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여성의 섹시함은 종종 공포를 수반한다.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슈퍼히어로물에 등장하는 악당 가운데 여성 캐릭터는 대부분 어둡고 화려한 외양의 섹시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공포영화에서 초반부터 성적 매력을 뽐내는 여성은 십중팔구 가장 먼저 죽음을 맞는다. 이러한 클리셰에 대한 인문학적이고 심리적인 분석은 이미 다수 존재하므로 이곳에서까지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 성적 매력은 그것이 적극적으로 겉으로 드러날 때 특히 그 주체가 여성일 때 훨씬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다.

이쯤에서 케이팝으로 눈을 돌려보자. 강산이 마르고 닳아도 성적 대상화 없이는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현아가 있다. 2007년 원더걸스의 ‘아이러니(Irony)’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딘 현아의 나이는 당시 15세. 팀에서도 막내 라인에 속했지만 의상의 노출 수위만은 웬만한 성인 못지않았다. 원더걸스와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나 그룹 포미닛과 큐브엔터테인먼트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그의 타고난 ‘섹시함’에 대한 설왕설래는 이어졌다. 현아를 대표하는 수식어인 ‘패왕색(좌중을 압도하는 섹시함.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에서 유래)’은 그가 만 스물이 되기도 전에 붙은 별명이었고, 이후 ‘버블팝!’ ‘아이스크림’ ‘빨개요’ ‘잘나가서 그래’ 등 아무리 많은 새 노래와 무대를 선보여도 결코 변하지 않는 꼬리표였다.

한국에서 여성의 섹시함은 필연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현아는 데뷔 이래 늘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점은 2011년이었다. 그해 7월 발매한 싱글 ‘버블팝’의 안무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소속사는 안무 수정 없이 음악방송 출연 자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4개월 뒤, 비스트 멤버였던 장현승과 함께 결성한 유닛 ‘트러블 메이커’ 활동으로 소란은 더욱 거세졌다. 현역으로 활동 중인 걸·보이 그룹 멤버가 혼성 유닛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도 화제였지만, 논의는 높은 안무 수위로 넘어갔다. 노래 ‘트러블 메이커’가 각종 음악방송에서 1위를 휩쓸며 선전했지만, 결국 남은 건 ‘선정적’이라는 단어 하나뿐이었다. 이후 포미닛을 해체하고 솔로 활동을 이어가고 심지어 기획사까지 바뀌었지만, 현아를 설명하며 동원되는 ‘섹시하다’는 표현만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변하지 않았다.

다시 처음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이제야 뒤늦게 의심스럽다. 데뷔 12년 차, 무대에 서는 순간만은 아픈 몸도 잊을 정도로 집중한다는 이 케이팝 아이콘의 살아 있는 야성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납작하게 이해해온 건 아닐까. 데뷔 후 수천 번은 더 올랐을 무대 위를 여전히 가득 채우는 현아의 본능이 가진 에너지를 그동안 많은 이들이 막연히 두려워하고 어려워해온 건 아닐까. 어떤 콘셉트이든, 어떤 무대든, 또 누구와 무대에 오르든 단숨에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고야 마는, 현아만이 가진 이 놀랍고 거친 매력을 이제는 다른 언어로 표현해야 할 때가 아닐까. 모자를 코까지 푹 눌러쓴 채 다 같이 미쳐보자며 강렬한 랩을 쏘아대는(포미닛 ‘미쳐’), 댄서 수십 명 사이에서 새롭게 피어나듯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는 그의 모습(‘플라워 샤워’)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교차 재생된다. 그에게는 새로운 수식어가 필요하다. 무대 위 야생의 현아가 피어난 지금까지의 모습 그대로.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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