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대는 물 흐르듯 싸운다
  • 홍콩/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 호수 637
  • 승인 2019.12.0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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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대는 출근길 복장 그대로 보도블록을 깼다. 시민들은 ‘인간띠’를 이뤄 돌, 라이터, 헬멧 등을 ‘전투조’에게 전달했다. 시위대는 물처럼 유동적이고 유기적으로 물러섰다가 다시 뭉쳤다.
ⓒ장진영11월18일 홍콩 이공대학에 갇힌 시위대를 구출하기 위해 조던역 인근에서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넉 달 만에 마주한 홍콩은 낯설었다. 11월16일 주말인데도 홍콩 국제공항은 분주하지 않았다. 공항버스는 단축 운행 중이었다. 내가 주로 타던 공항버스 A21은 공항을 출발해 카우룽반도의 남북을 연결하는 노선인데, 프린스 에드워드·몽콕·야우마테이·조던 등 정류장에 서지 않고 침사추이로 직행했다. 늘 앉을 자리가 부족했는데 이번에는 고작 승객 5명을 태우고 침사추이로 향했다. 처음으로 A21 버스의 2층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침사추이 풍경도 달라져 있었다. 홍콩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MTR 침사추이역 입구는 굳게 잠겨 있었다. 거리는 ‘Free HK’ 같은 글씨로 가득했고, 가게 3분의 1가량이 문을 닫았다. 시위대의 공격을 받는 스타벅스, 요시노야, 중국은행 등은 영업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지난 6월부터 본격 점화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는 홍콩인들의 삶과 거리 풍경을 바꿔놓았다.

시위는 기업 불매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먼저 송환법 사태와 관련해 홍콩 정부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TV 채널 ‘TVB’가 타깃이 되었다. 누군가 TVB에 광고를 내는 업체 제품을 사지 말자고 제안했다. 일본 오츠카 제약이 운영하는 포카리스웨트 홍콩 지사가 TVB에서 광고를 뺐다. 시위대는 열광했다. 포카리스웨트가 시위대의 필수 음료가 되었다. 반대로 중국 본토에서 포카리스웨트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이어 소고기덮밥 체인인 일본계 패스트푸드 요시노야로 불매운동 불씨가 옮아붙었다. 이 회사 페이스북 홍보 담당자가 홍콩 경찰을 조롱하는 듯한 게시물을 올렸고 친중 언론인 문회보(文匯報)가 보도했다. 요시노야 홍콩 프랜차이즈 대표 마빈 흥이 경찰에 사과하고 홍콩 정부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마빈 흥이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임이 알려지면서 요시노야는 친중의 상징이 되었다.

스타벅스도 시위대의 표적이다. 요식업 재벌 맥심이 스타벅스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 지난 9월 맥심그룹 창업자의 딸인 애니 우가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에서 “폭도가 홍콩을 망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 뒤 맥심그룹이 운영하는 모든 식당과 프랜차이즈 체인이 공격을 받았다.

시위대는 공격 대상 식당을 색으로 구분한다. 이들은 시위에 비판적이라 매장 파괴까지 불사하는 곳은 검은색, 시위에 우호적인 집중구매 대상은 노란색으로 표시한다. 최근에는 아예 노란색 식당만을 안내하는 식당 앱(WhatsGap)을 만들어 앱스토어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기존 식당 앱의 최강자 ‘오픈라이스(Open Rice)’의 인기를 뛰어넘을 기세다.

노란색이 붙은 대표적인 음식점 체인 중 하나는 룽문카페(Lung Mun Cafe, 龍門氷室)다. 홍콩에 5개 체인이 있는데 평소에도 홍콩 이공대학 학생들에게 할인 식사를 제공하기로 유명하다. 시위가 본격화하면서 아예 한가한 시간대인 오후 4시 이후 방문하는 학생들에게 면 요리를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시민들은 집중구매로 화답했다. 룽문카페 앞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다.

11월19일 자정쯤 가게 쪽문을 열고 시위대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던 룽문카페 사장과 몇 마디 나눌 수 있었다. 최근 친중 지지자들에게 습격당한 터라 사진촬영 금지는 물론 익명을 요구했다. 그는 “시위 문제로 부모와 갈등을 겪고 용돈을 받지 못해 밥을 굶는 중고등학생 시위대가 많아 한동안 이런 영업 방침을 계속하려고 한다. 무료 식사를 하고 오히려 더 큰돈을 놓고 가는 시민들이 많아 큰 손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이 식당은 시위가 벌어지는 날이면 시위대가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차와 생수를 가게 앞에 박스째 쌓아놓는다.

