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pedia하이힐을 신은 프랑스의 루이 14세.

하이힐은 원래 남성이 신었던 신발이다. 타이밍과 운, 권력 이동 등이 모두 결합하면서 남성의 액세서리였던 하이힐이 오늘날 여성의 전유물이 되었다.

‘이렇다 할 만한’ 하이힐이 처음 등장한 지역은 페르시아다. 당시 하이힐의 형태는 오늘날 카우보이 부츠와 유사했다. 15~16세기 당시 베네치아와 스페인의 초핀 혹은 쇼핀(Chopine)도 어떻게 보면 하이힐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하이힐을 유행시킨 것은 프랑스 절대왕정이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키는 163㎝였다. 17세기 기준으로 보자면 작은 키는 아니다. 그는 높은 곳의 공기를 마셔야 더 권위가 선다고 느꼈다. 국왕은 언제나 하이힐을 신고 다녔다.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하이힐 브랜드로 손꼽히는 크리스티앙 루부탱도 루이 14세와 연관 있다. 크리스티앙 루부탱의 하이힐은 빨간 밑창으로 유명하다.

‘빨간 밑창’ 크리스티앙 루부탱의 기원

루이 14세의 남동생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는 미남으로 알려져 있다(루이 14세 형제가 나오는 넷플릭스 드라마 〈베르사유〉는 나름 고증에 철저했다). 여러모로 형보다 나은 동생을 둔 루이 14세는 언제나 동생을 지근거리에 두고 싶어 했다. 아마 쿠데타를 막기 위해서였을 테다. 덕분에 필리프는 늘 파리에 있었다. 파리의 ‘파티왕’이 된 필리프는 당시 사교계의 패션 리더였다. 뭐든 그가 입거나 신으면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었다. 하루는 파리 샤틀레 옆 도축장 근처에서 카니발이 열렸다. 1662년, 한참을 놀다 보니 그의 하이힐 밑창은 새빨갛게 도색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빨간 밑창 하이힐의 기원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19세기부터는 귀족 남자들도 ‘일’이라는 걸 하기 시작한다. 미국 독립혁명도 잊으면 안 된다. 당시 미국은 마틴 밴 뷰런 대통령의 사치스러운 생활 스타일(말 그대로 금수저라고 불렸다)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런 기류를 타고 남자들이 가발이나 보석류, 하이힐 등 비실용적인 패션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바로 복식사학계에서 일컫는 ‘남성의 대절제(Great Male Renunciation)’라는 개념이다. 남자들 의상은 결국 양복 스타일로 통일되지만 그렇다고 남자들 의상 가격이 싸졌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여자들의 하이힐 착용은 대략 언제부터일까. 19세기 향락업계 관련자들로 거론하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유가 더 복잡하다.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화려한 옷이 남자에게서 그의 부인과 딸로 넘어갔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어차피 장식이 많은 화려한 옷을 입을 만한 가정의 여자들은 노동에 종사하지 않았다. 입고 벗기 힘들고 움직이기도 쉽지 않은 옷들은 바로 ‘귀함’을 의미했다. 이때부터 하이힐은 비로소 여자들의 전유물이 된다. 게다가 하이힐을 신으면 루이 14세처럼 위에서 아래로 남자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여자들도 일을 하기 때문에 여성용 구두 굽 높이도 낮아졌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하이힐에 대해 대단히 복잡한 시선을 갖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루이 14세 때나 지금이나 하이힐이 주는 상징이 있기 때문이다.

재미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이브생로랑에서 하이힐을 하나 샀는데, 이틀 만에 굽이 부러져 AS를 요청한 고객에게 이브생로랑 측에서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손님, 이 구두는 걸어 다니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Mais enfin, madame, ces chaussures ne sont pas faites pour marcher!)”

기자명 위민복 (외교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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