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숨겨진 사서의 노동
  • 강민선 (전 사서, <도서관의 말들> 저자)
  • 호수 637
  • 승인 2019.12.0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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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바깥세상의 움직임과는 너무나 상반된다. 도서관에는 전복과 혁명을 꿈꾸는 이들의 책이 가득하지만 정작 사서는 숨죽인 채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
ⓒ시사IN 이명익도서관 건물, 책, 도서관 이용자의 인식, 대출·반납 시스템도 좋아지고 있지만 도서관 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거북이걸음이다. 위는 서울시립도서관 내부 모습.

지난 10월29일 서울시의회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주최의 ‘서울시 구립도서관 노동실태와 개선방안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참석해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 한참 망설였다. 도서관을 그만둔 지 1년이 넘었고, 떠나온 도서관에 대해 공개된 자리에서 입을 열어야 하는 것도 마뜩지 않았다. 그런 건 현직 사서들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소속을 밝힌 채 입을 열 수 있는 사서가 얼마나 될까.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소속이 없는 나의 이름표에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저자’라고 적혀 있었다.

행사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저기서 반가운 인사 소리가 들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혹시라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있을까 기대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없었다.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몰랐다. 나는 발표문을 작성해놓은 상태였고 거기엔 누군가 듣기에 불편할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토론회가 시작되었고 한 사람씩 발표하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발표자 다섯 명 중 나만 여자였다. 도서관 노동자의 80% 이상이 여성인 것을 감안하면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도 여성이 더 많아야 하는 것 아닐까. 도서관의 비민주적이고 부당한 처사에 대해 일침을 놓은 사람도, ‘만약 도서관에 남자가 더 많았다면 이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모두 남자였다.

도서관이 비민주적이고 부당하다는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도서관은 책을 다루는 곳 아닌가. 책을 읽든 읽지 않든, 우리가 책이라는 것에 대해 갖는 기대가 있다. 모든 책이 모든 사람에게 좋을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해악을 끼치진 않을 거라는 기대. 실제로 도서관에서 비민주적이고 부당한 내용을 담은 책은 수서(收書) 과정에서 걸러진다. 그 기준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고 합당하다. 담당 사서는 개인적 견해나 편협한 시각이 끼어들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한다. 이 역시 책을 다루는 가장 보편적이고 합당한 자세이다. 그런데 도서관 운영자, 관리자의 자세 또한 그러한지는 확답할 수 없다. 사서는 책과 이용자를 상대하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운영자가 만들어놓은 조직 안에서 관리자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움직여야 하는 직장인과 다르지 않다. 바로 이 현실이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흔드는 요인이 된다. 안타깝게도.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퍼져나간 ‘페미니즘’과 ‘문화 다양성’은 중요한 화두가 되었고 도서관에도 관련 책이 많이 들어왔다. 인간과 사회에 더 좋은 것, 모두에게 이로운 것을 향한 문화의 흐름이자 오랜 역사가 기다리던 오늘의 응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바깥세상의 움직임과는 너무나 상반된다.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의견을 제시하면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관리자가 있고, 신입 사서 면접이 끝나고 나서 ‘예쁘다’ ‘안 예쁘다’로 얼굴평을 일삼는 관리자가 존재하는 곳이다. 외부에서는 사서로서의 전문성을 지니라는 말을 수없이 듣지만 함께 일하는 관리자는 사서의 일을 ‘단순노동’으로 폄하한다. 업무 매뉴얼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필요하면 언제든 새 직원으로 교체가 가능하니 불만이 있으면 다른 곳에 가라고 한다. 관리자의 직업 인식에 걸맞게 월급은 최저시급을 면하지 못한다.

계약직으로 입사해 정규직 사서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이제 임신해도 되겠네”였다. 자료실 동료가 육아휴직에 들어가자 “지금 임신하면 안 되는 거 알지?”라는 말을 들었다. 이제는 농담으로도 더 이상 하지 않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곳이 도서관이었다.

국가가 아닌 민간이 위탁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있다. 사서들은 도서관 업무와 별개로 재단 행사에 동원되었고, 매달 급여에서 빠져나가는 기부금에 토를 달 수 없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 맞춰 이사장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케이크와 꽃다발에 노래까지 불러줘야 한다. 앞서 한 발표자가 ‘만약 도서관에 남자가 더 많았다면 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건 (적어도 남성 관리자를 훨씬 많이 경험한 나의 경우에는) 사실과 다르다. 도서관을 이토록 침체시킨 근본 원인은 ‘여성이 많아서’가 아니라 민간 위탁이라는 이유로 국가 차원의 울타리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또한 도서관이라는 안전한 성 안에서 밥벌이라는 명분 아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감아버리는 사람들 때문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10월29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서울시 구립도서관 노동실태와 개선방안 정책토론회.

구립도서관 중 90% 이상 위탁 운영

구립도서관에서 일한다는 건 이 모든 것들과 날마다 부딪쳐야 함을 뜻한다. 도서관에 거는 기대가 컸던 사람일수록, 그 안의 작은 부속품으로 살아남기 위해 조금씩 전락하는 자신을 응시해야만 한다. 전복과 혁명을 꿈꾸던 이들의 책이 가득한 도서관이지만 정작 그 책을 관리하는 사서는 숨죽인 채 시키는 일만 차질 없이 해내야 좋은 평가를 얻고 업무 성과급을 받으며 오래 일할 수 있다. 이상과 현실의 낙차 사이에서 윤리적 자아는 점점 나약해지고 겉으로만 웃는 사람이 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왜 도서관은 그러지 못할까. 도서관 건물도, 책도, 도서관을 찾는 이용자들의 인식도, 하물며 대출·반납 시스템과 무인 예약대출 기계의 품질까지도 날마다 좋아지는데 왜 도서관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은 거북이걸음일까. 예전에 비해 좋아졌다는 말은 한숨만 나오게 할 뿐 여기서 만족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부당과 불합리를 은폐하기만 하면 더 이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번 토론회는 서울도서관에서 2019년 연구 과제로 추진한 ‘서울시 공공도서관 위탁 및 고용 실태조사’의 일환으로, 서울시 구립도서관 중 90% 이상을 차지하는 위탁 도서관의 노동 실태를 묻고 발표하는 자리였다. 전국의 모든 도서관이 이와 같지 않을 것이고 어딘가에는 선하고 의로운 마음으로 도서관을 운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번 토론회에서 논의된 도서관의 모습 또한 분명 우리가 아는, 우리 곁의 도서관이다. 도서관법 제1조에 해당하는 ‘국가 및 사회의 문화발전에 이바지’하는 도서관이며, 그 안에서 일하는 사서 역시 인권을 보장받아 마땅한 노동자이다. 외면하고 싶은 어두운 이면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일부이다. 도서관 내부에서만 돌고 돌던 말, 아무도 몰랐던 말, 힘이 없는 말이 이번 조사를 계기로 힘을 얻고 도서관과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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