11월24일 홍콩 구의회 선거를 앞두고 시위대는 왜 굳이 홍콩 이공대학 점거농성에 들어갔을까? 11월8일 시위 도중 추락한 홍콩 과학기술대학 학생이 사망했고, 11월11일 한 시위자가 경찰의 실탄에 맞았다. 경찰의 강경진압에 자칫 시위 동력 자체가 사라질 것을 우려한 누군가의 제안으로 장기 농성으로 바뀌었다. 대학 점거로 주의를 환기시키고 누군가 계속 싸우고 있음을 알리기 위한 셈이다.

11월16~17일 홍콩 이공대학 공방전 이후 연행자가 속출했다. 경찰이 홍콩 이공대학 농성자들을 강제 진압하려 하자 11월18일 그동안 대학 점거를 지켜만 보던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뛰쳐나왔다. 월요일인데도 카우룽반도의 조던부터 침사추이까지 인산인해였다. 카우룽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중심가 나단로드는 보도블록을 깨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들의 옷차림은 시위대를 상징하는 ‘블랙코드’가 아니었다. 출근길에 나선 복장 그대로였다. 그들은 말없이 보도블록을 깼다. 어떤 이들이 뽑아낸 벽돌을 잘게 부수었다. 이렇게 부서진 투척용 돌은 차탐로드의 ‘전투조(홍콩식 표현으로 용무파)’에게 전해졌다. 약 1㎞ 길이의 인간띠가 만들어져 돌을 계속 전달했다. 화염병은 어디선가 승용차가 싣고 왔다. 하이퐁로드 주변에 우산으로 가려진 차량은 화염병을 나르는 차량이었다. 화염병 중에는 한국산 소주병도 있었다. 크기가 적당해 시위대에게 인기가 많았다. 인간띠는 상황에 따라 라이터, 돌, 헬멧, 우산, 물 따위를 날랐고 사람들은 돌림노래처럼 “라이터! 헬멧! 이제 그만!”을 외치며 아침부터 밤까지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11월18일 저녁부터 경찰은 나단로드의 ‘공급조’를 먼저 해산시켜야 한다고 판단한 듯, 특수 장갑차를 앞세우고 시위대에 돌진했다. 전투조는 물러서지 않고 싸웠으며, 공급조는 경찰에 달아나면서도 흩어지지 않았다. 홍콩 이공대학에서 투항자가 나오기 시작한 새벽 2시까지 이 상황은 계속되었다.

ⓒ장진영11월18일 경찰은 나단로드의 ‘공급조’를 해산하기 위해 특수 장갑차를 앞세우고 시위대에게 돌진했다. 시위대를 뒤쫓는 경찰의 모습.

“우리를 위해 모여주고 우리를 기억해달라”

홍콩 영화배우 리샤오룽이 남긴 ‘물이 되어라. 친구여(Be Water, My Friends)’는 이번 홍콩 시위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시위대는 물처럼 유동적이고 유기적이다. 경찰이 거세게 몰아붙이면 물러섰다가 그다음 골목에서 다시 나타난다. 전투조 규모의 50배는 되어 보이는 물량 공급조가 배후를 버티면서 뭐든 만들어냈다.

홍콩 이공대학에 남아 있는 시위대만 체포하면 강경 시위가 꺾일 것이라고 여긴 홍콩 경찰은 당황했다. 홍콩 경찰은 11월18일 하루에만 최루탄 1458발, 고무탄 1391발, 빈백건 325발, 스펀지탄 265발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들 대다수는 대학교를 점거한 시위대가 아니라 나단로드 공급조에게 사용되었다.

2014년 두 달에 걸친 우산혁명 기간 경찰이 쏜 최루탄은 87발이었다. 지난 6~9월 3개월간 최루탄 3100발, 고무탄 590발, 빈백건 80발, 스펀지탄 290발이 사용됐다는 걸 감안하면 11월18일 시위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현장에서 꽤 많은 시위대와 이야기해보려고 애썼다. 21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중 13명이 10대였다. 그들에게 매번 “한국인들이 당신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 약속이나 한 듯 그들은 다음과 같은 세 마디를 남겼다. “우리의 이야기를 주변에 알리고, 우리를 위해 모여주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기억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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