나는 아직 모른다. 평생 나를 앞으로 전진시킨 주마가편의 기제와 어떻게 결별해야 하는지. 채찍을 내려놓는 순간 나는 어떻게 될지.

김지영과 나는 2020년에 서른여덟 살이 된다. 아마도 우리에겐 살날이 많이 남았고, 살아가는 데에는 외로움, 슬픔, 분노가 아닌 다른 원동력이 필요하다. 연대감, 행복, 사랑? 어쨌든 각자의 고립에서 나와 서로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이야기해야 하는데, 나는 아직 내 속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김지영의 안부는 궁금하다. 김지영, 너는 잘 회복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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